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책]살인자의 기억법
책을 펼치고선 중간에 내려놓을 수 없었던,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무엇을 읽은 것인지 알 수 없었던 그런 책이었다.
김영하 씨의 산문집 <읽다>로 시작한 김영하 읽기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이어, <살인자의 기억법>에 다다랐다. 그의 소설이 자극적인지, 내가 고른 책이 자극적인지 모르겠으나 '살인'이라는 소재를 늙은 노인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것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치매에 걸려버린 연쇄 살인범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25년 전 마지막 살인을 저지르고 데려온 여자 아이를 딸로 키우고 있는 그에게 살인자의 직감으로 살인자라고 느껴지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딸 은희 주위를 멤돈다.
그런데 소설이 종국에 치닫을수록, 주인공의 기억이 하나 둘 사라질수록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독자의 머리 속에는 물음표만 커진다. 최근의 기억부터 잊혀진다는 치매 환자 기억을 의심하는 순간 소설은 무너져 내린다. 짧고 간결한 문장에 너무 쉽게 읽힌다며 책장을 넘겼다면, 마지막에 도달해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다시 읽어야할지 막막한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다. 기억의 불완전성을 지면 위에 표현한 그의 능력에 다시 감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