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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지 Jun 07. 2020

사치와 궁핍

누군가의 사치는 누군가의 궁핍을 담보로 가능하다. 사치의 편에 설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을 테다. 내 경우에도 그렇고. 그렇지만 굳이 점점 먼 길로 돌아가는 이유는 의미있는 일에 대한 기준이 점점 엄격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니면 이것 또한 조금 다른 의미에서의 사치다. 물질적 사치를 누리지 않을 권리를 개발한 자의 사치. 문학 전공을 시작했을때 한문학을 가르치던 노교수는 4년 내내 같은 옷을 입었다. 결혼도 하지 않았다했다. 당시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강의실에서 만나는 그는 매일매일 행복해보이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따라 사는 것처럼 보였다. 


한편 젊은 현대문학 교수는 우리에게 탕진의 미학을 가르쳤고, 헤겔을 근거로 타인을 사랑하는 일과 자신을 사랑하는 일의 양립불가능성을 가르쳤다. 흠, 그는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했던 것일까, 불미스러운 일을 겪으며 감옥에도 다녀왔다. 이것은 물론 내가 졸업하고도 수년 후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나는 매사에 열의가 넘치는 교수로 그를 인지하고 있었다. 


한편 창작실기로 초빙온 '찐' 시인 강사. 그녀는 히피같은 펌을 하고, 봄에도 여름에도 블랙만 즐겨입었다. 낭만과 연애를 중시한 그녀는 이 좋은 시기인 20대 초반을 아낌없이 즐길 것을 강조하였다. 하루는 그녀가 통크게 모두에게 커피를 쏘겠다고 하였다.(물론 교내 자판기) 자, 밀크커피 손, 블랙커피 손, 나는 둘 다 들지 않았다. "전 녹차나 율무차요."


그녀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내게 쾌락은 몸에 나쁜 것들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커피, 담배를 멀리하고, 연애도 하지않고, 착실하게 수업에 나와 공들인 과제 따위를 내놓고선 녹차나 율무 따위를 마시겠다는 스무살 글쟁이라니! 결석하고 밖에 나가서 연애를 하라고! 정 안되면 나가서 나무라도 껴안고 와! 그래서 나는 큰 나무를 찾으러 북한산에 갔고, 그것을 껴안아본 느낌을 사진과 함께 글로 써냈다. 내가 봐도 재미없는 20세 문학도다. 이런 문학도도 있어야 세상이 재밌는 것 아니겠는가.과학을 사랑하는 나는 소설 창작 실습 시간에는 SF 소설을 써냈다. 아무튼 그렇게 정신적으로 부유하듯 다니다, 자보를 보고 들어간 대학신문사. 이 특이한 집단은 반자본이라는 기조를 가지고서 80년대생이었던 우리를 80년대의 삶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12년이 흘렀다. 당시 기자일을 함께했던 많은 선후배동기 중 유독 친한 한 친구는 시인이 되었다. 문학소녀시절 우리가 동경하던 한 문예지를 통해. 우리는 서로 급할때 돈과 물건을 빌려준다. 그녀도 나도 졸업 후 비교적 안정적이고 많은 수입을 획득할 수 있는 직장에도 다녔지만 곧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생각과 가치를 가지지 않은 사이에서 금전거래같은 일은 일어나서는 안되기에. 서로에게 유일한. 벼룩, 개미끼리의 거래다. 


시가 세상을 구하리라 믿었는데 불과 작년까지만해도! 문득 짐정리를 하다가 굉장히 어려운 시험문제를 보았다. 그리고 야심찬 답안. 10년전의 내가 썼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쓰지 못하고 이렇게 생각하지 못한다. 공부하면 할수록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게된다. 반면 생활은 더욱 깊이 찾아온다. 생활의 저편에 있는 것이 예술가라고 하였다. 나는 생활의 한가운데에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기가 생의 한가운데라고 자랑스럽게 외쳐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게 다 잔고가 떨어졌을때 일전에 내가 오만원을 준 적이 있는 시인에게 다시 십만원을 전해받은 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2014년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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