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은 어떤 기회를 주는가?
2016년 상해에서 살던 우리 부부는, 새해를 대만에서 보내기로 정했는데 휴가 일정을 모두 대만에서 보내기에는 시간이 좀 남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 다른 곳에서 며칠쯤 시간을 좀 보내다 대만을 갈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싱가폴에 며칠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냥 내가 싱가폴에 가보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2016년 12월 29일 우리는 싱가폴에 도착했고, 나에게는 첫 싱가폴 여행이 시작되었다. 거의 상해에서 1년 가까이 살던 터라 상해 사람들의 다소 거친 행동에도 익숙해져 있었지만, 오랜만에 싱가폴의 깨끗함과 사람들의 친절함을 접하니 정말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상해에서 한참 시린 겨울을 보내고 있던 터라 더 따뜻하게 반겨주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 같다.
그렇게 우리는 새해를 싱가폴과 대만에서 보내고 상해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니 상해에서 우리 부부가 포기하고 살고 있는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해에서는 한 달에 마스크 없이 나갈 수 있는 날이 며칠 안되었고, 물이 깨끗하지 않아서 밖에서 사 먹지만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이 깨끗한지 알기 어려운 매일이 이어졌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중요한 우리 부부에게 그간 상해 생활에서 느꼈던 부족함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상해의 생활이 객관적으로 볼 때 나빴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외부에서는 잘 모르지만 정말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이나, 빠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아직은 저렴한 인건비 덕에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일상을 소중하게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기기로 했다.
다른 나라로 이주를 생각하는 우리 부부에게, 둘 중 한 사람에게만 기회가 많은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기회가 많은 것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싱가폴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가 아닌가?
http://reports.weforum.org/global-gender-gap-report-2016/rankings/
2016년 자료에 따르면 싱가폴은 전 세계 55위, 아시아 4위의 성평등 국가이다. 해당 자료는 남녀 임금 격차, 교육, 건강 등 다양한 지표를 토대로 산정되었으니,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자세히 살펴봐도 좋겠다. 참고로 아시아 내 싱가폴보다 양성 평등한 나라는 필리핀(7위), 뉴질랜드(9위), 호주(46위)이고, 한국은 116위를 차지했다.
물론 여전히 싱가폴 내에서도 남녀 간의 임금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남녀가 모두 완벽히 평등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회사 임원에 여성 비율이 높다는 것 등 아시아 내에서는 최고 수준으로 여성이 일하기 좋은 도시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특히 싱가폴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주위 동남아시아 나라에서 가정부를 데려오고,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집에 상주하는 경우 70만 원 내외)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서 남녀 모두가 육아 때문에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싱가폴의 경우 학비가 비싸고 특히 국제 학교의 경우에는 학비가 많이 비싸서, 자녀 교육까지 생각한다면 싱가폴은 굉장히 비싼 나라가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출산 후 자연스럽게 경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한국과는 달리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간혹 싱가폴 사람들이 워낙 가정적이고 술이 비싸서, 한국에서 주재원으로 싱가폴에 온 으쌰 으쌰 좋아하시는 중년 남성분들 중에서 심심하다고 괴로워하시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대체로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 거 같다.)
마지막으로 개발자에게 싱가폴이라는 나라는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해에서 부인님은 독일계 기업에 다니고, 나는 프리랜싱을 했었다. 상해에서 개발자로 취업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많은 회사들이 업무가 가능한 수준의 중국어를 요구했고 사실 그것은 쉽지 만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싱가폴은 영어가 공용어인 나라이다. 물론 중국계 싱가폴인 개발자가 많기 때문에 그 친구들 사이에서 중국어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업무는 영어로 진행된다. 한국에서도 개발자에게 영어는 싫더라도 문서를 확인하거나 해외 개발 커뮤니티를 참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언어가 아니던가.
그리고 요즘 호주나 미국은 외국인의 비자 발급을 줄이고 있는데, 싱가폴은 여전히 해외 개발자 유입에 적극적이고 그리고 비자 발급도 원활한 편이다. 그리고 싱가폴인들이 한국 사람들에 대해 우호적인 것도 처음 해외에 나와서 적응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 먼저 와서 말을 거느냐, 아니면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하느냐는 회사 생활에 제법 큰 차이를 만든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IT 회사들의 HQ가 모여있기도 하고, 정말 많은 스타트업이 동남아 시장 진출을 위한 곳으로 싱가폴을 선택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개발자들이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을 다니는 것도 일반적이라서,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해당 학력을 갖출 경우 그 포지션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실력만 있다면 원하는 회사로 얼마든지 이직하면서 연봉 인상도 이끌어 낼 수 있고, 이직할 때마다 연봉 인상 폭도 큰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싱가폴에서 경력을 쌓는다면 영미권 나라 어디에서 일하기에도 충분한 영어 실력과 업무 경력을 갖는데 도움이 된다. 처음 해외 취업해서 일하는 것은 정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하는데, 언어도 부족하고 처음 접해보는 기업 문화에 위축되기도 쉽다. 거기에 여기에 모든 것이 너무나 다른 문화권에서 처음 일을 한다면 제법 큰 스트레스일 수 있다. 그런데 싱가폴은 중국계가 70% 이상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제법 문화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사고방식이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싱가폴에서 일하는 외국인들도 많아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만나 볼 수 있고. 따라서 비교적 서구화되었지만 여전히 아시아 문화를 많이 가지고 있는 싱가폴에서 적응한다면 다른 다라에서도 좀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