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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지 Aug 17. 2019

30대? 단지 낭만의 노을이 더 짙어질 뿐

홍대의 음유시인 한경록(Captain Rock)을 만나다. 

로피시엘 옴므 기고글입니다. 이때와 지금 또 우리는 어떻게 변했고, 또 어떻게 변하지 않았을까요? 

후속 인터뷰가 곧 이어질 예정입니다. 


30대? 단지 낭만의 노을이 더 짙어질 뿐, 그래서 더 예뻐. 

노는 건 내 삶이야. 나에게 음악은 노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순간 크라잉넛은 재미없어질걸.
로피시엘옴므 기고글


스스로의 직업을 ‘노는 일’로 정의하고 신나게 살아가는 30대 중반의 남자, 크라잉넛의 한경록.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또 그들에게 위로받기도 하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는 점, 홍대를 기반으로 한결같이 방황해왔다는 점, 나와 그는 그런 면이 닮았다. 나는 스무살에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수상한 이래로 쭉 공연을 해왔고, 문화예술기획자이며, 이제 서른이 된다. 서른을 코앞에 두고 지난 날을 떠올리던 중, ‘어쩌다 난 홍대에 와서 기타를 잡고 노래를 쓰며 살게 됐지?’ 하고 궁금해졌다. 문득 크라잉넛의 콘서트를 처음 봤던 순간이 떠오른다. 2000년, 지방의 한 시민회관에 나타난 울부짖는 땅콩들이 거칠게 ‘닥쳐’를 외쳐댄다. 당시 20대였던 크라잉넛의 에너지는 10대 고교생인 날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밴드 사운드에 매료되며 시작된 내 20대는 홍대에서 음악으로, 글로 채워졌다. 그 시작점에 위치한 사람, 크라잉넛의 한경록을 ‘서른 즈음에’ 만났다.


한경록은 당시를 떠올리며 “주 4회 이상은 드럭(상수동에 위치한 라이브클럽)공연을 했어. 다이너마이트 같은 삶이었지.” 라고 말한다. 초중고교를 함께 나온 개구쟁이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망나니처럼 놀았고, 더 잘놀기 위해 연습하고 기획하고, 그러다 스스로 회사까지 차렸다. 모든 게 놀이가 되어야 행복한 것 같다는 그의 말에서 나는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을 떠올렸다. “그런데 논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나봐. 그 편견을 내가 깨줘야지. 잘 놀기 위해 준비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마인드가 있으면 되지.” 그는 그런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랑하듯 전국을 떠돌며 공연하고, 싸우고 술을 들이부으며 열정의 20대를 보냈다. “마치 인디아나존스의 모험 같았어.” 그렇게 그는 하루하루 ‘성실하게’ 방황했고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다. 돌아보니 20대 시절 사고친 경험들이 서른 이후엔 노하우로 녹아드는 것 같단다. “20대가 리허설이라면 30대는 본공연인 것 같아. 삼십대는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니야!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야돼.” 


16년간 크라잉넛을 해온 그에게 무대는 때로는 가장 편하고, 혹은 두렵고, 또는 가장 재밌는 곳이다. “무대란 건 아직도 잘 모르겠어. 알면 알수록 재밌어. 여자 같애.” 촬영장으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진지와 유머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던 그는 “난 은유를 좋아해. 미지 곡의 가사는 철학적이라 좋아. 관조적 느낌을 받았지. 근데 좀 더 대중들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음 좋겠어.” 라며 내 EP <은유화>와 신곡에 대해 말한다. 10년 전, 내가 동경하던 무대 위에 서있던 선배로부터 듣는 내 음악에 대한 이야기다. 기분이 묘하다. 


그는 ‘낮술’과 같은 ‘역설’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노래는 웃기면서 서글프고, 신나는 리듬 아래로 슬픈 향기가 배어나온다. 술마시고 반항하고 놀기 좋아하는 천상 로커지만, 한편으론 사려깊은 모습도 역설이라 할 수 있을까. 그는 30대가 된 후 오랜 친구 사이인 밴드 멤버들과 서로 더 예의를 지키게 됐다며, 팀생활은 어쩌면 음악보다 배려와 존중이 더 중요한 것 같단다. 시간이 준 이런 깨달음은 크라잉넛을 16년차 밴드로 만든 원동력 아닐까. 좋아하는 후배들에게 마음껏 술을 사기 위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순수한 남자, 같이 있으면 ‘사람 좋다’라는 걸 폴폴 느끼게 해주는 남자라 그런지,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200명 이상의 지인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술판을 벌이는 그의 생일은 홍대 3대 명절로 칠 정도다.(할로윈, 크리스마스, 한경록 생일) 그런 그는 정작 자신이 “사람이 좋은진 모르겠고, 사람을 좋아하는 거”라고 한다. 야무진 언어 유희다. 


촬영 중에도 쉴 새 없이 농담과 재미난 액션을 멈추지 않는 그에게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30대 중반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게다가 그는 ‘낭만이 결여된 사회’에서 여전히 ‘낭만’을 추구한다. 그에게 낭만이란 각박한 사회에서, 회색 아스팔트로 가득한 도시의 부품으로 살지 않으려는 시도다. “유머와 낭만을 지금 찾는다는 건, 어느 정도 반항이기도 하지.” 그래서 20대 때처럼 변함없이 까분다. “기존 관념들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래서 까부는 것 같아. 너무 착하면 재미없잖아.” 그러면서 그는 30대가 되면 뭔가 변할 줄 알았는데 하나도 변하지 않아 신기하단다. 무려 10대 때부터 지금까지 주량이 전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행이다. 


“난 사실 3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방황 중인 것 같아. 그러니 내게도 어두운 면은 있겠지. 하지만 기왕이면 밝게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 그가 ‘찰리 채플린’을 가장 존경한다는 점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타인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가진 독특한 애수 같은 게 있다. “우린 영원할 순 없으니까 슬픈 것 같아. 인간은 기본적으로 슬프니까 태어났을 때부터 우는 거 아냐? 웃음은 그 운명에 대한 반항이지. 하하하” 그런 그에게는 낭만조차, 쓸쓸한 느낌으로 와닿나보다. 해가 저물 때 비로소 보이는 노을처럼 말이다. 30대가 되고 나니, 그 낭만의 노을이 더 짙어지는 듯하단다. “근데, 그래서 더 예쁘잖아.” 낭만의 노을이 짙어질 30대 초입,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본격적으로 놀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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