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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엠미 Feb 25. 2022

<우리에겐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를 읽고

문학의 역할

'킬링 타임으로 소비되는 것'들은 많다.  그런 것들은 이런 문장조차 쓰기 아까운지 '스낵 컬쳐'라며 간단하게 부르도록 정식 명칭까지 있다. '스낵 컬쳐'는 하이에나처럼 몰입할 거리를 찾는 인간들에게 아주 손쉬운 먹잇감이다. '스낵 컬쳐'를 병에 담을 수 있다면 설명란에 이렇게 쓰여 있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반짝> 잊게 해주는 약.' 쿼터리즘이라는 자발적 고질병을 앓고 있는 현 세대는 그 약병들을 소중히 여기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그 병에 담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것들이 병에 담겨지고 있으며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문학의 효용 가치를 논할 때 흔히 '도덕적 교훈', '인간에 대한 다양한 이해' 등 많은 것들이 텍스트의 행간을 지목하여 말한다. "이 책의 내용은 ~~~ 의미를 가지며,~~~것들을 깨닫게 한다."그럼 <스낵컬쳐 병에 담긴 문학>을 쭉 들이킨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마블 영화에서도 그런 ~~~의미와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 잘 만든 유튜브 컨텐츠 영상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문학의 무용론을 펼치는 사람은 짧게 말한다. "문학은 실생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을 시간을 떼우려고 읽거나 자기 만족으로 읽는 문학 무용론자의 아군들은 이런 변론에 씁쓸하게 동의하며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를 써낸 저자 앵거스 플레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도 아주 영리하게.


마치 대형 로펌에서 나온 것처럼 앵거스 플레처는 문학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25가지의 효과를 펼쳐보였다. 자신감 넘치는 저자는 그것 또한 수 많은 효과들 중에 간추린 것이라 하며 아직 발명되지 않은 새로운 문학 기법을 통한 새로운 효과 또한 많을 것이라고 예언까지 한다. 그는 애초에 변론의 방식을 다르게 했다. 행간에서 찾던 문학의 효용 가치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바꾼 것이다. 그가 가리킨 곳은 바로 '인간의 뇌'다. 저자에 따르면 이 효과들은 의도하지 않아도 뇌에 퍼진다. 시간을 떼우려 읽었든 자기 만족으로 읽든 문학이 뇌에 주는 효과는 환자 모르게 투입되는 약처럼 효과를 발휘한다. 그 효과가 지구에서 가장 복잡하다고 여겨지는 인간의 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저자는 그 어려운 걸 시도했고 해냈다.


효과들을 창시한 작가들이 의도했든 우연이든 문학이란 카테고리 안에서 발명된 기법들은 다양했다. 발명된 기법들이 다시 서로 뒤섞여서 새로운 효과를 만들어냈고 또 다시 생성되는 다양한 기법들의 조합의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 아직 발견되지 않은 효과들에 대한 저자의 예언 또한 믿음이 간다. 저자는 수백 수천년 전 혹은 현대에서 문학적 기법들의 기원을 찾고, 탄생 과정과 발생 당시 상황을 자료를 통해 유추하며 그 기법들의 심리학적 효과를 설명하고 훗날 그 기법을 활용한 대표 작품을 예로 드는 식으로 챕터들을 구성했다. 


예를 들어 희극과 비극을 뒤섞어 만든 희비극의 창시자는 고대 그리스의 작가인 에우리 피데스로 보았다. (현존하는 자료상 가장 오래 된 출처를 창시자로 본다.) 그 당시에도 희비극은 별난 작품으로 취급되었으며 아테네의 연례 연극 축제인 시티 디오니시아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의 웃긴 상황 같은 이런 어리둥절한 문학적 기법에 해당하는 희비극이 뇌에 주는 효과를 설명하기에 앞서 이 기법이 치료할 병에 해당하는 무감각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어렸을 적 부모로부터 받은 정신적 학대나 전쟁 같은 참혹한 경험들은 감정을 무뎌지게 만든다. 이것은 두려움과 기쁨 등 삶의 위협과 기회에 대한 본능적 반응의 출처인 변연계가

 억제 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감정,감각의 억제는 생존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 제동이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이 억제기(전전두엽 피질에서 일어난다=감정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고통스러운 상황이 아니어도 선제적으로 억제가 계속 이뤄지는 것이다. 이것이 무감각의  원인을 간략히 설명한 것이다. 


비극은 노출 치료법에 해당한다. 현재보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통해 상대적으로 현재가 안정되어있다는 안도감을 주기 위해서다.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계적 무감각(해리)에 해당하는 사람에겐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스러운 상황이 아니어도 억제기가 선제적으로 작동하는 사람에게 비극은 더욱더 억제기를 강화할 뿐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희극 또한 마찬가지다.무감각 환자의 무의식에선 감정은 나를 위협하는 안 좋은 것이고 그래서 억눌러야 된다고 여긴다. 기계적 무감각은 노출치료법과 정반대의 치료법이 필요하다. 그것이 희비극이다.


희비극은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것은 슬픔인가? 기쁨인가? 감정의 분석은 

감정을 억제하는 전전두엽 피질(억제기)에서 일어난다. 할 일이 늘어난 억제기(브레이크)는 느슨해진다. 이것이 1차 효과이다. 2차 효과는 희비극이 보여주는 긍정적 감정들이다. 그것은  감정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이런 억제기의 완화와 인식 변화를 부드럽게 이뤄주는 것이 희비극이다. 저자는 이런 희비극을 잘 활용한 현대 작품으로 ‘펀 홈’을

제시했다. 펀홈은 개인 가족사를 희비극적으로 다룬 그래픽노블이다. 


앵거스 플레처는 이런 문학적 기법들의 탄생 기원과 그 효과를 활용한 현대 작품으로 꼭 책만 제시하지 않았다. 희비극은 저자가 제시한 25가지 문학적 기법 중 하나일 뿐이다. 많은 기법들이 연극, 영화, TV 시리즈, 등 다양한 컨텐츠에서 활용되어진다. 그 기법들의 탄생 기원은 글, 바로 문학이다. 그 뿌리는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인간사에 대한 다양한 이해의 시도였고 많은 사람들을 서로 이해하게 하거나 스스로를 치유하게 했다. 


이제까지 잘 만들어진 작품들을 통해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기대되는 것은 미래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정반대의 스타일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조이스와 프루스트를 결합시킨 형태이고 심리적 효과 또한 새로워졌다. 이처럼 탄생한 기법끼리 또 다시 다양하게 조합한 형태는 또 어떤 효과를 가져올까? 예를 들어 <희비극>과 라쇼몽의 <다시 살펴보기>가 결합되면 어떤 작품이 나오고 어떤 효과가 일어날까? 물론 작가들은 이런 수사학적인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아도 그들에게 체화된 여러 선구자들의 기법들로 또 다른 독창적인 작품이 나올 것이다. 그 작품은 복잡한 현대의 신경증을 또 다른 방식으로 치유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문학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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