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책부터 펴는 건 그만해도 좋습니다
요즘은 정말 빠르게 배워야 되는 사회다. 워낙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나오고, 다양한 서비스가 나오기 때문에 조금만 놓고 있으면 감 떨어졌다는 소리 듣기가 딱 좋다. 개발자라는 직업은 굉장히 신기술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구직할 때 '배우는 속도가 빠른' 사람을 뽑는다는 채용 공고를 자주 만날 수 있다. 이 '배우는 속도'를 영어로는 러닝 커브(Learning Curve)라고 부르는데, 정말 가파른(steep) 러닝 커브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발이라는 뿐만 아니라 디지털 마케팅 등 다른 산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술을 공부하느라 쉴틈이 없다.
최근 비디오 제작과 편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폰 7 매트 블랙을 사는데, 128GB 기종은 재고가 없어서 256GB짜리를 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16GB를 쓰다 갑자기 넘쳐난 용량에 적응을 못해서 동영상을 찍어대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레 동영상이 쌓이면서 동영상 편집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맥북을 사면 내장되어있는 iMovie를 만족하면서 쓰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혔고 드디어 파이널 컷 프로 X(이하 'FCP')에 입문하게 되었다. FCP는 iMovie처럼 애플이 직접 만든 소프트웨어답게 굉장히 직관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iMovie와 인터페이스가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훨씬 많아진 기능을 어떻게 알아갈 것인가가 막막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일 하느라 정신 없이 바쁜데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그러면 전통적인 방법으로 책을 한 번 찾아보자. 인터넷 교보문고에 들어갔다. 'Final cut pro'를 검색한다. 검색 결과창 가장 상단에 나오는 건 45,000원짜리 2012년에 1쇄를 찍은 책이다. 2015년 9월에 개정판을 내서 10.2.1 버전을 추가로 포함하였다고 한다. 참고로 현재 FCP 최신 버전은 10.3.2이다. 이런 잘 팔라지 않는 기술서의 경우에 가격이 비싼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우선 2012년에 처음으로 1쇄가 나온 책이다보니, 새로운 기능을 업데이트 했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인터페이스와 다른 이미지가 있을지 걱정이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종이책 밖에 없는 외국에 있는 나에게는 이 책을 살 수 없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리고 한국에 있다고 하더라도 책 페이지가 거의 700 장에 이르는 책을 매번 들고 다녀야 하는 건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는 전자책이 잘 되어있는 아마존에 들어가봤다. 스크롤을 조금 내리자 한국어로 번역서도 나와있는 35불 가량의 책이 한 권 눈에 들어온다. 다행히 전자책도 있다. 샘플로 미리 다운 받아서 목차나 편집 방식을 미리 볼 수 있으니 확인 해보고 마음에 들면 구매하면 된다. 다만 이번에는 매우 특수한 케이스로 애플 제품을 구매했기 때문에 맥에 내장된 iBooks에서 'Final cut pro'를 검색하면 전자책을 다운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전자책을 구매했다고 가정하고, 이 전자책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뉴스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파란색 배경에서 먼저 촬영을 하고 그 부분을 내가 원하는 배경으로 바꿔보고 싶다고 가정해보자.
아래는 같은 내용을 유튜브에서 찾은 내용이다.
전자책 페이지 두 장과 4분 상당의 동영상을 비교해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물론 FCP가 익숙하거나, 해당 기능을 알고 있다면 전자책만 보고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데 처음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렇게 스크린샷에 설명을 몇 줄 써놓은거랑, 실제로 따라하는 것처럼 배우는 것은 천지차이로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잘 모르는 '공부할 동영상을 찾기에 좋은' 플랫폼은 놀랍게도 유튜브다. 개발 강의도 정말 다양한 내용이 있어서 잘 찾아보면 좋은 강의를 만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강의를 올리는 사람이 있으면 구독신청 해두면 새로운 강의가 올라올 때마다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동영상의 장점은 아예 모르는 분야도 새로 배우기에 심리적인 저항감이 낮다는 것이다. 책은 모르는 분야를 공부하면 답답한 경우가 많은데, 동영상은 당장은 이해가 안되도 끝까지 보면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고,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여러 번 돌려 볼 수도 있다. 유튜브의 단점은 유료 강의가 아니다보니, 기껏 찾은 동영상이 철 지난 동영상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개발, 동영상 등은 해가 바뀌면 내용들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철 지난 자료를 가지고 공부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리고 내가 자주 사용하는 동영상 사이트에는 Udemy가 있다. 개발, 디자인, 음악, 글쓰기, 동영상 등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실용적인 강의들이 올라온다. 이 플랫폼은 유료기 때문에, 실제로 해당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최대한 불필요한 이론은 걷어내고 따라하기만 되는 꼭 필요한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에는 이번에 세어보니 거의 100개에 가까운 다양한 주제의 동영상 강의를 유료로 구매했더라. 사람들이 이런 유료 컨텐츠에 돈을 내는 걸 아까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시간이 중요한지 돈이 중요한지는 잘 생각해 볼 문제다. 혼자서 끙끙거리며 몇 주에 걸쳐 알아내야 하는 것을 좋은 강의를 구하면 한 두 시간이면 되는 경우도 많다. 나는 돈보다는 내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필요한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강의를 구매하는 편이다.
동영상 강의를 선택할 때 명심해야 될 점은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포함한 강의는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내가 FCP를 처음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가르쳐주는 강의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강의를 찾으려고 시간을 쓰는 것보단, 내가 원하는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는 다양한 강의를 모두 신청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강의를 신청하면 중복이 되는 부분도 있을테고, 최소한의 강의를 잘 선택하는게 결국에는 시간을 버는 길이기도 할 거다. 하지만 항상 명심해야 될 것은 내 시간은 내 돈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동료나 후배 개발자나 혹은 지인들을 보면 가끔 '이 단계를 모두 알아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걸 한국식 교육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간만 충분히 있다면 뭐든 자세히 알면 좋겠다. 그런데 모든 걸 꼼꼼히 이해하려면 시간이 정말 많이 든다. 이런 '사소함에 대한 집착'은 학교에서 변별력을 가리겠다며, 별로 중요한 부분을 긁어서 시험을 내서 그렇다고 느낀다. 워낙 이상한 걸 시험으로 내니,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질 못한다.
그런데 모든 걸 다 이해하려고 덤비면 흥미를 잃기가 너무 쉽다. 중요한 것은 핵심을 먼저 파악하고 그 흐름을 익히는 것이다. 나는 너무 디테일에 집착하기 보다는 흥미를 따라가라고 조언하고 싶다. 지엽적인 부분은 큰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이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흥미가 생겨서 하나를 배우고 나면, 또 다른 게 궁금해진다. 그런데 이 과정이 모래처럼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타래 같아서 이런 과정이 쌓이다보면 점차 종합적으로 보이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이렇게 공부하는 방법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며, 기억에도 잘 남았다. 역시나 정규 교육 과정의 영향으로 모르고 넘어간 부분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한 프로그램을 공부한다고 가정하면 모든 기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쓰지 않을 기능을 배우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 필요한 것 위주로 배워가는 것이 훨씬 낫다.
그렇다면 책은 필요가 없다는 것인지 물어볼 수도 있다. 물론 책의 의미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가장 강력한 점은 목차라고 생각한다. 동영상을 통해서 충분히 공부했다면, 책을 펴서 목차를 보면 '내가 모르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처음 공부하는 분야라면 책의 목차를 통해서 어떤 것들을 배워야하는지를 먼저 살펴볼 수가 있다. 그리고 특정한 기능에 대해서 자세하게 공부하고 싶을 때도 책이 도움이 된다. 왜 이런 기능이 있는지, 내부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최대한 짧게 만들어 집중력을 유지해야하는 동영상 강의에서는 다루기 힘든 부분이라서 그렇다.
'공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학교나 학원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교실, 책, 선생님, 칠판, 노트, 교과서가 뒤따라 올 거다. 그런데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컨텐츠는 이미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데, 교실은 그걸 못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학교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펴놓고, 문제집을 풀던 우리 세대에게 묻는다.
정말 당신이 공부하는 방식이 최선입니까?
인공지능이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모든 지식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새로운 개념과 기술을 빠르게 훑어보고, 앞으로 쓸만한 기술인지 판단하고, 그렇다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빠르게 배우는 것이다. 천천히 책을 읽으며 공부하기에 이 시대에는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