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번외 편 NO.2
정아와 나는 2005년 처음 만났다.
05학번인 정아는 당시 대학 1학년 신입생이었고, 나는 제대를 앞둔 군인이었다.
첫 만남 장소는 동아리방이었다.
우리는 동아리 방을 암실이라 불렀는데,
그 공간은 계절마다 차이는 있지만, 오후 2시 이후부터 해 질 녘까지는 플라타너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오래된 공간을 제법 멋스럽게 만들어준다.
빛에 의해 멋스러움이 변화하는 공간.
그래서 타 동아리와도 동떨어져 있는 이 오래된 공간이 사진 동아리와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오후의 동아리 방(암실) 모습)
어느 날 휴가 기간 중 동아리방에 들렀을 때 정아가 그곳에 있었다.
당시 상은이라는 친구와 함께 였는데, 유독 긴 머리를 하고 있던 정아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인 체 책을 보고 있었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숙제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조용히 책을 읽는 모습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이 날이 우리의 첫 만남 이었다.
(암실 앞 플라타너스 나무에서 촬영 - 결혼 후 촬영)
제대 후 나는 동아리 회장을 했다.
학과에 소홀한 만큼 동아리에는 열심히였는데,
당시 시기상으로도 내 동기들의 복학이 늦어져 별 경쟁 없이 회장일을 하게 되었다.
정아는 기수 장이 되었다.
말수가 없고 내성적인 정아가 기수의 장을 맡은 건 지금 생각하면 잘 이해가 안 가지만,
조용히 열심히 활동한 정아가 동기들에게는 지지를 얻었던 것 같다.
회장과 일 학년 기수장 관계에서 사실 크게 대화할 일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나는 틈틈이 정아와 대화를 시도했다.
당시 만남의 목적은 순수했다.
일 학년 후배들과 친해지기 위해서였다.
카페도 아닌 주로 동아리방이나 놀이터에서 캔음료를 마시며 대화했고,
가끔 공강 시간을 맞춰 점심을 먹었다. 물론 점심을 먹을 때는 정아의 동기들도 함께였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촬영 - 2006년)
동아리 활동 중 구성원이 가장 크게 부담을 느끼는 행사는 사진 전시회이다.
1학년은 1년에 한차례 신인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에 참여하는데,
이 기간에는 촬영을 독려(? 혹은 강요) 하기 위해 신입생들에게 싫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 역시 신입생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도 냈고, 늦은 시간까지 동아리방에 남아 고생하도록 강요했다.
이 시기 정아는 동아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정아가 그만두지 못하게 설득하는 과정에서 아마 좋아한다는 감정이 생겼던 것 같다.
동아리 종강 총회 뒤풀이 자리에서, 나는 정아에게 '왕의 남자'라는 영화를 같이 보자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마지못해 한 결정일 수도 있겠지만 정아는 수락했고, 그렇게 우리는 첫 번째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사진 : 눈 내린 밤 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