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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산 May 02. 2024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것, 토사구팽(兎死狗烹)

- 사마천, <사기열전(史記列傳)> ‘회음후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

얘들아, 너희들에게 두 번째로 들려주고 싶은 고사성어는 토사구팽이라는 말이야. 토끼[兎]가 죽으면[死] 개[狗]를 삶는다[烹]는 한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냥하던 토끼를 잡으면 사냥에 썼던 사냥개가 필요 없으니 같이 삶아 먹는다는 뜻이야. 그 속뜻은 어떤 일을 이루고 나면 그 일을 돕던 사람들을 내친다는 것이지. 이 말이 아직 잘 실감나지 않지? 이제 한신(韓信)이라는 사람의 일생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야.


한신은 지난 이야기에 등장했던 여몽보다 더 비참할 정도로 가난했던 사람이었어. 그런 그가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명장군으로 거듭나게 되지. 여기까지는 여몽의 이야기와 그 패턴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천하가 통일된 후 유방은 한신과 권력을 나누지 않았지. 오히려 한신을 위험한 세력으로 몰아 죽이게 돼. 한신은 아주 화려한 성공 뒤에 바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던 사람이야. 한신이 어떻게 비루한 인간에서 중국 최고의 장수가 될 수 있었는지, 이런 뛰어난 인물이 왜 급작스럽게 몰락하게 되었는지, 권력은 왜 나눌 수 없는 것인지 한 번 들어볼래?

한신의 초반 삶은 참으로 보잘것없었어. 회음(淮陰)지역(지금의 중국 강소성(江蘇省)의 회안시(淮安市)) 이 고향이었는데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훗날 어머니마저 가난과 병마 속에서 여의고 말았다고 해. 앞서 여몽은 누이 집에 얹혀살기라도 했는데 한신은 그 정도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나 봐. 워낙 가난했고, 평범한 평민이라 추천받을 곳도 없었고, 적극적으로 생계를 꾸릴 줄도 몰랐다고 하니, 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사람이었지. 장수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보니 하루하루 노동하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이 맞지 않았나 봐. 그러니 늘 이웃에게 밥을 빌어먹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 한 마디로 거지같이 살아갔어.

이런 사람을 주변에서 좋아할 리 없지. 거지 한신이 제일 자주 찾아갔던 집은 남창 지역 정장(亭長, 지역 책임자)의 집이었어. 몇 달이 지나도록 밥 얻어먹으러 오는 한신이 귀찮아진 정장의 아내는 일부러 새벽에 일어나 가족들끼리 밥을 먹고는 한신이 도착할 때에는 상을 치워버리고 밥을 주지 않았어. 자기 밥 한 그릇 주기 싫어 상을 치워버린 집에 도착한 한신의 기분이 어땠을까? 그래도 자존심이 있었는지 화를 내고 절교를 한 후 그 집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고 해.

한 번은 한신이 성 아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어. 배가 얼마나 고팠던지 식은땀이 줄줄 흘렀어. 그 옆에서 빨래 일을 하던 한 아주머니가 그 꼴을 보다 못해 밥을 나누어 주었어. 하루만 그런 게 아니라 자기 빨래 일이 끝날 때까지 열흘이 넘도록 밥을 나누어 주었어. 한신은 굶어 죽을 판이니 체면이고 뭐고 주는 밥을 먹으며 지냈지. 한신이 고마워하며 아주머니에게 말했어.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겠소."

이 말은 진심이었어. 어떻게 알았냐고?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면 알게 돼.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 말이 가당치 않았지. 다 죽어가는 놈 불쌍해서 남는 밥 좀 나누어 준 것뿐이니 보답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고 쏘아붙였어. 사지 멀쩡한 놈이 밥 빌어먹고 있으니 오죽 한심해 보였겠어. 그런 놈이 무슨 보답을 하겠냐고 짜증을 낸 게지.

여기서 표모분식(漂母分食, 빨래하는 아주머니가 먹을 것을 나누다)라는 사자성어가 나왔지.



한신의 굴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어. 하루는 저잣거리의 건달이 한신에게 시비를 걸었어.

"한신, 덩치 크고 칼 찬 놈아. 겁쟁이가 아니라면 그 칼로 날 찌르고, 그럴 배짱이 없으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거라. 안 그러면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한신은 한 손으로 검을 쥐고 그 건달을 타는 눈빛으로 쳐다봤어.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것 같았지. 하지만 잠시 후 한신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몸을 구부려 그 건달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갔어. 기어가는 동안 건달뿐 아니라 저잣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한심한 듯 웃으며 한신을 놀렸지. 이 겁쟁이를 보라고 말이야. 너희들 같으면 이 순간에 어떻게 했겠니?

이 치욕을 과하지욕(袴下之辱, 가랑이 밑의 치욕)이라고 하지. 요새는 대개 진정한 성취를 위해 굴욕을 참아낸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어.



한신은 이런 대접을 받으며 세월을 견디고 있었어. 기록에는 세 가지 봉변만 나와 있지만, 어디 그랬겠어. 숱한 무시와 멸시를 당하고 있었겠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도 지키기 힘든 상황에서 무슨 큰 뜻이 있었기에 이런 비참함을 견딘 걸까. 지니고 있던 칼에서 답을 얻을 수 있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있었으면서도 칼을 버리지 않았던 이유, 그건 장수의 꿈이 남아있었기 때문 아닐까. 중국을 제패하는 최고의 장수가 되는 꿈.

한신과 같이 평범한 돈벌이 능력은 없는데 장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이런 사람이 성공할 수 있으려면 어떤 세상이어야 할까? 그래, 영웅이 천하를 놓고 쟁패(爭覇)하는 상황이어야겠지. 평화로운 시기에 뛰어난 장수가 빛을 발할 수 있겠어? 다행히 한신이 살던 시대는 천하 쟁패의 시대로 가고 있었지. 한신이 성공한 이야기를 하려면 이 시대에 대해 좀 설명을 해야 해.

이때쯤 중국은 여러 작은 나라들이 중국의 패자(覇者)가 되려고 서로 다투던 시기를 거쳤어. 흔히 춘추전국 시대라고 하는 시기야. 우리나라는 이때 고조선시대쯤 되었으니 아주 옛날일이지. 이 춘추전국의 혼란기를 진(秦)나라 시황(始皇)이 끝장내고 중국을 하나의 나라로 통일시켰어. 진시황은 중원을 지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하고 글자를 통일하고, 도량형을 일치시키고 신화를 정비하는 등등 중국을 통일국가로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어. 지금 우리가 중국을 영어로 차이나(China)라고 부르는데, 이건 진을 서양에서 ‘지나’라고 부르던 것이 굳어진 명칭이야. 그러니 진의 중국통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있지.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의 모양이 그때 통일된 거야. 글씨체는 조금 달라, 이때의 글씨체를 전서(篆書)라고 하지. 지금도 도장을 새길 때 주로 쓰지. 우리에게 익숙한 글씨체는 한나라 이후에 나온 예서(隷書)이고.


하지만 진나라는 중국의 첫 거대 통일제국이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견디지 못하고 2대 만에 멸망의 길을 가게 돼. 2대 호해황제는 능력이 없었고, 조고라는 환관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등 진의 제국이 유지되기가 너무 어려웠지. 그래서 여기저기 민란(民亂)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각지의 영웅들이 지역에 자리를 잡고 진나라에 대항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들고 일어났지. 사실 얼마 전만 해도 여러 나라로 나뉘어 서로 싸우던 지역들이어서, 다시 쪼개져서 싸우는 일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어. 그중에 초반에 가장 강력하게 통일 진제국에 저항했던 곳은 초나라였고, 그곳의 지도자는 항량이었어. 초나라는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인 전국시대에 제일 강했던 일곱 나라 중 하나야. 지금 중국의 동남쪽 땅, 즉 회하(淮河) 이남 지역은 전부 초나라 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이곳에서 대대로 장군을 맡았던 명문 집안 출신인 항량이 진나라에 저항하자, 많은 초나라의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항량을 따랐어. 항량은 진에서 보낸 지방관을 치고, 진의 수도인 호경(지금의 서안 부근)을 향해 회하를 건넜지. 예전부터 초나라 사람이 군사를 이끌고 회하를 건넌다는 것은 중원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었어. 항량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진나라의 중심을 향해 나아갔어.

이 기세를 보고 한신도 칼 한 자루에 의지해 그의 밑으로 들어갔지. 하지만 자기를 내세울 길이 없었어. 이미 남의 가랑이 사이를 걸어간 겁쟁이로 소문이 다 퍼져버렸던 것으로 짐작 돼. 그 사이 항량이 전투에서 져 목숨을 잃게 되고, 그 뒤를 항량의 조카인 항우(項羽)가 잇게 돼. 항우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봤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뒤덮었던, 그 시대 적수를 찾을 수 없는 장수였지. 훗날 한의 유방과 맞붙어 천하를 다투는 명장이야. 싸움 잘하기로만 치면 중국 역사 전체를 들어 항우만 한 사람이 없을 거야. 한신은 다시 항우 밑으로 들어가 낭중이라는 벼슬을 얻어. 군대에서 최하위급 벼슬, 지금의 하사 정도라고 이해하면 돼. 한신은 밑바닥 벼슬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항우에게 여러 차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계책을 올리게 되지. 하지만 항우는 그 계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그때 항우가 한신의 말을 들었더라면 중국의 역사가 달라졌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생각을 해봐, 겁쟁이라고 소문난 최하위 간부의 말을 듣는다는 게 쉬운 일일까? 우리라고 계급이 낮은 사람의 말을 잘 귀담아들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겠지. 항우도 보통 사람처럼 한신을 무시하게 돼. 결국 이것은 항우의 식견이 뛰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지. 아무튼 자신의 계책이 번번이 폐기되는 걸 보는 한신의 실망도 매우 컸어. 마음속엔 세상을 통일시킬 큰 뜻과 전략이 있는데, 보잘것없던 시절의 평판이 그 뜻을 펼치지 못하게 막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도 한신은 다시 한번 기운을 내서 이번엔 유방을 새로운 지도자로 삼기로 마음먹어. 그래서 항우의 초나라에서 도망쳐 유방이 촉(蜀, 지금의 쓰촨(서천) 지역)에 세운 한나라로 가지. 이때 유방은 항우보다 먼저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차지했었다가 서슬 퍼런 항우의 공격이 무서워 당시 매우 후미진 촉으로 물러나 있는 상태였어. 그 변두리에서 다시 중원, 즉 중국의 핵심 지역으로 짓치고 나갈 생각만 하고 있을 때였지. 그러니 인재도 많이 필요하고 좋은 전략이 정말로 필요했던 때였어. 한신은 거기에 가서 자신의 뜻을 펼치고 싶었지만 유방에게 전할 길조차 없었어. 그저 연오(蓮敖)라는 곡식 창고 관리하는 직책을 얻었을 뿐이야.

초나라와 한나라, 많이 들어 봤지? 바로 우리나라 장기의 두 나라지. 진이 망하고 중국 천하를 놓고 항우의 초나라와 유방의 한나라가 격돌하지. 그것을 보드게임으로 만든 것이 바로 지금의 장기야.

그렇게 안타까운 세월이 흘렀어. 그러다 한신은 군법을 어겨 체포되는 신세가 돼. 구체적으로 어떤 법을 어떻게 어겼는지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아. 그저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법을 어기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야. 군법이란 게 무척 엄격해서 민간의 법과는 달리 그것을 어겼을 때 사형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한신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공범 13명과 함께 참수형(목을 베는 형벌)을 받게 되었지. 형 집행이 시작되고 망나니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범인들의 목을 자르기 시작했지. 열세 명의 목이 모두 잘리고 마지막으로 한신의 차례가 되었어. 이대로 한신의 운명이 끝나버리는 것일까? 과하지욕을 넘어 난세를 평정하려는 큰 뜻은 이렇게 묻혀버리는 것일까? 한신은 절망하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어. 그러다 마침 그 자리에 나와 있던 등공(대부 벼슬) 하후영과 눈이 마주쳤어. 한신이 하후영을 향해 소리쳤지.

"한왕께선 천하를 차지할 생각이 없으십니까? 어찌 장수를 죽이려 하십니까?"

하후영은 그의 말이 기특하고 기상이 장하다고 여겨 풀어 주고 목 베지 않았어. 그리고 한신을 데려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어. 웬걸, 한신의 전략은 대단했어. 하후영은 크게 기뻐하며 한왕 유방에게 한신을 추천했지. 하후영이 한왕과 젊은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심복 중의 심복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아직 한신의 운이 다하진 않았던 거야. 하지만 한나라 왕은 그를 치속도위(식량을 관리하는 장교)로 삼았을 뿐 크게 중용하진 않았어. 조금 진급하긴 했지만 여전히 뜻을 펼칠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지.

하후영은 전투에서 한왕 유방의 수레를 직접 끄는 사람이었어. 한왕이 직접 목숨을 맡길 만큼 신뢰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이지.


하지만 하후영 덕분에 한신은 한왕이 가장 신뢰하는 신하인 소하(蕭何)와 사귈 수 있었어. 소하는 한신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알아챘어. 소하는 그 뒤로 여러 번 한왕에게 한신을 추천했는데 한왕은 듣지 않았어. 그러자 한신은 실망해서 이번엔 한왕 유방에게서 달아났어. 소하는 한신이 달아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한왕에게 보고하는 것도 잊고 한신을 찾아 나섰어. 소하가 군영을 벗어나는 것을 본 누군가 한왕에게 소하가 도망쳤다고 알렸어. 유방은 몹시 화를 내며 실망했지. 소하는 유방의 오른팔 같은 사람이었거든. 한의 승상으로서 나라의 모든 살림과 군사 보급을 도맡아 했던 벗 중의 벗이었지.

당시 한왕의 군대는 중국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왕을 따라 억지로 끌려오다시피 한 사람들이었어. 그래서 틈만 나면 고향이 그리워 도망치는 일이 잦았어. 그런 사정을 알고 한신과 소하의 이 도망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가 될 거야.


며칠 뒤 소하가 돌아왔어. 한왕은 화도 나고 기쁘기도 한 상태로 왜 도망쳤냐고 소하를 나무랐어. 소하가 답했어. 도망친 것이 아니라 한신을 붙잡기 위해 급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왕은 황당했어. 장수들도 하릴없이 도망치는 마당에 고작 치속도위에 불과한 한신을 잡으러 갔다는 말을 믿으라는 거냐고 소하를 몰아붙였어. 거기에 소하가 답하지.

"다른 장수들은 도망을 쳐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한신은 이 땅에 둘도 없는 사람이라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왕께서 계속 한중의 왕으로 만족하신다면 한신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천하를 얻고자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고서는 일을 꾀할 사람이 없습니다. 결정하시지요."

한왕 유방의 꿈은 당연히 천하를 통일하는 데 있었지. 소하가 그리 나오니 믿기 어렵지만 한신을 등용하기로 해.

"그대를 보아 한신을 장수로 삼겠소."

소하는 한술 더 떠 대답했어.

"그냥 장수로 삼아 가지고는 한신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한왕이 머뭇거리다 다시 말했어.

"그러면 대장으로 삼겠소."

비천한 벼슬의 한신이 졸지에 대장군이 되는 순간이야.

소하가 답했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한왕은 한신을 불러 임명하려고 했어. 그러자 소하가 또 나섰어.

"그렇게 어린아이 부르듯이 대장군에 임명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한신은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왕께서 그를 대장으로 삼으시려면 좋은 날을 택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제대로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한왕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이런 점이 한왕 유방의 큰 장점이었지. 그는 필요할 때 신하의 말을 들을 줄 알았어. 싸움에서는 당할 자가 없었지만, 매우 독선적이었던 항우와의 결정적인 차이였지.

어찌 되었건 대장 임명식이 있다고 하니 한왕 아래 장수들은 저마다 기대에 찼어. 자기가 대장이 될 줄 알고 말이야. 그런데 당일 단 위에 오르는 사람을 보니, 웬걸 주인공은 한신이었지. 겁쟁이 한신이 대장군이 되다니! 모든 군대가 놀랄 수밖에 없었지. 아마 사람들은 엄청난 질투를 느끼며 한신의 능력을 궁금해하게 되었을 거야. 소하가 굳이 성대한 임명식을 하자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막사에서 임명장을 줬으면 보잘것없는 출신의 한신에게 대장의 권위가 서지 않았을 거야. 거창한 임명식을 통해 권위를 부여해야 한신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 이제 만인 앞에서 한신이 대장군에 올랐어. 한신은 어떤 능력을 보여주게 될까?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은 것은 대성공이었어. 한신은 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 천하를 차지하는데 기여했지. 그의 전투 이야기를 자세히 하려면 너무 방대하니 몇 가지 기억해야 할 승리에 대해서만 들려줄까 해. 한신은 심리전, 전격전, 기습전, 수전(水戰) 등 전쟁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 승리를 거두었어. 그가 얼마나 준비된 장수였는지를 말해주는 것이고, 또 얼마나 실리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지. 사실 전쟁이라는 것은 시작하면 상호 간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과감한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 돼. 그래서 [손자병법] 같은 병법서를 중국 고전 중 합리주의를 가장 강조하는 책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한신은 병법의 합리적 판단, 실질적 행동을 잘 실천하여 승리를 만들어갔어.

한신이 위나라를 칠 때였지. 위나라 왕은 나라 입구 임진이라는 곳의 수비를 강화하고 강을 건너지 못하게 물길을 틀어막고 있었어. 한신은 그 대응을 보고 대군을 거느린 것처럼 꾸며서 임진으로 향했어. 그리곤 배를 서로 이어 거기서 황하를 건너려는 것처럼 굴었지. 하지만 그건 속임수였어. 한신은 핵심 병력을 하양이라는 곳으로 우회시켜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배를 이용해 몰래 강을 건너게 하고, 위나라의 수도인 안읍으로 짓쳐 들어가게 했어. 길목을 지키느라 위나라는 수도를 비워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간파한 한신이 기습적으로 수도를 쳤던 것이지. 군사들을 멀리 보내고 소수의 병력만을 가지고 있던 위왕은 용감히 맞서 싸웠으나 당해낼 수 없었지. 한신은 곧 위나라를 점령하게 되었어. 한신의 속임수에 위나라가 보기 좋게 당했지.


한신은 상식을 깨뜨리는 전법을 사용하기도 했어. 조나라와 전투를 벌일 때의 일이야. 한신의 군대 수가 적고 조나라 군대는 성을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공격할 수가 없었지. 그러니 조나라 군대를 성 밖으로 유인해 내고 싸우다가 기습적으로 성을 점령하는 수밖에 없었어. 문제는 조나라 군대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그 군사들이 성 밖으로 쏟아져 나와 공격을 해왔을 때 한신의 군대가 버틸 수 있느냐였지. 한신의 답은 무엇이었을까. 한신은 기습을 담당할 정예 병사 이천 명을 먼저 보내고 나머지 군대들은 성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물가를 등지고 진을 치게 했어. 성에서 이 모습을 본 조나라 군대는 병법을 모른다며 비웃었어. 물가를 등지고 강한 군사를 만나면 그 힘에 밀려서 물로 빠져들어 가면서 몰살하게 될 것이 뻔해 보였기 때문이었지. 그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한신은 자신의 군사들에게 가벼운 식사만을 주면서 말했어.

“오늘 조나라 군사를 무찌른 뒤 다 같이 배부르게 만찬을 즐기자!”

다음날이 밝자, 한신은 군사 일부를 데리고 조나라 성 앞에 가서 싸움을 걸었어. 한신의 군대가 우스워보였던 조나라 군대는 성벽을 열고 나와 격렬히 싸웠지. 한신은 거짓으로 북과 기를 버리고 물가를 등진 자신의 진영으로 도망쳤어. 조나라 군대는 승리를 확신하며 한신의 군대를 무찌르러 강가로 짓쳐 나갔어. 한신의 군대가 북과 기를 버리는 것을 보고 성안에 남아있던 군사들도 모두 몰려나와 강가의 한신 군대를 공격했지. 하지만 한신의 군사들은 호락호락당하지 않았어. 오히려 죽기로 맞받아쳤지. 쉽게 생각하고 뛰쳐나왔는데 도저히 무찌를 수가 없었어.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한신의 먼저 보낸 기습병 이천 명이 조나라 성벽 안으로 달려 들어가 조나라 기를 모두 뽑아 버리고 한나라의 붉은 기를 성벽을 따라 죽 꽂았어. 조나라 군대는 강가의 싸움이 성과가 없자 성으로 돌아가려 했어. 하지만 성에는 이미 한나라 깃발이 꽂혀 있었어. 조나라 군사들은 자기 근거지를 잃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조나라 군사는 마구 달아나기 시작했어. 조나라 장수들이 도망가는 병사들의 목을 베면서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어. 결국 한신의 한나라 군대는 조나라 군대를 크게 무찌르고 조나라 왕을 사로잡는 공을 세우게 되었어.

한신의 군대는 어떻게 그렇게 강하게 버티어서 조나라를 공략할 수 있었을까? 한신을 따르던 장수들도 궁금해서 물었어. “오늘 장군께서 병법에서 피하라는 전술을 쓰셨습니다. 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면서 조나라를 무찌른 뒤 실컷 먹자고 하시니 믿기 어려웠습니다. 이것은 무슨 전술입니까?” 한신이 대답했어. “이것도 이미 병법에 있는 것인데 여러분이 몰랐을 뿐이오. 병법에 죽을 곳에 빠뜨린 뒤라야 비로소 살릴 수 있고, 망할 곳에 둔 뒤라야 비로소 멸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소. 지금의 우리 군사는 내가 훈련한 병사들도 아니고 시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다 싸우게 한 것과 같으니 죽을 땅에 진 치고 싸우게 하지 않으면 모두 달아날 텐데 어찌 이들을 쓸 수 있겠소?”

이것이 그 유명한 ‘배수진(背水陣)’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전투야. 앞서 한신이 도망간 사례처럼 이때의 군사란 지금 군대 같지 않아서 소속감이 거의 없었어. 이동하면서 그 고장에서 뽑아가곤 했지. 그러니 한신의 방식이 아니라면 그리 강력히 조나라 군사와 맞설 수 없었을 거야. 손자가 이미 얘기했지만 쉽사리 실천하지 못한 일을 한신은 과감히 실천하여 성공시킨 사례이지. 그의 과감성과 상황을 판단하는 힘을 알 수 있는 사례야.

원래는 물[水]을 등지는[背] 진영[陳]이라는 뜻이지만, 오늘에는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이루려고 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로 쓰이지.


한신의 싸움 중에서 단연 백미(白眉)는 최강의 적수 초나라의 항우를 무찌른 해하전투이지. 한신을 비롯한 유방의 한나라 장수들은 초나라 항우와의 결전을 치르기 위해 해하로 모두 집결했어. 전투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왕의 기품을 가지지 못했던 항우는 싸움에서 계속 이기고도 점점 위축되어 유방보다 훨씬 적은 병력으로 간신히 버티는 신세가 되어 있었어. 한나라는 항우의 세 배가 넘는 병력을 총동원해 해하에서 항우를 둘러쌌지. 이때 한신이 그 강력한 항우와 최전방에서 맞닥뜨리는 임무를 맡았어. 한신은 항우가 얼마나 무서운 장수인지를 잘 알고 있었지. 그래서 한신은 자신의 병력을 여기저기 흩어 놓았어. 항우는 무서운 기세로 한신의 본진으로 짓쳐들어왔어. 처음에 한신의 병력은 전면에서 크게 패하기 시작했지. 항우는 계속 한신의 군대를 무찌르며 한나라 진영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왔어. 그러나 그것이 바로 패착이었지. 한신과 한나라 군대는 물러나면서 압도적인 병력을 바탕으로 항우의 군대를 둥글게 포위하기 시작했지. 항우의 군대는 계속 이기며 나아가는데 싸우다 보니 적진에 갇힌 꼴이 되어버린 거야. 그의 군대는 이기면서도 지쳐갈 수밖에 없었어. 상대의 압도적 전투력을, 자신의 방대한 군사의 수로 이기는 한신의 묘수였던 것이지. 한신은 그렇게 항우의 초나라 군대를 포위하게 되자, 자기 군대를 시켜 일부러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게 했어. 사방에서 자기 나라 노래가 흘러나오자, 고향생각에 빠진 항우의 군사들은 그만 전의를 잃고 말았어. 한신의 고도의 심리전에 말려든 것이지. 이길 가망이 없어 보이는 포위 상황에서 집 생각이 나자,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달아나고 항복하기 시작했어. 이런 상황에서는 역발산기개세라는 항우도 어쩔 수 없었지. 그는 극소수의 병사들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나가다 전사하고 말아. 이로서 중국 천하를 놓고 다툰 초한 쟁패는 유방의 한나라가 승리하는 것으로 마감되지.

여기서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가 나왔어. 요즘엔 ‘아무에게도 도움이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을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지. 
항우의 이 최후 장면에는 여러 슬픈 이야기들이 전하는데, 특히 사랑하는 여인 우미인과의 이별이 그렇지. 우미인은 항우의 최후 탈출에 방해가 될까봐 항우 앞에서 자결하고 말아. 그 슬픈 이야기를 다룬 중국의 전통 경극이 바로 그 유명한 ‘패왕별희(覇王別姬)’야. 


한신은 한나라 승리의 절대적인 공을 세운 장수였어. 한신이 조나라, 연나라, 제나라 등 중국 북쪽을 공격하는 북벌을 성공하여 한나라의 지경을 넓히고, 최후의 전투에서 항우를 무찌르지 않았다면 어찌 유방의 천하제패가 가능했겠어. 동네 건달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며 모욕을 참아내었던 한 사내의 찬란한 승리였지. 한신을 통해 작은 모욕을 참고 거대한 성취를 이룬 한 인간의 모습을 우리는 만날 수 있는 거야.

그러나 한신의 빛나는 성취는 계속 이어지지 않았어. 유방과의 갈등은 그를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지. 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배우려는 토사구팽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돼. 한신은 왜 이 성공을 지키지 못했을까?

무엇보다 한신의 꿈이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을 거야. 그가 마지막으로 이루고자 한 꿈은 무엇일까? 천하를 얻는 것일까? 최고의 장군이 되는 것일까? 천하를 얻고 싶었다면 결국 한신은 유방과 한판 겨룰 수밖에 없었고, 최고의 장군이 되고자 했다면 유방에게 충성을 다해야 했겠지. 그런데 한신은 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어.

앞서 말한 전투 중에서 제나라를 칠 때 이미 한신과 유방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어. 유방은 제나라를 치기 전에 조나라를 점령한 한신의 병권을 빼앗고, 자신이 한신의 군대를 재편해 버려. 그러고는 한신을 제나라로 보낸 거였지. 한 마디로 유방은 한신을 믿지 못한다는 의사표현을 한 셈이야. 주도권을 잃은 한신은 강국 제나라를 차지함으로써 다시 대장수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었어. 제나라를 얻은 한신은 유방의 말을 안 듣기 시작했어. 마침 유방이 초나라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빠져 한신의 도움이 필요했어. 그런데 한신은 자신을 제나라의 임시 왕으로 임명하지 않으면 꼼짝하지 않겠다고 버텼지. 유방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하고 기분 나빴을 거야. 장군 시켜 기회를 줬더니 배신하는 꼴이었으니까. 화가 났지만 장량과 진평 등 모사들이 말려서 간신히 참고, 오히려 진짜 제나라 왕으로 임명하면서 자기편으로 남겨둬. 아직 항우를 무찌르기 전이었기 때문에 한신이 정말 필요했고, 그러니 화가 나지만 참았던 것이지. 이때 한신의 태도는 누가 봐도 유방에게 완전히 충성하는 태도는 아니었어.

상황이 이렇게 되자, 괴통이라는 사람이 한신에게 제안을 했지. ‘어차피 유방은 당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당신이 먼저 나서서 지금 차지한 제나라를 중심으로 한나라, 초나라와 대등한 나라를 만들어 대항하라, 안 그러면 한왕 유방이 먼저 당신을 칠 것이다’라면서 말이야. 그러나 한신은 고민에 빠지긴 했는데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

괴통은 다시 제안했지.

“꾸물거리고 있으면 맹호라도 벌이나 전갈만 한 해도 끼치지 못하고, 준마라도 노둔한 말의 느린 걸음만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먼저 결단하십시오.”

하지만 한신은 차마 한나라를 배반하지 못했어. 아주 어려울 때 자기를 대장군으로 삼아준 은혜도 생각나고 또 자신이 공이 많으니 제나라를 빼앗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유방은 한신에게 제나라 왕을 선물로 주고, 해하 전투에서 한신과 더불어 항우를 무찔렀지. 그 이야기는 앞에서 이미 했어. 항우를 무찌르자마자 유방이 한 일이 무엇이었나 하면, 바로 제나라를 습격해 한신을 제나라 왕에서 끌어내린 것이야. 그러고는 한신을 초나라 왕으로 삼았지. 이쯤 되면 유방이 한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견제하는지 알 만 한데 이상하게도 한신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 아마 초나라가 자신의 고향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어. ‘금의환향(錦衣還鄕)’한다는 생각에 유방의 칼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나 봐. 한신은 초나라에 이르러 자기에게 밥을 적선했던 아낙을 불러 천 금을 내렸어. 또 자기를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고 모욕했던 건달을 불러 벼슬을 내렸어. 은혜는 잊지 않고 갚고, 원수도 너그럽게 포용하는 대장부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지.


고향에서 돌아온 영웅의 즐거움을 누린 것은 잠시야. 유방은 진평이라는 모사의 꾀를 받아 한신을 자신의 순행지로 꼬여내서는 체포해 버려. 그리고 모반죄를 씌워 죽이려 하지. 충성을 다하지 않는 한신이 그 훌륭한 전쟁능력으로 자신에게 도전하면 어떻게 되겠어? 그러니 유방은 한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거지. 그때 한신이 말했어.

“정말 사람들의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토사구팽(兎死狗烹)], 높인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 버린다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구나.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죽는 것은 당연하겠지.”

한신의 이 말 덕에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유명해진 것이지.

하지만 유방도 한신의 지난 공을 인정하고 싶었는지 그를 죽이지는 않았어. 한참을 죄인으로 끌고 다니다, 왕보다 한 단계 아래로 강등시켜 한신의 고향인 회음의 제후로 삼았지. 그제야 한신은 유방이 자신을 견제하고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뒤늦게 한신은 자기 힘으로 유방을 물리치고 천하를 도모할 생각을 했어. 거록군 태수 진희와 손잡고, 유방의 아내 여후와 유방의 아들 태자를 습격하려고 했지. 나름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 진행했으나, 중도에 계획이 여후에게 새어 들어가고 말았어. 하늘이 한신을 돕지 않은 것일까? 여후는 소하를 시켜 한신을 장락궁이라는 궁궐로 입실하게 했어. 자기를 천거했던 소하의 말에 의심 없이 궁으로 들어간 한신은 여후가 풀어놓은 무사에게 바로 잡히고 말았어. 그리곤 목베어 죽임을 당했지. 그는 죽으면서 이렇게 말했어.

“괴통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한낱 아녀자에게 속은 것이 어찌 운명이 아니랴!”

결국,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대장군으로 세상을 호령했던 한신은 여태후의 계략에 말려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되었어. 사실 여태후는 후에 한나라의 실권을 쥐고 뒤흔드는 여걸이었기에 그냥 ‘아녀자’라고 할 수는 없었지.

그의 죽음은 참으로 허망한 것이 아닐 수 없어. 그가 유방과의 관계에서 그에게 도전하든지, 아니면 충성을 다하든지 분명히 했으면 이런 결과를 맞지는 않았을 거야. 그의 마지막 우유부단함에 하늘이 그를 버린 것이라고 하겠지.

유방이 처음 한신을 죄인으로 잡아들였을 때, 둘이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

한나라의 황제가 된 유방이 물었어.

“나 같은 사람은 몇 명의 군대를 이끌 수 있겠소?”

한신이 대답했어.

“폐하께서는 10만 명밖에 이끌 수 없습니다.”

유방이 물었어.

“그대는 어떠하오?”

한신이 대답했어.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유방이 웃으면서 물었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면서 어째서 나에게 사로잡혔단 말이오?”

한신이 답했어.

“폐하께서는 군대를 이끌 수는 없지만 장수를 거느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이 폐하께 사로잡힌 까닭입니다. 또 폐하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니 사람 힘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과연 한신의 말대로 된 것이지. 한신은 엄청난 군대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유방은 그런 능력을 가진 장수를 거느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 그릇이 달랐던 거야. 그리고 하늘도 한신을 돕지 않고 유방을 도왔어. 한신은 이 차이를 그의 몰락 이후에 깨달았던 거야. 그래서 그의 운명은 토사구팽의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지.

여기서 그 유명한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나오지. 앞에서도 봤듯이, 한신의 삶에서 정말 많은 고사성어가 기록돼. 그만큼 극적인 삶을 산 사람이라는 것이겠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사람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풀지 못하면 그 능력이 오히려 족쇄가 될 수 있음을 한신은 잘 보여주고 있어. 이것이 앞서 여몽의 삶과 한신의 삶이 달라지는 중요한 차이이지. 너희들은 능력과 관계가 언제나 함께 작동한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어. 능력을 키우되 그것이 계속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을 한신의 삶에서 배우길 기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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