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코 Jul 07. 2018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기분

오랜만에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벌써 학원을 다닌 지 4주 차다. 다른 건 해보자고 하면 반응이 미적지근한데, 프랑스어를 배우러 가자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따라나선다며 부인님께서 웃기다고 했다. 해본 사람은 아는 그 새 외국어를 배우는 즐거움은 마다하기 힘드니까.


프랑스어를 배운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프랑스어 학원을 다닌 적은 없는데, 스페인에 다녀와서 대학교에서 프랑스어 1 수업을 하나 들었다. 물론 전공생들이 몰려와서 학점은 고스란히 상납했지만 나름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시험만 빼고. 그래도 한창 스페인어를 공부하다 돌아왔던 터라, 문법이 비슷해서 덕은 좀 봤고 비교하는 재미로 즐겁게 공부했다.


싱가폴에서 프랑스어 학원을 다녀온 다음 월요일, 점심때 회사 식당에서 두바이에서 온 동료 한 명이 주말에 뭐했냐고 물어봤다. 대게는 안빈낙도하는 개발자 친구들이라 주말에 특별한 일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의례적으로 하는 질문인데, 주말에 내가 부인님과 함께 프랑스어를 배우고 왔다고 하니 굉장히 관심을 보였다. 내가 외국어를 좋아하는 걸 알고, 외국어 여러 개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친구라 나에게 질문을 했다. 참고로 이 친구는 파키스탄 출신의 두바이 국적자인데, 종교적 박해를 피해서 두바이로 이민을 갔고 대학교는 캐나다에서 나왔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고, 날카로운 질문을 즐기는 우리 회사 질문왕이다. 


왜 계속해서 외국어를 배우는 거야?


처음에 영어를 배울 때나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는 뭔가 이유가 있었던 거 같은데, 다시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하는 지금은 크게 이유가 없는 거 같아서 잠깐 생각을 하다 말을 이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그 자체로는 굉장히 가학적인 행위라고 생각해. 새로운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가장 익숙한 모국어를 떠나서,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아기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기분이거든. 갓 태어난 미숙한 아기처럼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해지는 느낌도 들고. 그런데 외국어를 몇 개 공부하면서, 지금은 처음에 그 고통스러운 순간만 이겨내면 그 외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래서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즐기면서 이겨낼 수 있는 거 같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아기처럼 무력해지는 그 느낌이 내가 가진 모든 걸 내려놓는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아.


사람들이 묻는다. 왜 여러 외국어를 공부하냐고, 영어랑 중국어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니냐고. 물론 나에게도 내내 영어에 발목 잡혔던 학창 시절의 기억과 토익 점수 때문에 카투사를 지원할 수 없었던 흑역사도, 그리고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영어를 공부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국어를 통해서 내려놓음을 배운다고 느낀다. 프랑스어로는 정말 간단한 문장 하나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며, 내가 아는 것들 그리고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곳에 던져진다면, 언제든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마 나는 새로운 외국어 배우기를 통해서 겸손함을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어민 선생님과 1:1 수업 요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