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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Dec 16. 2016

디지털 노마드를 넘어

디지털 노마드는 종착지가 아니라 과정이다

아래는 <출퇴근 없는 삶>의 목차이자 시리즈 첫 글




디지털 노마드 열풍이 조금 가라앉았다고 느낀다. 국내에서는 약 2년 전부터 디지털 노마드에 관련된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고, 내가 그 후 디지털 노마드 관련 행사를 여럿 참석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관련 글이 크게 수면 위로 올라오지는 않는다. 나는 이것이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가 한국에 처음 상륙했을 때의 그 신선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도 생각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또 많은 사람들이 이미 디지털 노마드의 생활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개념에 우리는 열광을 했고, 누군가는 현실의 삶에 머물렀고, 다른 누군가는 떠났고 경험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디지털 노마드는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되었다 


나는 내 위에 상사가 없어진 지 약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프리랜서였고, 상해에 오고 나서는 사업가로 변화하였다. 나는 현재 상해에 '거주'를 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번 주는 발리에, 다음 주는 치앙마이에 살아도 문제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로서 첫 작업 공간은 집이었고, 카페였다가, 최근에는 코워킹 스페이스의 내 공간으로 바뀐 것이 차이라면 차이겠다.



디지털 노마드의 본질은?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일을 한 지 1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디지털 노마드가 종착지가 아니라 지금의 상황에서 조금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디지털 노마드란 무엇인가? 기존의 직장인은 한국에서 정상적인 근로 시간을 보장받는다면, 9시에서 6시까지 근무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그런데 생활비가 터무니없이 비싼 실리콘 벨리에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다. 와, 월세가 몇 백만 원인데 이 돈이면 동남아시아 가서 살면 귀족처럼 살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이주해서 발달한 문명을 최대한 활용하며 자신이 맡은 바를 수행하고, 그 이후 시간은 소득 제공지와 거주지의 극명한 물가 차이를 이용해 높은 삶의 수준을 노리는 게 바로 핵심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20년 넘게 원조 노마드로 살고 계신 분을 한 분 알고 있다. 바로 장인어른이시다. 무역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고, 회사를 나와서 혼자 힘으로 당신 회사를 차리시고, 지금은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고 계신다. 장인어른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바로 한국에서 그렇게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부인과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업무로 바쁘셨을 텐데도 운전기사를 데리고 오셔서 하노이를 다 구경시켜주셨다. 한 달 내내 언제라도 부르면 오는 운전기사는 당시에 한화로 30만 원, 회사에 직원들 임금도 30만 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뿐인가, 어찌나 베트남에 맛있는 음식이 많던지. 베트남에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한결 같이 음식이 맛없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장인어른을 따라다니며 맛본 베트남 음식은 정말 신세계였다. 아직도 짙은 사골 육수로 끌여낸 포(pho)가 잊히질 않는다. 그리고 집으로 사람을 불러서 집안일을 맡기고, 장인어른은 항상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셨다고 한다. 나는 공부한다(하라)는 명목으로 중고등학교 때, 특히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가족과 시간을 보낸 기억이 거의 없는데, 부인의 기억 속에는 고등학교 때까지 항상 가족들과 주말에 함께 보낸 추억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정말 건강한 노마드가 아닌가?


처음 회사를 나와서 프리랜싱을 시작했을 때는 엄청 신나고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일을 조금 하자, 사실 출퇴근하지 않는 직장인의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겐 매일 해야 하는 업무가 있고, 그 업무를 마치면 다시 회사원들의 퇴근 시간과 얼추 비슷해지는 상황. 거기에 일을 직접 따내야 하는 영업 업무와 공간의 자유를 맞바꿨다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외국을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나 프리랜싱은 종착지가 아니라는 점,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곳으로 아무 걱정 없이 떠날 수 있는 자유"라는 점이었다. 그런 자유가 있다면 내가 한국이든 어디에 있든 상관없을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내가 뒤로 한 발 물러서도 계속해서 돌아갈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고, 그게 내가 사업가로서 삶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나의 도전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반년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 계속 생겨서, 1년 단위 계획을 포기해야겠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내가 앞으로 뭘 하고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행복하다. 왜냐면 적어도 같은 사무실에 30년을 보내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구는 나에게 겁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그에게 너는 겁나지 않냐고 묻는다. 100세 시대, 50세까지 회사 다니기 힘들 세상. 50세까지 열심히 일하고 퇴직해도, 아직 인생은 절반이나 남았고, 집에서 쉬기엔 너무나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나이다.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다고? 그저 나는 지금 그 미래를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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