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의 핵심은 2번 문단에 있습니다. 대부분 리드만 읽게 된다는 걸 알기에 서두에 첨언합니다.
당신이 어떤 일을 경험했건, 무슨 일을 해왔건 나이들었으면 ‘할머니’ 이다.
1. 누군가를 부를 때 한국만큼 호칭이 중요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선생님, 00님, 00씨, 각종 직급, 친척들 사이의 호칭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호칭의 향연이다. 일단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명함부터 얼른 보고 대표, 부사장, 상무 전무 부장 차장 과장 대리 매니저 지배인 무엇이라 부를지부터 어서 외워야한다. 승진하면 또 그 호칭으로 어서 바꿔 불러주어야 실례가 되지 아니함. 때로는 선임 주임 프로 등등, 어떤 곳은 사무총장, 이사장, 대표자 이사, 어떤 곳은 직급파괴 영어 닉네임으로, 혹은 우린 이름만 불러주세요 등등. 이 문화권에서 그만큼 호칭이 중요해서 그렇다. 오래되고 큰 조직일수록 발언권 등을 포함한 위계질서가 직급에 얼라인됨.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해외에서 일할 때 빛을 발하는 타입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파운더이건 디렉터이건 상호 원하는 방식으로 이름을 부르고 직접 대화할 수 있을 때 일이 더 잘 되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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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대표라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대표가 되며
인턴이라 불러주면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인턴이 되는 거 아니겠나.
(원작에선 호칭이 아니라 그 본질과 이름이 중요한 거 아시죠? 패러디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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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런데 이토록 세분화된 호칭 문화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유독 나이든 사람들에겐 호칭을 일괄 적용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어르신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 (본인들 할머니도 아니면서...)
개인적으로는 이게 모든 호칭을 박탈해버리는 말 같다. 솔직히 활동가를 계속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듣기 불편함. 본인은 열혈 활동가이고, 정작 목소리를 낸 당사자는 그냥 우리네 할머니라는 프레임. 이게 무서운 이유는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호칭이 많은 걸 결정짓기 때문이다. 할머니라는 프레임에 씌워버리는 건 (그리고 할머니라 기억이 ~하고 서운하셨을거며~라고 자연스레 감정에 휘둘리는 비논리적 인물로 대중에 비치게끔 이어갈 수 있음) 게임에서의 우위를 선점하는 셈이라서 팩트가 무엇이건 간에 그 명명 행위 자체가 공정하지 않게 느껴짐. 중년의 여성을 무조건 아줌마라고 부르면 무례하다고 여길거면서, 노년의 여성에게는 어째서 할머니를 공손한 표현이라고 여기는가. 연일 보도에서도 할머니 할머니... 차라리 할머니 떼고 이름만 불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