엄마, 크리스마스 새벽에도 글 쓸 거야?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은 어른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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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크리스마스 새벽에도 글 쓸 거야?"


며칠 전 첫째 아이가 물었다. 새벽에 글을 쓰고 있으면 아이는 꼭 한 번씩 깨서 화장실에 다녀온다. 쉬는 날에도 엄마가 여전히 그 시간에 일어나는지 궁금했나 싶었다.


나는 크리스마스만큼은 일부러 늦잠을 잔다. 아이들이 먼저 깨서 선물을 찾으러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왜 묻느냐고 하자 친구 이야기를 들려줬다. 친구 아빠가 새벽에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는 걸 보고 인증샷을 찍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깨어있을 때 산타가 오면 사진을 찍어달라는 말이었다.



둘째는 학교에서 받은 하리보 젤리를 먹지도 않고 그대로 들고 왔다. 산타 할아버지가 오시면 드릴 거라며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간식받으면 교문 나오자마자 다 먹고 빈 봉지만 내미는 아이인데, 그 젤리를 고이 들고 온 마음이 귀여웠다. 옆에 있던 누나는 편지도 쓰자며 흰 종이를 가져왔다.


동네 엄마에게서 AI가 산타 사진을 꽤 그럴듯하게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나도 AI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트리가 놓인 거실과 아이들 선물 사진을 찍어 AI에게 부탁했다. 산타가 선물을 들고 트리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만들어 달라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선물 든 자세도 자연스럽고, 에어컨에 비친 그림자까지 디테일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아이들이 믿기에는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문제는 나였다. 과연 아이들 앞에서 능청스럽게 연기해 낼 수 있을까. 어설픈 말 한마디로 의심을 사는 건 아닐지, 이게 뭐라고 긴장한 채로 잠들었다.




크리스마스 새벽, 일찍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여섯 시가 조금 넘자 첫째가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열었다. 그 소리에 깬 둘째는 산타가 왔냐며 금방이라도 일어날 기세로 물어봤다. 한 시간만 더 자라고 말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 시간 뒤, 둘째는 방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문 앞에서 까치발을 하고 목을 한껏 빼 트리 쪽을 살폈다.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셨다고 말해주자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첫째는 조금 더 자다가 나와 선물을 뜯으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산타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우와”를 연발했다. 첫째는 사진을 문자로 보내달라고 했다. 산타가 없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보내주겠다고. 젤리도 가져갔다며 둘째는 한껏 신이 났다. (증거 인멸을 위해 지금 먹고 있다.)


선물에 정신이 팔린 탓인지 산타에 대해 자세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 인증샷 찍었으면 언제 왔는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어디로 들어왔는지 정도는 물어볼 법도 한데 말이다.


그러다 첫째가 갑자기 물었다.


“썰매도 봤어?”


당황한 나는 못 봤다고 대답했다. 머릿속에 사이렌이 울렸다. 여기서 질문이 이어지면 어쩌지 싶었는데 다행히 아이는 더 묻지 않았다. 문득 내가 아이를 속이고 있는 게 아니라, 아이가 나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매년 그랬듯 올해도 11월 중순, 아이들과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받고 싶은 선물을 알아내기 위한 가장 고전적이고도 확실한 방법이자, 착한 아이를 만드는 마법이다.


편지를 쓰고 나면 아이들은 산타 마법에 걸린다. 떼를 쓰려다가도 “그러면 산타 할아버지 선물 못 받는 거 아니야?”라는 말 한마디에 멈춘다. 매년 선물을 받으면서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 그 모습에서 아이다운 순수함을 느낀다.


산타를 믿는 마음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나도 그 세계에 머물고 싶다. 언젠가 아이들이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속았다’가 아니라 ‘그때 나는 참 순수했구나’라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올해 크리스마스, 나는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행복을 선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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