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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Mar 26. 2016

일하는 여자는 아름답다

[후기:책]LEAN IN

스타트업 쪽에서는 Lean startup는 용어가 꽤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다. 보통은 최대한 가벼운 제품을 출시해서 시장 테스트를 통해 서비스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방법론을 말하는데, 고백하건대 이 <Lean in>이라는 책도 그런 스타트업 관련 서적인 줄 알고 굳이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부인과 함께 집 앞에 새로 생긴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갔다가, 부인이 이 책을 원서로 골라서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내용을 공유해주었고 내가 이 책에 대해서 크게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은 여성으로서 페이스북의 COO의 위치에 오른 Sheryl Sandberg의 자서전 같은 책이고, 페이스북의 CEO인 마크 주커버그가 '남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추천한 바가 있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어려운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었고, 그녀가 저 자리에 오르기 위해 견뎌냈어야 할 어려움을 담담히, 그리고 때로는 위트 있게 책 속에 풀어냈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 사회에 성역할 구분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대학교에 들어가서였다. 낯선 신입생 생활 속에서 우연히 '여성학회'에 잠깐 동안 활동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속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정말 큰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우리 사회가 남자에게 그리고 여자에게 각기 강요하는 역할이라는 것이 그 사람을 너무나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 또 하나의 중요한 경험을 했다. 입대 직전 들었던 사학과 전공 수업 중에 법과 역사를 결합시킨 이색 수업이 있었는데, 특이한 수업을 들어보고 싶었던터라 수강 신청했었다. 그런데 수업은 20세기 초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확대에 대해서 가상의 법정을 열어서, '여성 참정권 확대'와 '여성 참정권 불가' 입장으로 나뉘어 변론을 하는 것으로 한 학기가 채워져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여성 참정권 불가' 입장에 서게 되었는데, 당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이유로 들었던 사실을 조사하면서 지금 우리의 눈으로 봤을 때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당시에는 당연한 것으로 주장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당시 '골상학'이라는 것이 한참 유행이었는데, 주요 논지는 '여성의 뇌는 구조적으로 남자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없다.'였다. 21세기에 두뇌 구조 상 여성이 열등하다고 주장해야 하는 그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 어려움이 20세기 초에는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제대하고 나서는 약 1년 간의 학교 생활 후에 스페인으로 떠났다. 그런데 거기서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가끔 장을 봐서 양손 가득 짐을 들고 가거나, 혹은 무거운 짐을 들고 있을 때 남자나 여자 가리지 않고 선뜻 도움을 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는 남자가 도움을 줬을 때는 아무 거리낌 없이 내 짐을 건넸지만, 여자가 도움을 줄 때는 "내가 들겠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나에게 돌아오는 그녀들의 대답은 "Macho Man"이라는 짧은 말과 어깨 들썩임이었다. 나의 행동이 스페인의 그녀들에게는 남성성을 과시하는 행위로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 번은 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스페인 남자 두 명이서 여자가 먼저 지나갈 수 있게 남자가 문을 잡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과잉보호'와 '애정'이라는 두 파로 나뉘어서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내가 굳게 믿고 있던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에게 <Lean in>은 이런 일련의 경험 끝에 만난 책이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커리어와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여성을 위해 따뜻한 말로 써놓은 그녀의 책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이 사회에는 '골상학'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이 좀 더 사회생활에 욕심을 냈으면 좋겠다고 질책을 하기도 하고, 그리고 여성이 사회생활에 성공하기 위해 남자의 역할과 부부의 모습에 대해서 친절하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가 그녀의 경험과 단단하게 결합되어 쏟아져 나오면서 동네 멋진 누나 혹은 언니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을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화질은 좋지 않지만, Sheryl의 TED 강연


예전에 부인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부부 두 사람 모두가 경제적 활동을 하는 것이 두 사람에게 더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 같아."라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 말이 나에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살면서 짊어져야 하는 너무나 무거운 책임을 그녀가 함께 나누겠다고 했을 때의 감사함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와 함께 내가 해야 할 일은 가사와 육아를 그녀와 같은 양을 혹은 더 많은 양을 책임지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직장에서 훌륭하게 인정받는 그녀가 더 좋은 커리어를 쌓고, 더 많은 기회를 누리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지지할 생각이다. 


물론 모든 여자가 회사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역시 남자에게도 통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쓴 Sheryl 역시도 그런 종류의 질문 혹은 공격을 많이 받은 듯, 모든 여성이 직업적으로 성공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회사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독선이다. 세상에는 너무나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사람도 너무나 다양하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성 역할에 갇혀 자신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꺾어 버리는 일을 하지 말자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배우자 어깨 위에 놓여있는 성 역할이라는 굴레를 내려놓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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