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현지인의 삶
아래는 <로마의 휴일> 첫 글이자 목차
집 주인은 게이가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세한 가이드북을 만들 수 있을까? 가이드북에는 집 근처 교통편에서 맛집까지 자세한 내용에 정리되어 있었다. 마음껏 먹어도 좋다며 준비해준 신산한 과일 바구니에서도 섬세함이 느껴졌다.
일어나서 아침 먹으러 동네 마실을 나섰다. 안내 책자에 매우 훌륭하다고 안내된 곳이었다. 도착해서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커피를 한 잔 시켜놓고 초코가 듬뿍 든 크로와상을 먹으며 또 부부는 수다를 시작한다.
전 날 사진 기사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다음 날 가기로 한 바티칸 박물관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들뜨기도 했다. 그리고 유럽에서 그들 문화의 근간으로 삶는 노예 제도를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꽃 피웠던 그리스 문화에서 르네상스가 시작했다고 말하는 이탈리아의 문화에 대해서도 한참 이야기 꽃을 피웠다.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를 묶여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 어느 쪽의 쇠사슬이 빛나는가, 더 무거운가 등.
- 리로이 존스
그러다 리로이 존슨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현대판 노예들은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도 모른채 누구의 연봉이 높은지, 누가 더 빨리 승진하는지 뽐낸다.
그러면서 나는 조선시대로 따지면 외거노비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조선 시대에는 따로 거주하며 일정한 노동력을 제공하면 노비의 의무가 끝나는 '외거 노비'라는 형태의 노비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할당량을 채우고, 추가로 일해서 벌어들인 비용으로 스스로를 사들여서 자유인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자유인이 되고 싶다.
집에서 쉬다가 나와서 점심 먹으며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시킨다. 항상 와인을 시켜 먹으라는 전 날 사진 기사의 조언대로 낮에 시킨 와인 한 병에 우리는 기분 좋게 취했다. 모든 것이 몽환적으로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과 취기 속에 한참을 식당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서로 어깨를 걸고 집에 깡총깡총 걸어와서는 꽃잎처럼 흐드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