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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Jul 14. 2019

싱가폴에서 아기 낳기

놀라운 그들의 임산부 배려

9월이면 아빠가 된다. 임산부로서, 그리고 임산부의 남편으로서, 우리 부부가 싱가폴에서 보내고 있는 시간이 참 즐겁다. 임신을 하고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는 그 시간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겠지만, 싱가폴에서 생활하면서 그 즐거움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이곳이면 낳아도 되겠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그래, 여기서는 아이를 낳아서 키워도 좋겠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버스, 지하철에서 양보하는 건 이곳에서 너무 당연하다. 70~80대 노신사 분들도 노약자석에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아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에 놀라기도 하고, 노약자석이 아니라도 벌떡 일어나 달려와서 자리를 비켜주거나 혹은 노약자석에 앉은 사람에게 일어나서 임산부를 앉게 해 주라고 말하기도 한다. 임산부뿐만 아니라, 아이가 있는 가족이나, 유모자를 끌고 나온 부모는 우선적으로 자리를 배려받는다.


하루는 부인님께서 퇴근 시간에 만원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무원이 배를 보더니 자신이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더란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있었는데, 제일 먼저 지하철로 들어가서는 가득 찬 지하철에서 자리를 한 자리 양보받아서, 멀리 서있는 아내를 불러서 그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역무원은 다음 역에서 쿨하게 내렸단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그 과정을 사회가 지지하고 응원하는 그 경험은 아이를 낳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이런 사정은 회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임신을 한 당사자는 물론이고, 내가 회사에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매니저가 처음 한 말은 "오늘부터는 나한테 말하지 않고 언제든지 일찍 퇴근하거나, 재택근무해도 돼."였다. 아내는 회사에서 "임신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에 큰 프로젝트는 이 기간에 맡지 않아도 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임신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아내의 병원 방문을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다. 왜 이렇게 "당연"한 말들이 너무 고맙게 느껴지는 것일까?


비싼 의료비


이곳에서 출산할 때 유일한 걸림돌은 비싼 의료비다. 보통 아이 하나를 낳는데 외국인 기준으로 1천~2천만 원 정도 비용이 든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싱가폴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크게 아플 때는 의료비 때문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출산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만약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거나, 출산 후 문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추가로 수 천만 원 깨지는 건 일도 아닌 상황이 발생한다. 많은 싱가폴 기업들이 이런 싱가폴의 비싼 의료비 덕분에 직원의 보험을 들어주는데, 출산은 제외되는 경우도 많아서, 특히나 외국인이 싱가폴에서 아이를 낳는 결정을 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에 페이스북에서 한국의 임산부 배려석이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않고 지정되었다고 불평을 하는 글을 읽었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사회적으로 합의까지 이루어야 할 일인가? 한 사회가 어떻게 임산부와 아이를 대하는지 보면, 그 사회가 얼마나 아픈지, 병들었는지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불만, 많은 노키드 존을 보면서, 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미움받지 않는 세상에서 자랐으면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이제 고생길이 열렸다", "앞으로 잠 못 잘 텐데, 남은 시간 잘 즐겨라", "인생 끝났다"는 말을 듣는다. 이곳에서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심지어 남자가 득실득실한 개발팀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경험이 힘들었지만 얼마나 그 사람들의 인생에 소중했는지, 그 경험이 그 사람들의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놓았는지에 대해서 말해준다. 출산 경험이 있는 아내의 동료들은 임신 기간 동안 일어나는 몸의 변화가 너무 아름답지(amazing) 않냐며 말을 한다고 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자니 임신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사회가 출산과 육아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렇게도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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