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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들

생활의 저편, 생활의 한 복판

16년 12월 31일의 일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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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겨진 나는 다락방 서재에서 대학원 논문 쓰던 시절 보던 먼지 쌓이고 누렇게 변한 책을 꺼내왔다. 그때의 모든 일들이 마치 이렇게 변해버린 듯하다.


해가 갈수록 생활의 저편보다는 생활의 한 복판에 위치한 사람이 되어가고, 책임의 목록은 당연하단 듯이 길어만 간다. 대리가 되었다가 과장이 되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직함들이다.


스무 살 문학도 시절 교수는 생활의 저편에 있어야만 창작을 할 수 있다고 했던가. 강의노트에 열심히 끄적이던 스무 살의 어렴풋하고도 달콤했던 기억도 낡아가고, 그 강의실에 앉아 머릿속으로 각자의 꿈을 꾸던 사람들도 세상의 것으로 낡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도 이제는 삼십 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 그럼에도 한편으론 철들지 않은 영혼이 숨죽이고 볕 들지 않는 창문을 열 날을 기다리며 박제되어있다. 자꾸 아이디어들이 떠올라도 이 생각들에 생명을 불어넣어주지 못함이 미안하다.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예술인들에게 창작을 하라고 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나이지만, 정작 나의 삶을 돌아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디에 있든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다만 그 최선을 다할 가치가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신중함을 기하자. 이 역시 지금으로서의 최선이니까. 그것이 내년에 지킬 나와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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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의 저편을 언급하던 문학도 시절 교수의 긴급 체포 소식이 이 글을 쓰던 날 뉴스로 흩뿌려졌다.

- 생활의 저편이란 어디쯤에 존재하는 영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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