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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산 Apr 12. 2020

부활 전 안식일의 슬픈 고요를 생각한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은 금요일.

유대인들의 안식일 전 날이었다.

안식일에는 시체에 염을 하는 정도만 허락되고 여하한 노동이 금지되기 때문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서둘러 예수의 시신을 수습해 자기 새 무덤에 모셨다.

그리곤 안식일이 왔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이 날.

예수를 잃은 여인들과 제자들과 가족들은 어떤 심정으로 하루를 견뎠을까.

공관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 어디에도 이날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예수의 불꽃같은 공생애와 그날의 고요함은 절벽같은 대조를 이룬다.

그 하루, 슬픈 고요의 깊이를 헤아릴 길이 없다.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은 어찌된 것인가.
완전한 패배.
돌이킬 수 없는 절망.

일요일이 되자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몇 여인들이 진이 빠진 몸을 일으켜

예수의 시신에 향을 바르려고 무덤에 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덤에 예수가 없었다.

"그들은 뛰쳐 나와서, 무덤에서 도망하였다. 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던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막 16:8)

절망과 슬픔이 너무나 컸기에 그들은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수의 부활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기대했다면 그들이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활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슬픔 속에서 일어났다.

부활은 완전한 절망을 전제로 한다.

새로운 시작,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선포는 완전한 좌절 후에 나타난다.

한 세계가 무너지는 곳에서 놀라운 새 세계가 시작된다.

이것이 부활의 역설이다.

무덤 속에 있던 천사가 두려움에 떠는 여인들에게 말했다.

"그는 그들보다 앞서서 갈리리로 가십니다" (막 16:7)

갈릴리는 예수가 공생애,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한 땅이다.

부활한 예수가 다다른 갈릴리는 그 전의 갈릴리와 같지 않다.

깊은 좌절, 슬픈 고요를 이겨낸 사람들의

두려움 없는, 지지 않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비장함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을 지탱하는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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