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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Apr 09. 2016

로마의 첫 날

낭만은 로마로 향한다

아래는 <로마의 휴일> 첫 글이자 목차




우리 부부는 로마에서의 숙소 전부를 에어비엔비를 통해서 예약했다. 첫 날 묵은 숙소는 늦게 로마에 도착하는 것을 감안해서 공항에 가까운 곳으로 잡았는데, 집 주인의 이름은 안토넬라였다. 키는 180쯤 되어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여성이었다. 에어비엔비 프로필의 금발에 아름답게 웨이브가 들어간 것과는 조금 다르게 두건을 쓰고 트렌치 코트를 입고 있어서 믿음직스러운 동네 형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하긴 유럽에서 느낀 남녀의 중성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스페인에서 첫 유럽 생활을 시작하면서, 남자들은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높고 여자들은 목소리가 낮은 것이 낯설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회적으로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면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내 목소리도 사회적 교육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안토넬라 옷차림은 스페인의 경험을 상기시켰다.

아침을 준비하러 우리가 묵던 2층으로 올라온 그녀와 인사하고, 뉴욕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미국인 부부가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안토넬라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서는 야근도 많고, 대게 초과근무를 해도 추가 수당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너무 쉽게 내뱉는 한마디,


'왜 다들 계속 그러고 살아? 다른 곳에서 살면 되지 않아?'


그러게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리도 힘든 삶을 버리지 못하고, 한국 땅에서 버티고 사는 걸까? 돈을 벌면 쓸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쓸 돈이 없는 우리의 삶은 다른 누군가에겐 말도 안되는 일이 되곤 만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삶에서 에어비엔비가 가져온 경제적 자유도 새로운 경제 활동의 방식을 볼 수 있었다. 평생 힘들게 번 돈으로 집 한 채 정도 남긴 채 은퇴한 우리 부모 세대에게 자식들이 떠나고 남은 집은 훌륭한 경제적 자립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토넬라는 낮 시간에 회사를 다녔고, 퇴근하고 집에 에어비엔비 손님을 받았다. 회사가 아니더라도 에어비엔비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그녀가 회사를 그만 두더라도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었다.




아침을 먹고 안토넬라 아버지의 차를 타고 나와 로마 시내에서는 조금 벗어나있는 Alberto da giussano에 있는 다음 숙소로 이동했다. 하루 밤에 5만원에 조용한 거주 지역의 집 하나를 통째로 빌렸고, 커다란 방 2개와 부엌, 화장실이 다 각각 분리되어 있는 집은 20만원짜리 로마 호텔 방보다 훨씬 좋은 우리의 로마 기지가 되었다. 짐을 풀고 오후에 있을 사진 촬영을 위해 씻고 꽃단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콜로세움이 있는 Colosseo 역에서 4년째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는 사진 기사를 만났다. 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떠나온 이탈리아에 빠져 졸업 후에 평생 이탈리아에 살겠다며 떠나왔다고 했다.   이제는 가끔 한국에 돌아가면 이탈리아가 그립다고. 조금 더운 날씨였는데도 긴바지에 갈색의 얇은 가죽 재질의 점퍼를 입고 커다란 가방을 들고 왔다. 그리고 야구 모자 아래로 나보다 한 살이 많다던 그는 이탈리아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차 보였다.

스냅 사진 촬영 3시간에 50만원의 비용을 지불했으니 그의 시급은 약 17만원에, 사진을 고르고 편집하는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고수익 직업에 끊임 없이 새로운 구도를 연구하는 창조적인 직업이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저 시급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월급을 야근 포함한 근무 시간으로 나눠서 계산해보자. 게다가 촬영이 없을 때 로마가 너무 좋아서 계속 걷는다는 그에게 항상 다른 모델을 로마의 풍경과 담을 수 있는 일은 행복해보였다. 한국에서는 몇 명이나 자기가 있는 공간을 사랑하고, 자신이 하는 일을 만족하며 살고 있을까? 세상에는 사무실에 앉아있는 직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고 있는 눈을 뜨면 더 넓고 자유로운 세상이 열린다.

밤이 되어 사진 촬영을 마치고 우리 부부는 한참을 천사의 성 아래에 앉아있었다. 옆에 누워있는 노숙인 부부 한 쌍을 보며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야경에 빠져 거리에 이불을 깔았다는 상상을 하며 이탈리아의 밤은 깊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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