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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Jan 29. 2017

남아공의 평등

현대적인 아프리카인의 나라

모리셔스 다음으로 도착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은 좀 더 서늘했다. 워낙 따뜻한 휴양지인 모리셔스에 있다가 처음 도착한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는 긴팔 옷을 꺼내 입었다. 인터넷에 요하네스버그 공항 괴담이 굉장히 많던데, 브라질을 경험한 나에겐 아주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고 쾌적하고, 사람들도 친절한 그런 좋은 공항이었다. 그렇게 거의 자정에 가까워 케이프타운에 도착했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유심칩을 구매하고 우버 기사를 불러서 우리 부부의 첫 숙소로 향했다.



너무 늦게 도착한 터라 이미 밖은 너무 깜깜해서 첫날은 바로 씻고 잠을 청했다. 숙소가 케이프타운에서 가장 유명한 테이블 마운틴 바로 아래에 있어서 그런지 밤에는 엄청나게 바람이 불어서 조금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침에 눈을 뜨고 눈 앞에 펼쳐진 절경을 바라보자 근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아침에 눈을 떠서 우리 부부를 가장 먼저 반겨준 건, 스스로가 고양이인지 강아지인지 구분 못하는 고양이 찰리였다. 에어비엔비 호스트인 리사가 밤늦게 도착한 우리를 숙소로 안내해주면서 고양이를 좋아하냐고 묻기에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을 했는데, 내일 아침에 고양이가 놀러 갈 거라고 하더니 정말로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고양이 찰리를 만날 수 있었다. 멀리서 "안녕!"이라고 소리치니 정말 강아지처럼 달려와서 뒹굴기를 시전 하는 이 녀석을 보며 "He likes everyone."이라고 말했던 리사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동물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눈여겨보는데, 사람이 쉽게 막 대하기 쉬운 동물에 대한 태도가 한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곳의 동물들은 사람을 전혀 겁내지 않았는데, 말을 하지 못해 학대당하기 쉬운 이 연약한 동물이 마음 편히 뛰어놀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도 마음이 놓였다. 머나먼 아프리카 땅에서 나 역시도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나약한 소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Morality is simply the attitue we adopt toward people we personally dislike
도덕이란 우리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을 향해 어떤 태도를 보여주는 가로 드러난다.
- Oscar Wilde



케이프타운에서 느낀 첫인상은 흑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2012년에 브라질에서 3개월 조금 넘게 머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흑인의 삶에 대해서 굉장히 충격받았었다. 브라질에서는 굉장히 많은 걸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흑인이었고, 거의 상의를 입은 경우가 없었고, 종이 박스를 찢은 듯한 것을 걸치고 자는 사람들을 거의 매 골목마다 볼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노예도 없고, 법적으로 흑인과 백인이 평등했지만, 흑인은 백화점에 들어가는 것을 제지당하는 경우도 많았고, 슬럼가에 사는 흑인 아이들은 거의 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빈곤을 대물림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케이프타운에서는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모두가 깨끗한 옷을 입고, 공항, 사무실, 식당 등 위치를 가리지 않고 활기차게 일하는 흑인을 볼 수 있었다. 이 곳에서 사람으로 대접받으며 사는 흑인들을 보며, 브라질에서 느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죄책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물론 도심에서 만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흑인이었고, 아프리카 전통 의상이나 기념품을 파는 그린마켓이라는 곳에서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채 아프리카 부족의 노래를 흉내내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커피를 마시던 카페 앞에서 공연을 하고 테이블마다 천 원 상당의 돈을 받아갔는데, 그 공연을 준비한 듯 보이는 한 여성(엄마로 추정)이 애들 입에 사탕 하나씩을 넣어주는 것을 보며 생각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첫 숙소는 우연히 골랐음에도 백인 거주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대게 흑인들이 서빙을 하고 백인들이 소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보여주는 친절과 미소에서 다른 곳에 비해서 훨씬 나은 대우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거의 한 근 가까이 될 것 같은 스테이크로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엄청 만족하며 고기를 먹으러 갔다. 뒤에 흑인과 백인이 조화롭게 섞여있던 한 테이블에서 흑인 분들께서 우아하게 식사를 하는 걸 보면서 고작 피부색이 조금 다르다고 저지르는 차별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아공 여행 팁을 하나 드리자면, 보통 식사 후에 10~15% 정도 팁을 주는데 그걸 식사 후에 주는 영수증에 그 금액을 자기가 직접 적게 되어있다. 그 금액을 추가한 만큼 카드 계산이나 혹은 현금으로 지불하면 된다. 팁이 있는 나라에서는 팁을 주지 않으면 서비스가 불친절했다고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친절한 서비스를 경험했다면 팁은 꼭 주는 것이 좋다.)


그러면서 지난 싱가포르 여행과 비교해봤을 때,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머무는 사회에 구성원이 출신 성분에 구애받지 않고 얼마나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싱가포르에서 보기 좋다고 느꼈던 것은 중국인, 말레이시아인, 인도인이 한 곳에 어우러져 서로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싱가포르인으로서 소속감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희망봉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버를 타고 다녔는데, 우버 기사들이 케이프타운이 너무 좋다고 "you will like it."이라고 말할 때마다, 자신의 나라가 자랑스럽고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에 가면 난생 본 적 없는 규모의 운동 보충제와 비타민 등이 각각 한 벽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살면서 저렇게 많은 보충제와 비타민을 한 공간에서 본 적이 없는데,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여유를 갖고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모리셔스에서 바다를 한참 보다가 넘어와서 더 이상 바다를 봐도 큰 감흥이 없을 것 같았는데, 케이프타운의 해변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파도가 굉장히 커서 서핑을 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해변가에서 조금 걸어가자 소정의 금액만 지불하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커다란 수영장도 만날 수 있었다. 거기에서 거짓말처럼 다이빙을 연습하는 모습도 마주칠 수 있었다.



남아공에서의 또 하나의 커다란 즐거움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Cape of Good Hope)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1488년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유럽 사람으로서 최초로 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곳은 서양사 전공자인 나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후 이곳을 거쳐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고, 그것이 '대항해시대'라고 불리는 유럽 침략사의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최남단답게 희망봉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정말 망망대해 그 자체였다. 이곳에 도착해서 연신 "너무 좋다"를 반복했는데, 부인님께 내가 가진 형용사가 이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타깝다고 이야기도 했다. 대자연이 아름답던, 사람들이 친절하고 미소가 아름답던, 그리고 사람들 삶의 여유가 공기처럼 자유롭게 느껴지던 이 케이프타운 앓이를 케이프타운을 떠나기 전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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