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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Feb 06. 2016

천재란 무엇인가

[후기:책]뉴욕 3부작

나는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조금 더 예민한 편인데, 드라마를 통해서 만들어진 가끔은 지나친 갈등과  등장인물을 보면 그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날 것 그대로 들어오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가족들과 드라마를 보다가 갈등이 깊어지면 드라마 더 보기 싫다며 혼자 방에 들어가버리곤 했다. 그 이후 내 소중한 시간을 빼서 드라마를 보면서 즐겁지만은 않은 상황에 감정 이입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특성은  소설책에도 똑같이 적용이 되었던 것 같은데, 책을 좋아하지만 지금껏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할 소설은 손에 꼽는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교과서에 나온 소설이 아니면, 고등학교 때 밤을 지새우며 봤던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이 내 소설 경력의 대부분인 거 같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문과대학 필수였던 문학 수업의 몇 권을 제외하자면. 대신 인문학도답게 철학이나 역사, 사회, 정치 관련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대학생 시절에는 자기계발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왜 그땐 소설책이 재미없으면 덮어도 된다고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을까?


부인은 나와는 정반대의 독서습관을 갖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읽으며 끊임없이 자기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자기계발서를 읽은 적이 없다는 그녀는 다양한 작가와 대화하며 성장해왔다. 그녀와의 대화는 항상 즐겁고, 그러면서도 절대로 가볍지만은 않은 깊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쓴 글을 읽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인데, 느리게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려 간 그녀의 글에는 내면에서 자라난 향기가 항상 짙게 배어 있다.


그녀의 영향으로 정말 오랜만에  소설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뉴욕 3부작이라는 책인데, 결혼하고 처가댁에서 부인이 예전에 사두었던 책을 가져왔다.


그의 소설은 정말 쉽사리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든  소설책이 이렇게 흡입력 있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진심으로 학창시절 즐겨보던 무협 소설만큼 재미있게 책장을 넘겼다. 작가와 탐정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 소재가 어우러지면서 내용은 흥미를 더했다. 글을 읽으면서 좀처럼 나의 예상은 들어맞지 않았고, 그 예상이 빗겨날 때마다 만나는 작가의 상상력과 작가의 묘사 능력에 입을 다물기 힘들었다. 어떻게 이런 묘사 속에서 이야기 전개의 긴장감을 힘 있게 이끌어 갈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전체 스토리에 삽입된 외전 같은 이야기들은 소설의 풍미를 더 해줬다.


올해 매주 한 권 이상의 책을 읽기로 했는데, 아마 그 목록에는 소설이 꽤 많이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


전체 내용은 3부로 이뤄져 있는데, 나는 2부까지 읽었고, 개인적으로 1부 '유리의 도시'를 2부 '유령들'에 비해 훨씬 재미있었다.


1부 '유리의 도시'에 주인공인 '퀸'은 이름과는 다르게 중년 남성 소설가이다. 그는 매일 혼자서 반복적인 삶을 보낸다. 매우 고독하게. 어느 날 걸려온 '폴 오스터'라는 탐정을 찾는 전화에 "그게 나요."라고 외치고 그 전화의 주인공을 찾으러 간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게 나요."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뭐야 이 인간은?'이라고 외쳤지만, 하루하루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퀸'에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그 일탈은 새로운 삶을 부여받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장난스럽게 시작했던 이 일에 빠져들기 시작해서, 살고 있던 집에서도 쫓겨나고 걸인처럼 되어버린다. 사라져버린 의뢰인, 그의 집에 혼자 누워서 의뢰를 받은 후 그간 기록한 모든 내용이 담긴 빨간 수첩 하나가 바로 '유리의 도시'의 정체이다.


한 중년 남성의 고독과 무력감이 일탈을 만나서 일어나는 일을 서술해가는 방식을 보며, '소설가라는 사람들은 천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머리 속에서 세상을 만들고 지우는 사람들이 소설가가 아닐까.


폴 오스터의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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