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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Oct 04. 2016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그가 공무원이 되기로 결정한 사연

아래는 <출퇴근 없는 삶>의 목차이자 시리즈 첫 글




그를 고3 때 처음 만났다. 우리는 같은 교복을 입었고, 짧은 머리로 같이 공부를 하고 점심시간에는 같이 급식실로 몰려가던 그런 친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교에 진학해서, 종종 제법 떨어져 있던 거리에도 만나서 술잔을 기울였다. 같이 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고생이 컸던 만큼 대학생 시절 함께하는 일탈은 즐거웠다. 그가 입대하기 전 둘이서 대학 첫 해외여행으로 함께 홍콩 여행을 떠났고 그가 입대하고 1년쯤 되던 해 나도 입대했다. 제대하고 나서는 입대하기 전보다는 연락은 뜸해졌지만 각자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살았다. 그는 빠른 입대만큼이나 취업도 빠르게 했다. 그의 취업 소식에 우리는 다 함께 모여 축하했고, 그는 기꺼이 저녁을 쏘며 기뻐했다.


상해 떠나고 처음으로 그를 만났다. 친구는 내가 상해 떠나기도 전에 퇴사를 했고 어느덧 공무원 시험 결과를 기다릴 정도로 공무원 준비한지도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공부하느라 제법 지친 모습이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봤던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살이 빠지고 핼쑥하였던 모습과는 달리 살도 제법 오르고 밝은 얼굴이라 마음이 놓였다. 며칠 전 시험이 끝났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떨어졌을 것을 대비해서 다음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거라는 그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내가 물었다.

"왜 공무원이 하고 싶었어?"


그가 대답했다. 회사를 다닐 때 매일 아침에 너무 일어나기가 싫었다고 한다. 대기업이었음에도 신입사원에게도 비교적 큰 업무가 주어졌고, 사소한 실수 하나가 회사에는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게 그에게는 너무 스트레스였고, 목요일에는 이미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하는 게 걱정이 됐단다. 그리고 그는 일을 하면서 즐거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차라리 가장 일에 신경을 덜 쓸 수 있는 공무원이 되어서 안정적으로 경제생활을 영위하면서 일 밖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기로 결심했단다.


그리고 그가 물었다.

"너는 살면서 후회하는 결정이 없어?"


그의 부모님은 경희대에 다니는 그가 공무원이 되기로 결정한 후에 "연고대를 갔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언젠가 말하신 적이 있단다. 그리고 그의 전공이었던 경영이 아니라 법대나 행정학 같은 걸 공부해도 좋았을 거라고 말씀하셨단다. 하지만 그는 "회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회사 생활이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아무련 미련 없이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대답했다. 나 역시 그런 것은 없다고. 사학과에서 서양사를 배웠기 때문에 재미있게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스페인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수 있었다고. 그리고 이 덕분에 무역상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래서 지나치게 나쁜 조직 문화 덕분에 너무나 쉽게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런 미련 없이 개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그런데 문득 하나 아쉬움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말했다. ""누군가 나에게 고등학교 시절 어느 대학교에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거 같다"라고. 그랬더라면 원하는 삶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고등학교 시절 등 떠밀려 공부하고 대학생이 되어 뒤늦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 거 같다고. 차라리 고등학교 때 그 스트레스를 받으며 내신과 수능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매년 외국어(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를 혼자서 공부하고 외국에 나가서 외국 대학교를 다녔으면 더 좋았을 거 같다고 대답했다. 앞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은 한국에서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삶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고되지만 즐겁게 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같네."    


사실 우리의 목적은 같다. 다만 모두 다른 결정을 내렸다. 내 고등학교 친구는 매일 같이 반복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회사 생활이 버거워서, 어차피 일을 할 거라면 가장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무원을 선택했다. 내 부인은 훨씬 더 수평적이고 개인이 역량을 키워주고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외국으로 기회를 찾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내 두 손으로 조직에 속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 회사'라는 매일 같은 업무를 반복하고, 고압적인 분위기에 순종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모두 다른 결정을 내렸다. 목적은 같되, 방법은 많이 다르다. 우리는 과연 5년 후,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와 헤어진 후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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