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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Feb 19. 2016

책을 사정없이 비틀어라

[후기:책]읽다

브런치를 이용하기 전에 쓰다가 지금은 방치되어 있는 블로그에 카테고리는 모두 '~다' 시리즈로 되어있었다. 여행하다, 배우다, 걷다, 느끼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던 블로그에서 브런치로 옮겨오면서, '매거진'이라는 브런치 내부의 카테고리 이름을 정하면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 하나의 키워드로 그 안에 담을 글의 주제를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고심하던 끝에 여러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 글이 담겨있는 매거진은 '기록'이고, 해시태그로 #일상, #단상, #후기로 적어 놓았다. 다른 매거진에 비해 가장 다양한 글을 닮을 수 있게 편안하게 열어놓은 매거진이라는 뜻이다.


김영하 씨의 <읽다>라는 책은 그렇게 서점에 눈에 띄었다. '이 사람은 누구이기에 나랑 비슷한 ~다 시리즈의 작명 기법을 활용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 하나 넘겨보지 않고 집으로 엎어왔다.


나는 지금  되돌아보건대, 학창 시절 지적 허영심이 많은 아이였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군것질도 크게 하지 않았고 물욕도 크게 없었기 때문에 크게 돈을 쓰지 않았는데, 내 지출의 가장 큰 비율은 항상 도서 구매가 차지했다. 부모님은 도서 구매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입을 대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거의 매달 30만 원이 넘는 책을 구매했다. 물론 사놓은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책을 고르면서 무슨 내용일지 상상하고 실제로 책을 읽었을 때 그 예상이 빗나갔을 때의 즐거움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책에 대한 충동구매 덕분에 항상 YES24 계정은 최고 등급이었고  이런저런 할인 혜택도 많이 받기도 했다. 


책에 관해서 아직도 이불을 찰 것 같은 몇 가지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 대한 것이다. 중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창 꽃피던 나의 지적 허영심은 유명한 고전을 읽어보자는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어디서 들어보았던 것 같던 "오만과 편견"이라는 이름을 YES24에서 검색했고 크게 상품평 따위는 살펴보지 않고 주문했다. 그리고 그 책은 나의 비판적 사고를  발달시키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 비판적 사고는 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응?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17~18세기 영국의 배경으로 한 사랑 소설에서 어째서 비판적 사고를 길렀는가? 아주 뒤에 <오만과 편견>의 영화를 보고 알게 되었지만, 내가 그때 샀던 책은 똑같은 이름의 한양대 임지현 사학과 교수와 코넬대학교의 사카이 나오키 교수의 대담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낳은 대문호 무라카미 하루키가 남성이었다는 사실을 안지도 부인을 만나고 나서였다.


김영하 씨의 <읽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정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였다. 첫째 날부터 여섯 째날로 6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 책 속에는 너무나도 많은 책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거의 대부분이 이름도 듣지 못한 책들이었는데, 다양한 책들을 지루하지 않게 인용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저 이야기 책이라고 생각했던 소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상상하고 변주할 수 있다는데 또 놀랐다. 항상 소설책 좋아한다는 사람이 한다는 한 작가의 작품 몰아보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김영하 씨의 작품 중에 특히 <살인자의 기억법>이 눈에 들어와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시작으로 김영하 씨의 작품을 더 읽게 될 수 있을까?


<읽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을 하나만 뽑으라면, 첫 문장의 중요성이다. 김영하 씨에 따르면 책 읽기는 지독히도 능동적인 활동인데, 수없이 책을 덮고 싶은 마음과 맞닥드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라면 독자가 헤어 나올 수 없는 첫 문장을 써야 한다. 결국 이것이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마케팅이 마케팅으로 이름 붙여지기 전부터 내려져온 마케팅의 본질이 아닐까. 자극적인 기사를 써대는 황색 저널리즘이 잘못 활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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