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적은 동지이고, 영원한 우방은 없다
2021년, 20여 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이 물러났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미국을 물리친 셈이다.
미국과 탈레반의 관계는 이 전쟁 이전에는 적이 아니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을 때 미국은 탈레반과 손을 잡아 소련과 싸웠다.
그런 역사를 보다 어린 시절 본 영화 <람보>가 떠올랐다.
까까머리 시절 너무나 재미있게 본 <람보2>.
베트콩과 소련 공산주의자들을 홀몸으로 처단하는 그 액션이 그땐 왜 멋있었을까.
베트남 전쟁이 그렇게 단순한 반공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건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그후 <람보3>가 나왔을 때도 별 생각없이 액션을 즐겼다.
그때 람보의 적은 아프가니스탄을 불법 침공한 소련군.
람보의 전우는 그들에 저항하는 무자헤딘 게릴라.
람보와 무자헤딘 전사들의 우정이 어찌나 멋지게 표현되었던지
아랍의 정세에 무지한, 더벅머리는 그냥 엄지척을 날렸더랬다.
그 무자헤딘 속에서 두각을 나타낸 세력이 바로 지금의 탈레반이다.
88년 영화 속 그처럼 깊은 관계이던 람보와 탈레반이
소련군 철수 이후, 현재에 이르러 철천지 원수가 되고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다 람보의 후예들이 이렇게 그곳을 떠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적의 적은 친구고, 영원한 우방은 없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절절히 증명하는 사례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