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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Feb 15. 2017

벌써 화나는 추석 맞이

이번 명절은 전쟁이다

아직 2월인데, 무슨 추석 연휴 이야기를 벌써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 연휴는 단군 이래 가장 길다는 추석 연휴고, 중국과 명절이 겹친다. 그래서 이미 이 시즌 비행기 티켓 가격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아래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나도 아직 티켓을 사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그래도 이번 주에는 비행기 티켓 구매를 마칠 계획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다음 주부터 티켓을 예매하시길 바란다.


어제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부인님을 통해 조심스레 추석 때 딸들과 유럽 캠핑카 여행을 가도 괜찮은지 물어오셨다. 부모가 자식과 여행을 하고 싶다는데, 안될 이유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너무 멋있지 않은가? 첫째 딸과 둘째 딸까지 다 결혼하고, 이제 막내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 함께 떠나는 유럽 캠핑카 여행이라니. 못난 사위 아직 많이 부족해서 여행비를 드리지는 못하지만, 장인어른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는데 큰 박수를 보냈다. 다행히 한국을 떠나서 산 이후로는 본가에서도 명절 때 들어가지 않아도 별말씀을 하지 않으시기도 하고.


그리고 오늘 나도 본가 식구들과 추석 때 여행을 가면 좋을 거 같아서 연락을 드렸다. 원래 본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명절 때마다 계속 차례를 지내왔다. 그런데 요즘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며칠 전에 부모님과 동생이랑 같이 화상 통화를 하면서 추석 때 다 같이 여행을 가면 좋겠다고 이미 이야기를 했고, 아버지도 알겠다고 하셨던 터였다. 


그런데 오늘 연락을 하니, 안된다고 갑자기 하신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명절 때마다 몸 고생, 마음고생하시는 어머니는 더 못 보겠네요."
"그리고 식구 모두가 참여하는 행사인데, 아버지만 명절 행사 참여 결정권이 있는 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식구가 같이 결정할 일인 거 같은데요."


그럼에도 아버지께서는 '우리 가족과 조상님'도 소중하다며 여전히 완고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빠지면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께서도 섭섭해'하실 거라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다. 마지막으로는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면 함께 가자고 하셨다. 마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늦추기 위한 지루한 시간 끌기 같이. 가족사에 대한 설명이 조금 필요할 거 같은데, 아버지는 형제가 매우 많으시다. 3남 6녀 중 일곱 번째이신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거의 '아버지와 아들'뻘 나이 차이가 난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중학생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러니 큰아버지가 아버지에게는 거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다. 그래 이건 이해한다. 그리고 아버지 세대에 부모나 형이 얼마나 대하기 어려운 사람인가. 그리고 워낙 사람 좋기로 유명한 아버지시니, '어른'에게 명절 때 못 찾아뵙는다는 말하기가 어렵겠다. 그래 이것도 이해한다. (밖에서 사람 좋은 사람의 문제는 대체로, 집에서 잘 못한다는 거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우리 가족이 소중하다'는 이 문장에 있었다.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식구는 명절 때 가족 여행을 원하고 있다. 그런데 가족이 소중하기 때문에 명절 때 친척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건 무슨 말인가? 결국 이 가족은 '큰아버지 식구'를 이야기한다. 왜냐면 우선 고모가 6명인 탓에 명절 당일에 한 번도 고모들을 만난 적이 없고, 아버지의 작은 형님(두 번째 큰아버지)도 제사를 따로 지내시기 때문에, 결국엔 큰아버지 식구밖에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명절 차례상도 제대로 기억 못 해서 매번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차리는 마당에 조상님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고.


그래서 한참을 더 메시지를 남겼다. 가족이 중요하다면 어머니랑 자식들부터 챙겨야 되는 것이 아니냐. 시집와서 30년 넘게 막내로 명절 준비한 어머니한테 미안하지도 않으시냐. 이번에 아버지는 답장이 없다.


어머니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냈다. 단체 채팅방에서 아버지랑 명절 문제로 다퉈서 중간에서 어머니가 불편하실 거 같았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한 말씀하셨다.


"속 시원하네!"


그간 밖에서는 어머니 위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어머니는 그간 섭섭한 게 많았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인가'하고 섭섭한 날들이 많았다고 하셨다. 나는 '결혼하고 나니 어머니가 해주신 많은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희생하시며 사신 거였다.'는 걸 알았다고 말씀드렸고, 그간 그걸 모르고 지내서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을 드렸다. 이 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상해 가더니 철이 들었다며, 못난 아들 둔 탓에 지금까지 고생하셨으면서 알아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남편, 아들 위해서 힘든 줄 모르고 일 했는데, 나이가 들고 여기저기 아프니까 마음은 뻔한데 몸은 안 따라주니 혼자서 많이 서글펐어~"


라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쉼 없이 눈물이 흘렀고, 정말 죄송스럽고 죄송스러웠다. 30년을 키워주셨는데, 고작 여행 한 번 같이 가자고 말씀드리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 말로는 결혼하면 아들은 며느리 남편이고, 당신 아들이 아니라고 한다면서, 거리를 둬야 될 거 같고, 목소리를 듣고 싶어도 전화도 못하겠다고 하시는데 또 억장이 무너졌다. 실제로 부모님은 결혼하고 단 한 번도 먼저 전화를 하신 적이 없다.


지난 명절 한 문구가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녔다.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돈 잘 벌어서 명절 때 해외여행 가고,
조상 덕 못 본 이들이 교통체증 시달리며 고향 가서
차례 음식 마련하다 부부 싸움하며 갈등 겪는다


무엇을 위한 명절인가? 누구를 위한 명절인가?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머니의 희생에 고개를 돌릴 용기가 없다. 그래서 '가족을 위한' 전쟁을 조용히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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