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의 약속

하기 싫어도 해낸 두 달, 그리고 하루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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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랄라라~ 랄라라 라~~"


오전 9시, 경쾌한 알람이 울린다. 거실 바닥에 앉아 자석 블록으로 닌자 놀이에 빠졌던 아이들의 손이 멈춘다. 첫째는 이따 다시 놀자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방으로 향한다. 둘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벅터벅 걸어와 내 앞에 앉는다. 식탁 위에는 문제집 두 권이 펼쳐져 있다.


지난 겨울방학을 앞두고 아이들과 함께 하루 동안 할 일(to do list)을 만들었다. 대부분의 항목은 아이들 스스로 채웠다. 나는 하나만 제안했다. 매일 아침 9시에는 공부하는 시간을 갖자는 거였다. 정해진 분량만 마치면 되고, 알람이 울리면 예외 없이 자리에 앉는 것이 우리의 약속이었다.


쉽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이냐며 방에서 나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 톤이 매일 달랐다. 기분이 좋을 때면 하이톤이었지만 짜증과 원망 섞인 날이 훨씬 많았다.


둘째는 아침마다 눈물바람이었다. 지문이 길다고, 양이 많다고, 누나보다 일찍 못 끝냈다고 울었다. 눈가를 닦느라 소매가 매일 축축해졌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울리면서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싶은 회의가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매일 아이 맞은편에 앉아 책을 펼쳤다.


천금 같은 패스권 세 장을 알뜰하게 써가며 아이들은 9시의 약속을 지켰다. 두 달을 채웠다. 그 한 시간여를 제외한 나머지 하루는 마음껏 놀았다는 건 안비밀.


인내의 보상은 '자유의 날'이었다. 《엄마 성장 수업》의 김희선 작가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작가 가족은 일 년에 한 번 자유의 날을 갖는다고 했다. 각자 하루 종일 하고 싶은 걸 하는 날이라고 한다.


3월 2일 하루는 유튜브든 게임이든 원하는 걸 무제한으로 할 수 있게 해 주겠노라 공언했다. 둘째는 오며 가며 자주 달력을 들여다봤다. 빨리 2일이 되면 좋겠다면서.




마침내 찾아온 3월 2일. 아이들은 미심쩍은 눈으로 정말 종일 패드를 봐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쿨한 엄마라도 된 듯 인심 쓰며 대답했다. 두 달 동안 약속을 잘 지켰으니, 엄마도 이 약속은 무조건 지키는 거라고.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이들은 오후가 되자 무서운 몰입도로 게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이고 앉아 로블록스를 했다.


나는 틈틈이 "하기 싫어도 꾸역꾸역 하길 잘했지?" 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겨울방학 동안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은 하나였다. 하기 싫은 마음을 이겨내고 끝까지 해냈을 때 생기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작은 성취감. 물론 부작용도 있다. 게임에 푹 잠겼다 나오는 바람에 다음 게임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으니.


누군가는 이 방식이 올바르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직은 어린아이들이라 게임 하나로 통제되는 모습이 그저 귀엽게 보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양육 방식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해야 하나 생각했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내 아이에게 맞는 방식은 남이 아닌 내가 가장 잘 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장난감으로 보상했다면 지금은 자유로운 하루를 주었다. 다음에는 또 무엇이 될까.


정답은 없지만, 우리 가족에게 맞는 방법은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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