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적 삶
책을 통틀어 케인즈의 삶을 돌이켜 보면 참 양자역학적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게이로 살다 여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브루주아 이면서 프롤레탈리아들의 열렬한 인기인,
실용적인 지식으로 정치계의 거물이면서 동시에 이상적이고 감상적인 예술가 무리의
절친한 친구인 케인스는 다른 사람에겐 고착화되어 있는 카테고리를 너무나 쉽게 넘나들었다.
대학시절 결성된 블룸즈버리 그룹(버지니아 울프도 속해있다.)은 지적,성적 해방이 목적이었다고한다.
그는 혈기 왕성하고 지적으로 자만심이 넘칠 시기에 다양한 관점의 지성인,예술인들과 교류하였으며,
그들과 논쟁하면서 세상에 대한 관점을 넓히고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일찍이 파악했다.
포레스트 검프보다 다양하고 지독한 역사적 굴곡을 거치면서도 케인스는 점점 거대해졌다.
1차,2차 세계대전과 대공항 속에서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한쪽으로 치우는 양쪽의 관점 속에서 균형을 찾고 용기있게 내뱉은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양자역학적 삶의 태도와 블룸즈버리 그룹에서의 논쟁에서 단련한 덕분이었다.
그는 모두의 대변자이자 비판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갖췄다.
당시에는 한쪽의 관점이 유익하고 정의롭다고 여겨지는 시절이었고
다양한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유용한 지혜를 발견하기 힘들어 보였다.
케인스는 금본위제의 단점을 지적하고 재정 정책의 이점과 중요성을 제시해서
경제학자로서 재정 정책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그의 삶의 태도를 보면 상황이 변하면
자신의 생각 또한 언제든 변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그는 고착화를
혐오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수학적으로 시장 경제를 파악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가 보기에 시장 또한 인생처럼 생물적으로 수 많은 변수에 의해 형성되고 발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삶처럼 많은 자본으로 많은 기회를 주면 성공 기회가 높아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착화를 피하는 것이 자칫 우유부단하게 보여질 수 있음에도 케인스의 삶은
오히려 강단있어 보였다. 그는 블룸즈버리 클럽에서 단련된 마음으로 세상으로 나가
다양한 관점을 계속 둘러보고 모든 관점에서 유용한 것들만 섞어서 판단하고 직관을 길렀다.
그가 죽었을 때 학자로서 정반대의 입장의 경쟁자가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걸 보면서 대부의 돈코를레오네가 생각났다. 돈 코를레오네의 적도 경의를 담아 장례에서 그에게 애도를 표했다.
진짜 거물은 적도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둘의 다른 점은 케인스는 진짜 피와 살이 있는 실존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책에는 거물 케인스와 동시에 인간 케인스도 많이 보여준다. 그는 물질적으로 부족하지만 정신적으로 세상을 더 넓게 보는 블룸즈버리 클럽 친구들에게 열등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좋게 보면 자극제)
한껏 어깨에 힘주다가도 영국의 정치적 결정에 실컷 비난을 들으면서 그 정치무리의 한가운데 있는 자신의 처지에 주눅들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 틀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또한 자신의 젊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드러난다. 경제학자의 숫자 1% 2%는 수십 수백만명의 실직자와
구직자의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불안 속에서 자신이 겪은 모든 경험과 관점, 그리고 지식 그 모든 것들을 동원해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검증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