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쁘네옷

고도를 기다리며.. NO.291

by 고태환



영화 중경삼림은 두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인 영화이다.
그 중 양조위가 주연한 두번째 이야기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양조위를 짝사랑하는 식당 종업원 여인이 남자 몰래 그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는 남자의 물건들을 하나씩 하나씩 새걸로 바꿔놓는다.
남자는 자신이 사랑했던 헤어진 여인을 사물로 추억하는데,
처음에는 사물이 바뀌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다가
어느순간이 되어서야 자신의 방에 많은 것이 바뀌어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참 둔한 남자다.




처음 출산휴가가 시작되고, 집안이 눈에 띄게 깨끗해졌다.
내가 변화를 인지한건 여기까지 이다.

그런데 어느날보니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 있다.
아기의 서랍장 위에는 새로운 플라스틱 상자들이 가지런히 쌓여있고,
서랍장 안은 어수선하던 예전과 달리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안방에 가보니 고도가 자라면서 사용이 뜸해져 치워졌던 물건들이 깨끗하게 닦여져 나와있으며,
아기 침대 역시 신생아 높이로 조절되었고, 모서리의 먼지까지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다.

화장실에 가보니, 고도가 쓰던 욕조 대신 새 아기 욕조로 변해 있었고,
빨래 건조대에는 아기 이불등 많은 빨래들이 널려있었다.

거실에서 고도가 베던 몽몽베게를 어느 순간 안방에서 고도가 베는걸 보고도 그러려니 했었는데,
알고보니 몽몽베게로 형제가 싸우게 될까봐 정아가 미리 하나 더 사둔거였다.
(품절이 자주되는 품목이라 미리 샀다는데, 그래도 조금 이른감은 있다.)
아무튼, 생각보다 많은 것이 변해 있다는걸 너무 늦게야 알게됐다.

나도 참 둔한 남자다.





둘째의 출산이 다가오면서 정아의 손이 더 분주해 졌다.
정아가 작년에 고도가 입던(혹은 선물로 받았던) 옷들을 꺼냈다.
대부분이 크기가 작은 옷들이어서 둘째 은기가 입을 수 있는걸로 선별 중이었다.
아마도 미리 세탁해서 넣어두려나보다.

아기를 키우다보니 특별한날에 아기와 관련된 선물을 자주 받는데,
가장 많이 받는 선물은 옷이었다.
작년에 받은 옷 중 어떤것은 입기도 전에 사이즈가 작은 옷을 선물받기도 했고,
어떤옷은 너무 커서 받자마자 서랍속에 넣어두기만 했던 옷들도 있다.

이 옷들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작년에 컷던 옷들을 고도에게 하나하나 입혀보며 선별하는데,
아래 사진 속 바지가 고도는 마음에 들었나보다.
정아가 입혀주자마자 본인 스스로..

"이쁘네.. 이쁘네... 하하하~ 이쁘네.."

감탄사를 연발하더니, 빙글빙글 자리에서 돌기도 하고,
좋아서 이방 저방을 소리치고 웃으며 뛰어다녔다.

선물로 받았던 옷이었는데,
사이즈가 커서 한번도 입혀본적 없었던 옷이고
오랜시간 서랍안에 있었던 옷이라 세탁을 필히 해야했다.
벗지 않으려 떼쓰는걸 억지로 빼앗았더니,

"이쁘네~ 이쁘네 옷 .. 이쁘네 옷.."

하면서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울면서도 계속 "이쁘네 옷" 이라고 말을 반복하는데,
어지간히 맘에 들었나보다.

그나저나 '이쁘네 옷' 이라니 명칭이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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