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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Feb 24. 2019

한국식 공정함에 대해서 생각하다

무엇이 공정함인가?

싱가폴에서 생활한 지도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싱가폴 생활은 생각했던 것 보다도 굉장히 만족스럽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싱가폴 생활이 1년이 될 무렵 영주권을 신청했다. 이곳에서 적어도 한동안 살게 될 것 같고, 다른 나라에서 생활해보기 위해서 떠나더라도 이곳을 거점 삼아서 생활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싱가폴에서 취업을 하고 싶다고 사전 답사를 오신 분들 몇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현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먼저 연락하고, 현지 생활이나 구직하는 방법에 대한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적극적인 태도로 구직하시는 분들이 결국 해외 취업에 성공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고, 최근에 뵈었던 분들도 조만간 싱가폴에서 다시 뵙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분들과의 이야기 중에 재미있었던 대목은 한국에 있는 사람들끼리 해외 취업을 위한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대목이었다. 공채 취업 스터디도 아니고 해외 취업 스터디라니? 너무나 한국적인 이야기에 굉장히 호기심이 생겼고, 어떤 식으로 해외 취업을 스터디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이 분은 해외 취업에 성공한 분들의 책이나 블로그를 읽고, 서로 느낀 점을 나누고 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하기가 힘들다면, 다음 질문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보도록 하자. 해외 취업을 하고 싶다면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한국에서 최소한 2년 이상 해외 취업 싶은 분야의 경력을 쌓는다.
2. (현지에서만 가능) 동문회 등 모든 수단을 통하여 관련 업계 분들과 네트워크를 쌓는다.
3. (가능하면 현지에서) 현지에서 관련 업계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의 조언을 구한다.
4. (가능하면 현지에서) 쌓은 네트워크를 통해서 추천을 받아서 회사에 지원한다.
5. 앞의 1~4까지의 방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회사에 직접 지원한다.


사실 해외에서 취업을 하기 위해서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 모임에 나가서 명함을 교환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묻고 최선을 대해서 돕는다. 왜냐면 사업이든 이직이든 좋은 기회는 사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의 나라에서의 공정함


그런데 한국은 시험의 나라가 아닌가? 모두가 같은 날 앉아서 수능을 본다. 대학생들은 4학년이 되면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공채에 지원한다. 수험생이 그리고 취준생이 하는 일은 수동적으로 시스템에서 요구하는 답안을 채워 넣는 일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이것을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공정한’ 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서 시간을 들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봤을 때 공채는 ‘공정’한가? 과연 공채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실제로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뽑을 수 있냐는 말이다. 과연 공무원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국민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고 뽑아낼 수 있는가? 과연 수능이라는 시험을 통해서 대학 교육을 능동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학생을 뽑을 수 있는가?


이런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속에서 시간을 보낸 한국 사람들에게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문제의 본질을 정리하고 그 본질을 파고 내려가기보다는, 모든 것을 시험으로 치환하고 그저 그 시험을 응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태도가 오랫동안 학습되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무엇을 위해서 대학교가 존재하는지를 잊은 채,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학교들의 학생 커뮤니티에 그 이외의 대학교를 무시하고, 마치 그들이 이룬 것이 이 세상 최고의 성취인 양 생각하며 대학교 간 차별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외치는 그 모습이 이것을 잘 보여주지 않나. 싱가폴에서 구직하면서 한 번도 토익 점수가 몇 점인지 물어본 적이 없는데, 한국은 회사 진급 시험 때마다 토익 점수를 갱신하는 일이 흔한 모습이 이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한국에서는 공정함이라는 이름 속에 본질은 덮이고 흐려진다. 그리고 그 절차가 그 경쟁에 함께 뛰어든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공정하게 대우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는 비본질적인 것들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만든다. 마치 자기가 사무실을 떠날 때까지 아무도 못 떠나는 사무실의 직원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상사처럼. 사실 한국이 이런 절차적 공정함에 매달리는 것은 이 사회가 공정하다고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싱가폴에서 생활하면서 네트워킹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취업을 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보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네트워킹이란 ‘학연’과 ‘지연’으로 대표되는 한국식의 배타적인 네트워크와는 달리 조금 더 느슨한 형태로 자기의 노력에 따라서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이렇게 네트워크를 통해서 취업과 이직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개인의 훌륭한 네트워크에 박수쳐 줄 일이지 비난받는 일도 아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믿는 공정함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국인이 믿는 공정함이란 과연 진정으로 공정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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