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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Feb 19. 2017

이번 추석은 맑음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아래의 글에서 이번 추석 때 제사를 지내지 않기 위해서 전쟁을 선포했다. 그간 '죽은 사람을 위해서 산 사람이 고생받는' 행사를 위해서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지켜봐 왔지만, '해오던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너무나 강력했다. 그런데 이번에야 말로 지난 수십 년 간의 악습을 끝내기 위해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아버지를 브런치 공식 "꼰대"로 만들면서까지 꼭 누군가 희생되어야만 하는 그 행사를 끝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런데 이것은 나만의 승리는 아니었다. 내가 앞장은 섰다. 그런데 어머니도 예전과 많이 바뀐 태도를 보여주셨고, 덕분에 이미 많은 집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정말 가족이 서로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몇 해 전 내가 결혼을 하기도 전에 부모님과 명절을 보내러 친척집에 가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 집도 이제 명절 그만 챙기고 그냥 여행 가면 안 돼요?" 그 당시에는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어머니도 "조상들 위해서 지내는 제사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려고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고 다행히도 어머니께서 생각이 바뀌었고 목소리를 높여 주셨기 때문에 함께 바꿀 수가 있었다. 정말 고생하는 어머니가 괜찮다고 나서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별로 없었을 테니까.


뒷 이야기를 조금 더 전하자면, 그 이후로 아버지로부터 "가자"라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그 문자 한 통을 위해서 어머니의 표현을 빌자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바탕' 하셨고 아버지를 '유령 취급' 하는 강경책을 통해서 '뒷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를 만드는 저항을 통해서 30년 넘게 이어져온 며느리로서의 지긋지긋한 의무를 끊어내셨다. 지난 기간 그렇게 해왔다고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당당하게 불합리하다고 말씀하시고 그 후에 있을 '불편함'을 견뎌내신 어머니가 자랑스럽다.


이로서 이번 추석은 굉장히 재미있게도 부인님은 장인어른과 장모님, 처제들과 함께 유럽으로 캠핑카 여행을 가기로 했고, 나는 본가 식구들과는 동남아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부인님과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서 명절을 보내는 게 처음이라 낯설지만, 어떻게 보면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모인다는 명절의 의미에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각자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을 만큼 충분히 행복한 가정이라는 이야기도 될 테고.


비록 승리를 쟁취하기는 했지만 직접 부딪혀보기 전까지는 명절에 정말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고민을 했던 터라, 꼰대스럽게 "여러분도 제사 지내지 마세요! 그게 답입니다."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게 설득하기에 얼마나 힘들고, 그걸 이뤄내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도전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혹시 이번 명절에는 승리를 쟁취하지 못하더라도, 오랜 시간 명절 때마다 고생해오신 어머니는 그 마음을 알아주실 거다. 그리고 다음번을 위해 칼을 갈면서, 명절 때 조금 더 부지런히 일을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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