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쿤우, 필리프 오티에 지음/ 한선예 옮김
740페이지가 넘는 이 만화책(그래픽노블)은
중국인 만화가와 프랑스인 작가가 힘을 합쳐 완성한 수작이다.
1950년에 태어나 현재까지 중국의 현대사를 관통한 윈난 출신 화가 리쿤우의 자전적 이야기를 중심으로
중국의 사회를 밀도있게 그려놓았다.
만화라는 양식과 개인사라는 장점이 합쳐져 중국의 역사에 대해 엄청난 실감을 선사한다.
그림체도 중국의 혁명화를 그리던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난 독특한 힘이 있다.
마치 예전에 유태인의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다룬 만화 <쥐>를 보는 강렬한 느낌이었는데
알고 보니 같은 출판사의 작품이다.
한 사람의 구체적 삶을 통해 만나는 대약진운동의 기근, 문화대혁명의 광기, 개혁개방의 열기는 너무나 생생해서 보는 사람의 가슴을 파고 든다.
그리고 왠지 가난한 혁명시대의 삶보다 그 이후 개혁개방 시대의 삶이 슬퍼보인다.
평등한 가난, 혁명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으며 청춘을 보내다, 엄청난 차별의 부자 시대를 만나는 저자의 난감함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인생>처럼 대약진시대로부터 개혁개방 이전까지를 다룬 콘텐츠는 꽤 보았지만
혁명 직후부터 21세기까지를 아우르는 개인사를 다룬 콘텐츠는 처음 만난다.
하루의 독서로 많은 생각을 얻는 즐거운 독서였다.
21세기 후진타오의 새해 연설을 들으며 리쿤우는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정리한다.
아버지가 내게 처음 혁명의 언어를 가르쳐주었던 시절,
아버지가 넓은 어깨 위에 나를 목말 태우고 새로운 중국의 영광을 위해 나아가던 시절,
그 시절은 얼마나 멀어 보이는가.
어머니가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자동차라고는 한 대도 없는 길 한가운데로 데려가곤 했던 그 시절...
그 중국을 나는 경험했고 사랑했다.
마들렌 케이크 한 입이 불현듯 프루스트에게 과거를 불러일으킨 것처럼,
나는 갑자기 과거를 회상하고, 과거에 대한 기억을 여기 내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다.
하지만 그 과거의 중국 하늘 아래에선 얼마나 많은 불행이 있었던가!
우리가 당당했든 아니든, 당시엔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전혀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 당시) 우리는 투명 인간이었다.
중국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상대 위에도, 에베레스트에도, 우주 공간에도...
우리는 가까스로 유엔에 가입했고,
가끔씩 우리의 기근으로 인해 전 세계 텔레비전 뉴스의 일부를 장식했다.
나의 나라는 그런 나라였다.
그것은 '메이드 인 차이나'의 나라도, 마천루의 나라도, 올림픽의 나라도, 엑스포의 나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건설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비록 그것이 아직 완전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무력 정복이나 풍부한 지하자원이나 상속받은 자신의 덕을 본 것이 아니기에 더욱 자랑스럽다.
우리가 이룬 것은 절대로 그런 것에서 나온 게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직 땀방울밖에 발견하지 못한다.
내 이마와 내 아이들의 이마에 흐르는 땀.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 역시 똑같이 고된 노동과 희생으로 만들어질 어떤 삶이다.
우리를 빈곤으로부터 멀리 데려갈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의 말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
단순하지만 심오한 말이다.
"발전이 우리의 첫 번째 도리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그 말의 깊은 뜻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내 삶에 주어진 궁극적 의미이다.
그저 한 중국인의 삶.
이 중국인의 삶은 당신들, 사랑하는 부모님, 친구들, 동료들의 것이기도 하다.
나의 삶을 공유하고 이 책에 영감을 준 당신들 말이다.
나는 영원히 당신들과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