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부지런 한가?
아래는 <출퇴근 없는 삶>의 목차이자 시리즈 첫 글
오랜 시간 부지런하게 살라고 교육받았다. 학교에서는 개근상을 주며 학생들에게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곳으로 같은 시간에 모이는 것을 칭찬한다. 부모들은 아파도 학교에서 아프라고 자식의 등을 떠민다. 나 역시 그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초중고 모두 개근상을 받았고, 고등학교 땐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을 읽으며 어떻게 하면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히 공부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20년 간의 부지런함에 대가로 잠깐 매우 흐트러진 삶을 살았으나, 군대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매일 일상이 똑같은 부지런한 삶을 살았고, 제대하고 나서는 역시 취업의 물결 속에 또 무엇인가 준비하고 부지런해야만 했다. 지옥 같았던 첫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해가 떨어져 새까매진 하늘을 보며 퇴근하고 그 전날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셔도 아침에는 정장을 입고 출근하며 느껴지는 그 묘한 부지런히 살고 있는 것 같은 만족감. 이것은 내가 20년 넘도록 길들여진 부지런함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한다.
그런데 사실 매일 똑같이 사는 건 절대로 부지런한 것이 아니다. 물론 꾸준함이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매우 훌륭한 능력이 되기도 한다. 단, 내가 스스로 목적을 세우고, 거기에 이르는 세부 과정들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런데 학교에서 우리가 배운 건 무조건적인 성실이었다. 이유는 따지지 말고, 수능을 준비해야만 했다. 모든 인생에 대한 고민을 수능 이후로 미루고, 대학교에 입학하면 모든 것이 주어질 것처럼 오늘도 수많은 수험생을 속인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학교에서 배운 인생을 졸업하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살고 있다. 모든 고민은 취업 이후로 미루고, 혹은 모든 고민은 결혼 이후로 미루고, 혹은 모든 고민은 출산 이후로 미루고, 혹은 모든 고민은 자식 대학 졸업 이후로 미루고, 혹은 모든 고민은 은퇴 이후로 미루고 그렇게 살아간다.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요즘은 생각한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학교에서 배운 수많은 것들 대로 살아가서는 안된다는 것. 사실 학교 생활의 진정한 시험은 학교에서 보는 내신 시험이 아니라, 그리고 몇 년의 고생이 하루에 결정되는 수능이 아니라, "획일적인 학교 시스템에서 자기를 지키고 찾아내는 그 특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은 학교가 제시한 질서 속에서 살아가며 '사회의 안정과 안녕'을 책임지는 사이에 학교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던 몇몇이 자유를 찾아 떠나는 고난이자 도전의 열쇠를 쥐게 되는 그런 시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래도 난 지금껏 다른 사람에게 욕먹지 않을 만큼은 부지런히 살았다고. 그런데 이게 잘못되었다. 나의 부지런함에 '다른 사람'이 개입되는 순간 그것은 진정한 부지런함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아침 일찍 등교하는 것, 머리 속에 글씨는 하나도 안 들어오는데 굳이 책을 펴놓고 시간을 보내며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다며 정신 승리하는 것, 저녁보다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퇴근하며 그래도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며 자위하는 것은 모두 부지런함은 아니다. 온몸으로 나의 부지런함을 표현하고 있을 뿐,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에 지독하게 게으르고, 새로운 도전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게으르고 또 게으르다.
중요한 것은 부지런함 그 자체가 아니다. 무엇에 부지런한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부지런한가, 아니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부지런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