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형산 May 09. 2024

내일을 위해 고통을 감내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

- 증선지,  <십팔사략(十八史略)> 오월흥망(吳越興亡)편에 나오는 고사

얘들아. 너희들에게 세 번째로 들려주고 싶은 고사성어는 와신상담이라는 말이야. 섶[薪]에 눕고[臥], 쓸개[膽]를 맛본다[嘗]는 한자로 구성되어 있어. 섶이란 장작불 때는 마른 가지를 얘기해. 그걸 바닥에 깔아놓고 누우면 얼마나 아프겠어? 동물의 쓸개는 매우 쓴 맛이 나. 그걸 맛보니 얼마나 떫겠어? 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중국 춘추시대가 끝나갈 무렵 무언가를 잊지 않으려고 일부러 고통 속에 자신들을 던져 넣었던 사나이들이 있어. 오나라의 부차(夫差)와 월나라의 구천(勾踐)이지. 두 사나이가 일진일퇴하면서 서로에게 복수한 이야기가 와신상담의 배경이야. 그중에서도 진짜 주인공은 월의 왕이었던 구천이지. 너희들에게 구천이라는 사나이가 굴욕을 이겨내고 마침내 승리를 얻어내는 장엄한 과정에 대해 들려주려고 해.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될 거야.


오나라와 월나라는 지금 중국의 항주(杭州)를 사이에 두고 위아래로 마주하고 있던 옛 나라야. 오나라는 지금의 소주(蘇州)를 중심으로 세운 나라이고, 월나라는 지금의 소흥(紹興)을 중심으로 세운 나라야. 지금이야 둘 다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춘추시대만 하더라도 중국의 본류인 중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오랑캐의 고장으로 알려진 곳이었지. 습하고 물이 많은 곳이라 중원과는 매우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었어. 그래서 그저 변두리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나라 왕 합려에 이르러, 오자서라는 뛰어난 전략가를 등용하고, 그에 힘입어 춘추시대의 최강 국가로 떠오르게 되지. 오나라 합려는 나라의 힘만 키운 게 아니라 여러 제도도 완비하여 국가의 기틀을 바로잡았어. 그래서 춘추시대 중심 국가인 주나라를 보필하고 나머지 제후국을 좌지우지하는 패자(覇者)로 우뚝 설 수 있었어. 주변 국가가 중심이 되는 변화였고, 그만큼 중국 자체가 넓어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지.

춘추시대는 중국의 고대 국가 주나라가 약해지면서 주나라를 이루고 있던 작은 제후국들이 서로 패권을 놓고 서로 싸우던 시기를 말해. 이 때만해도 제후국들은 서로 형제국가라는 의식이 있었고 주나라를 가장 큰 나라로 섬기고 있었어. 그러나 후에 전국시대가 개막하면서부터 제후국들은 서로 자기가 왕이라고 주장하며 격렬히 싸우게 되지. 그렇게 나라의 쟁투가 심각해지다가 그것을 다시 통일하는 것이 바로 진나라이고, 통일중국의 첫 황제가 되는 사람이 진시황이야.


강한 왕 합려와 뛰어난 전략가 오자서의 결합으로 오나라의 번영은 오래 지속될 것 같았어.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 기세가 꺾이고 말지. 오나라는 자기 나라 아래쪽에 있던 월나라가 늘 찜찜했어. 그래서 월나라의 왕이 죽고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으려는 혼란을 틈타 월나라를 정벌하러 갔지. 오나라 합려가 온다는 말을 듣고 신출내기 왕 구천은 패기 있게 전단강을 건너 취리에서 오나라 군사를 맞이했지. 역시 합려의 군대는 막강했어. 구천은 승기를 잡을 수가 없었지. 몇 번을 공격했으나 다 실패하고 말았어. 이에 구천은 아주 살벌한 방법을 써.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들을 세 줄로 앞세워서 오나라 군대 앞으로 보냈어. 그 군사들은 고함을 지르면서 앞줄부터 차례로 자기 목을 찔러 자결을 했어. 두 번째 줄의 군사들도 똑같이 소리 지르며 자기 목을 찔렀어. 세 번째 줄의 군사들도 똑같이 그런 방법으로 자결을 했어. 그 끔찍한 월나라 병사들의 행진을 보고 오나라 군대는 경악 할 수밖에 없었지. 구천은 그 틈을 타서 다시 맹공을 퍼부었어. 혼을 빼고 있던 오나라 군대는 크게 패배하여 도망했어. 그런데 아뿔싸, 천하의 합려가 그 와중에 다치게 돼. 군중(軍中)이라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서일까? 오나라를 키우고 패자의 지위에 올랐던 그가 그만 상처가 덧나 진중(陣中)에서 죽고 말아.


합려는 죽으면서 태자인 부차에게 당부하지. 자신과 오나라의 복수를 꼭 해달라고 말이야.

"너는 구천이 네 아비를 죽인 것을 잊겠느냐?"

부차가 다짐했어.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오나라 군대가 패하여 돌아온 뒤, 부차는 궁실의 문에 시종을 세워놓고 자신이 드나들 때마다 외치게 했어.

"부차야, 구천이 네 아비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

그러면 부차는 대답하곤 했어.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복수를 마칠 때까지 자신을 긴장시키기 위해 늘 마른 장작[薪] 위에서 잠을 잤어. 여기서 '와신상담'의 '와신(臥薪)'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거야. 그는 군사들을 직접 조련하며 항상 월나라에 복수할 준비에 매진했어.

부차가 왕위를 물려받은 지 2년째 되던 해. 월나라의 구천이 오히려 선제공격해 오나라에 쳐들어와. 월나라의 전략가 범려가 말렸지만, 구천은 합려를 죽인 일로 자만하게 되었던 거야. 오나라 부차는 기다렸다는 듯이 월의 군사들과 맞닥뜨렸지.

복수를 위해 섶 위에서 자던 사람을 이기기는 어려웠지. 게다가 부차에게는 당대 최고의 전략가 오자서도 같이 했으니 더 이기기 어려웠지. 월 구천의 군대는 크게 패배하여 자기 나라로 밀려 도망할 수밖에 없었어. 간신히 갑사 오천 명을 데리고 회계산으로 피했어. 부차는 대군을 이끌고 회계산을 에워싸 버렸어. 구천이 오천 군사로 죽기로 싸우면 싸움이야 되겠지만, 그 포위망을 뚫기는 결코 쉽지 않았지. 구천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처음 전투를 말렸던 범려에게 물었어.

"그대의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이 되었소. 어찌하면 좋겠소?"

범려는 몸을 낮추고 재물을 풀어서 부차의 복수심을 완화해 살길을 찾으라고 조언해. 구천은 그 조언을 받아들여 대부 문종을 오나라에 보내 화해를 도모했지.

문종은 무릎으로 기어가 부차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구천이 당신의 신하가 되고, 자기 처를 부차의 첩으로 삼아 충성을 다하겠다는 말을 전했지. 부차는 그렇게 낮은 자세로 굴복하는 구천을 보며, 그만 복수심이 많이 사라지고 말았어. 그래서 이를 허락하려고 했지. 그때 오자서가 나섰어. 구천을 살려두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것이니 그를 죽이라고 권했지.

“지금 그를 없애지 않고 관용을 베풀면 안 됩니다. 구천은 힘든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니, 지금 그를 없애지 않으면 후에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이 말에 다시 부차는 구천을 죽이려고 해.


그러니 구천은 마음이 급해졌지. 남은 병사 오천을 이끌고 결사 항전을 하려는데, 문종이 다시 꾀를 냈어. 부차의 신임을 얻고 있는 오나라 신하 백비가 탐욕스러운 사람이니 그를 뇌물로 꼬여 화친을 도모하자는 것이었지. 구천은 제안을 받아들여 많은 미녀와 보물을 가지고 문종을 시켜 오나라 태재 백비에게 바치게 했어. 백비는 뇌물을 받고 문종을 다시 부차와 만나게 주선하지. 오나라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문종의 계책이 들어맞는 순간이야. 문종은 다시 부차를 만나 이렇게 얘기했어.

“바라건대 왕께서는 구천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보물과 미녀를 받아주십시오. 용서해주시지 않으면 구천은 장차 그의 처자식을 모두 죽이고 오천 명의 병사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터이니, 왕께서도 큰 피해를 보실 것입니다.”

화해를 받으면 재물이 생기는데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기기야 하겠지만 큰 피해가 생길 것이라는 말이었지. 거기에 이미 마음이 돌아선 백비가 말을 보탰어.

“월나라가 마음속 깊이 신하가 되었으니, 그를 용서해주시면, 이는 우리나라의 이익이 됩니다.”

부차는 솔깃해서 구천을 용서해주었어. 이번에도 오자서는 극렬히 반대하며 구천을 없애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부차는 화해를 선택하여 구천을 살려주고 말았어. 그리고는 월왕 구천을 자기 수레를 끄는 종으로 부려 먹고 월나라를 좌지우지하며 승자의 지위를 만끽했지.

이 때 구천이 절세가인 서시(西施)를 부차에게 바쳤다는 야사가 전해져 오지. 서시가 얼마나 미인이었냐 하면, 서시가 지나가면 연못의 물고기가 기절해 가라앉고, 하늘의 기러기가 혼절해 떨어진다고 했지. 미인 서시 때문에 부차가 점차 판단력을 잃었다는 이야기야. 서시가 실제 존재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월나라가 많은 미녀들을 바쳤고 그 때문에 오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진 것만은 분명해 보여. 오늘날에도 중국에서는 강동 지역 여인이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알고들 있지.


서시 상상도


부차는 확실히 아버지 합려의 복수를 한 것일까? 구천을 완전히 지배한 것일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어. 구천은 부차의 종노릇 하면서도 늘 원수를 갚아줄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지. 그러니 부차는 반쪽짜리 복수를 한 셈이었어. 용서하려면 종으로 쓰는 치욕을 주지 않고 대장부답게 용서하여 진정한 복종심을 끌어냈어야 했어. 반대로 복수를 하려면 확실히 처단하여 뒷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했지. 부차는 승리에 쉽게 도취해 불행의 씨앗을 남기게 되었지.


구천은 부차의 그런 성격을 간파했어. 철저히 낮은 자세로 부차를 섬기며 후일을 도모했지. 부차를 속이려고 부차의 변까지 먹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옛날에는 왕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종들이 왕의 변을 먹어보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구천이 그런 역할을 자처했다는 것이지. 부차는 이제 월나라가 완전히 자기 밑에 들어왔다고 믿고, 패자가 되기 위해 중원의 나라들과 전투를 벌이면서 바깥일에 매진하게 돼. 구천과 구천을 따라 종노릇 하던 범려 모두를 다시 월나라로 보내주고 말이야. 비굴하게 자기 밑에서 굽실대는 구천 따위는 자기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구천은 부차가 생각하는 그런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어. 그는 월나라로 돌아와서 패배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늘 자기 주변에 쓸개를 가까이 두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항상 그것을 바라보았고, 마시거나 먹을 때도 쓸개를 맛보았어. 그 떫고 쓴맛을 보면서 스스로 말했지.

“너는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

여기서 쓸개를 맛본다는 ‘상담(嘗膽)’의 고사가 나오게 되는 거야.

그렇게 항상 자신을 독려하면서 그가 제일 힘쓴 것은 월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었어. 그는 솔선하여 직접 밭을 갈아 농사를 짓고, 부인 또한 직접 길쌈을 하게 했어. 왕이 직접 노동의 현장에서 백성들을 독려한 것이야. 계급이 분명하던 고대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지. 또 밥을 먹을 때 고기를 먹지 않았고, 화려한 옷도 입지 않았어. 겸손하게 현명한 사람들을 모셔 나라의 일꾼으로 쓰고, 가난한 사람을 돕고 죽은 사람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주며, 백성들과 함께 살아갔어. 그러니 월의 백성들이 구천에게 감동할 수밖에 없었지.

그뿐 아니라 구천은 월의 인구를 늘리기 위해 애썼어. 고대에는 인구수가 곧 국력이었거든. 사람이 많아야 농사지을 인력도 많아지고, 군대에 들어가 싸울 사람도 많을 것이니 말이야. 오나라에게 앞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인구를 늘리는 것이었지. 이를 위해 구천은 젊은이들이 반드시 결혼하게 하고, 백성이 아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의사를 보내주고 생활비를 대주었어. 지금으로 따지면 일종의 복지정책을 시행한 셈인데, 현대에도 하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었어. 왕은 겸손하고 복지정책은 잘 마련되어 있으니, 백성이 살기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구천은 그렇게 월의 백성들과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어.


오나라의 부차는 월나라가 그렇게 성장하고 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 그의 관심은 이미 월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를 발아래 놓는 데 가 있었지. 그래서 부차는 당시 강국 중의 하나였던 제나라를 치기로 해. 그때 오의 전략가 오자서가 극구 반대하지. 후방에 있는 월나라를 치는 것이 더 급한 일이라고 주장했어. 부차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제나라를 공격했지. 그리고 그 공격은 성공을 거두었어. 그러니 부차의 입장에서는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오자서가 매우 성가시고 미워질 수밖에 없었어. 아버지 합려가 아끼던 신하라서 차마 어찌 하지 못했던 것인데, 너무 앞을 가로막고 나선다고 생각했던 것이지.

유일하게 자기를 견제하는 오자서와 부차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을 구천이 알아챘어. 이에 구천은 봉동이라는 사람을 보내, 지난번 자신을 풀어주는 데 큰 도움을 준 백비와 함께 오자서를 공격하게 해. 오자서가 적국인 제나라와 내통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말이야. 사실 이때 오자서가 실수를 해. 자기 자식을 제나라 대부에게 맡겨놓았던 거야. 자식을 살리려는 아비의 마음이 컸기 때문이야. 자기 말을 그렇게 듣지 않는 부차가 곧 망하리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아들이라도 제나라에 맡겨 살리려고 한 것이지. [사기] ‘오자서열전’에 아들에게 한 말이 나와.

“왕에게 여러 차례 간언했지만, 그가 듣지 않았다. 이제 곧 오나라는 망할 것이다. 너까지 오나라와 함께 죽는 것은 덧없는 일이다.”

어찌 되었건 오자서는 제나라와 내통한 죄를 얻게 되었어. 그렇지 않아도 미운 인간이 그런 실수를 하자, 부차는 가차 없이 오자서를 죽음으로 내몰아. 오자서에게 촉루검이라는 날카로운 칼을 주며 자결하라고 하지.

이에 오자서가 크게 웃으며 말했어.

“나는 그대의 아버지가 패자가 되도록 도왔고, 또한 그대를 도와 왕위를 계승하게 했소. 그대는 나에게 나라의 절반을 주려고 했으나 받지 않았소. 그런데 이제 도리어 말도 안 되는 참언 따위에 휘둘려 나를 죽이려 하는구려. 아! 그대는 자립할 수 없는 사람이오!”

그리고는 다른 신하들에게 일렀어.

“내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왕의 관을 짤 목재로 쓰도록 하라. 또 내 눈을 뽑아 오나라의 동문(東門)에 두어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지켜보도록 하게 하라.”


부차 당신은 죽을 것이고 오나라는 망할 것이라는 끔찍한 저주를 남기고, 오자서는 칼에 엎드려 죽음을 받아들였어. 부차는 그 말에 몹시 화가 나서 오자서의 시체를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 강에 버려 버렸어.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게 던져버린 것이지. 그만큼 오자서의 존재감이 컸어. 결국 월나라 구천을 경계하던 오자서가 이렇게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오나라에 더는 구천을 경계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어.

부차는 오자서를 죽이고 패자가 되려는 욕망을 더욱 키워나갔어. 말리는 사람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좋았겠어. 이번에는 진(晉)나라를 치면서 수도를 비우고 북쪽으로 대군을 이끌고 나아갔어.


구천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지. 무려 4만 7천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가, 수도를 농락하고 오나라의 태자를 사로잡는 성과를 거두지. 깜짝 놀란 부차는 오나라로 돌아와 구천에게 보물을 보내고 예를 갖추어 오-월 간에 강화를 맺는 것으로 수습을 하지. 구천도 오나라 정예군과의 싸움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고 강화를 받아들여. 부차는 패자가 되겠다는 욕망 때문에 자기 땅을 농락당하고 먼저 휴전을 제안하는 굴욕을 당하게 되었어.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오나라는 회복할 수 없었어. 좋은 군사들은 제나라, 진나라를 치는 동안에 쓰러져 갔고, 백성들은 계속되는 전투에 지쳐버렸어. 구천은 나라의 힘을 더욱 키운 다음에 4년 뒤 정예병을 이끌고 다시 오나라를 공격했어. 이제 오나라는 월나라의 상대가 되지 못했어. 오나라는 크게 패했고 월나라 군대는 오나라 성을 완전히 포위했어. 그렇게 성을 포위한 지 삼 년이 지나자, 오나라 백성들은 모두 도망가고, 오나라 왕 부차는 고소산에 고립되었어. 물론 월나라 군대는 그 산을 완전히 에워쌌지. 지난 회계산에서 구천이 당한 것과 완벽히 반대되는 상황이 펼쳐진 거야. 구천이 대부를 시켜 화해를 요청했듯이, 이번에는 부차가 오나라 대부 공손웅을 시켜 맨살로 무릎 꿇고 기어나가 화해를 요청하게 했어.

“바라건대 회계산에서 제가 당신을 용서해준 것처럼 신의 죄를 용서해주시겠습니까?”

구천은 부차의 나약한 모습에 복수심을 놓고 용서해주려고 했어. 그러자 월의 전략가 범려가 말렸지.

“오나라는 월나라를 취할 수 있을 때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늘이 오나라를 월나라에게 주시는데 어찌 하늘의 뜻을 어긴단 말입니까? 왕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정에서 고생하신 것은 오나라를 치기 위한 것 아닙니까? 22년간 일을 도모해왔는데, 하루아침에 그만둔다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그런데도 구천은 사신을 부차에게 보내 말했어.

“나는 그대를 작은 왕으로 살려두려고 하오. 일백 가구의 왕으로 여생을 사시오.”

한 나라의 왕을 그만두고 작은 마을의 우두머리로라도 살아가라는 말이었지. 부차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 그래도 천하를 호령하던 사나이로서 마지막 자존심이었을 거야.

“나는 늙어, 군왕을 섬길 수 없소!”

그리고는 자결했는데, 자기 얼굴을 가리면서 마지막 말을 남기지.

“죽어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구나.”

구천은 오나라 왕을 장사 지내주었어. 그리고 태재 백비를 죽여 버리지. 뇌물에 넘어가 오나라를 망친 백비는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갔어.

이후 구천은 다른 나라들을 제어하는 패자로 등극하게 돼. 주나라가 월나라를 제후국의 우두머리로 삼았어. 춘추 시대 중국을 지배하는 최강자가 된 것이지.


이렇게 부차에게서 구천으로, 다시 구천에게서 부차로 이어지는 복수전이 끝이 나게 돼. 최후의 승자는 고통을 이겨내고, 지독한 목적의식으로 자기 삶과 나라를 변모시킨 구천의 몫이었어. 부차와 구천의 대결에서 보듯, 자만하지 않는 사람이 결국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이루지 못 할 일이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지. 너희들도 때로 힘든 일들을 겪게 될 거야. 인생이 모두 순탄할 수만은 없으니까. 그렇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참아내며 미래를 기약하길 바라. 그래서 최후의 성취를 얻어내길 기원할게. 물론 그 성취는 복수가 아니고 긍정적이어야 하겠지.

이전 03화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것, 토사구팽(兎死狗烹)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