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가 정조를 가르칠 때
예전 아버지께선 상머리에서
밥 한 톨 흘리지 않고 국물 한 숟갈 남기지 않도록 엄히 가르치셨다.
농민들이 애써 지은 음식의 귀중함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가 밥맛 없이 수저를 깨작거리면
주저없이 밥 먹을 필요 없으니 자리 물리라고 하셨다.
배가 고파야 음식 귀한 줄 안다는 말씀이었다.
어른들은 대개 이렇게 가르치셨다.
오늘 내가 그만큼 애들을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글을 읽다 옛 생각이 들었다.
신하들은 현실 생활에서 백성에 대한 사랑을 체득하도록 임금(영조)이 직접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세손(정조)이 12세 되던 영조 39년(1763) 1월 5일에 사헌부 장령이자 시강원 사서인 정술조가 올린 상소가 그 하나이다. 그는 말하기를, “예를 들어 좋은 음식을 먹을 때에는 반드시 ‘밭 가운데서 농민들이 땀방울을 흘려 가며 낟알을 고생하여 얻은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비단 옷을 입을 때에는 반드시 ‘베틀 위에서 손가락이 터져가며 올올이 모두 수고를 쌓아 이룬 것이다’라고 가르치며, 넓은 집에 거처할 때에는 반드시 ‘우리 백성들 가운데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쳐서, 일마다 물건마다 그 속에 담긴 고통을 가르친다면 보고 느끼는 도리에 얻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진언했다. 임금은 그의 말에 동의를 표하고, 가능한 한 생활 현장에 나가서 세손을 가르치는 일을 소홀이 하지 않았다.
- 한영우, <정조평전, 성군의 길 上> 231-232.
이런 가르침이 정조의 백성 사랑을 낳지 않았겠는가.
배울 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