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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엠미 Jul 11. 2022

5. 언제나 중간에 있다

나보다 못 달리는 사람과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


원형 트랙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백인이 뒤에서 나타나더니 내 옆을 지나쳐 달려갔다. 본능적으로 나의 속도가 올라갔다. 백인의 등이 가까워지나 싶었는데 곧 점점 멀어졌다. 나는 내 페이스로 돌아가기로 하고 속도를 조정했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백인이 내 옆을 지나갔다. 한 바퀴 차이가 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백인의 등이 멀어져갔다. 열이 받은 건 아니었는데 신경이 쓰였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고 얼마 뒤 코로나가 막 시작했기 때문에 사람들과 뛰는 마라톤은 다 취소되었다. 나는 줄곧 혼자 달렸었고 달리는 동네 장소들에서 러너들을 본 적도 별로 없었다. 



나는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을 실제로 그때 처음 본 것이다. 내가 잘 달릴 때는 10km 평균 페이스가 45분대였으며 이 정도는 꽤 잘 달리는 편이다. 물론 인터넷을 좀만 검색해봐도 일반인 중에서 나보다 훨씬 잘 달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내 페이스에 만족하고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월등히 잘하는 사람을 직접 눈 앞에서 보니 자극이 됐다. 계산해보니 그 백인은 1km기준 3분 몇 십초대로 트랙을 달리고 있었다. 몇 번이나 한 바퀴 차이로 내 옆을 지나가니 나도 이기진 못하더라도 더 이상은 내 옆을 지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속력을 엄청나게 올렸다. 



백인이 눈 앞 근처에 달릴 때는 어떻게 달리나 궁금해서 관찰하기도 했다. 다리가 길쭉 길쭉 한데 발을 빨리 굴리는 것 같지도 않고 성큼 성큼 뛰는 데 보폭이 커서 그런가 계속 쉽게 거리가 벌어졌다. 속력을 엄청 올렸지만 곧 목표 거리를 완주하기 위해 원래 내 페이스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그냥 그 잘난 백인을 감탄하면서 봤다. 승부욕도 어느정도 비슷해야 생기는 것 같다. 달리기라는 운동은 지극히 개인적인 운동이지만 잘하고 싶을 수록 남과 비교할 수 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에게서 배울 점만 바라본다면 다행이지만 내가 가질 수 없는 길쭉 길쭉한 다리라던가 남의 페이스와 주법을 부러워한다면 내 달리기에 안 좋은 감정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세계 기록을 보유한 킵초케를 제외하고 누구나 중간에 있다.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지만 그 백인보다 잘 달리는 사람도 많다. 혹시나 내가 그 백인보다 잘 달리게 되더라도 언제나 나보다 못 달리는 사람과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 사이에서 달린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나의 페이스다. 달리기를 하게 해주는 내 몸과 내 주법을 계속 더 편안하도록 나에게 맞게 나의 적정한 페이스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이 달리기다. 나의 페이스를 초라하게 여기지말자. 그 뒤 천변에서 달리기를 하는데 그 백인을 또 만났다. (달리기를 하면서 몇 번 더 봤다.) 원형 트랙에서 만난 것 보다 좋았다. 멀어지는 등을 한 번만 봐도 되기 때문이다. 



나의 페이스가 중요하지만 백인의 멀어지는 등을 바라보며 아무도 모르게 속력을 올려본다. 어쩌면 달리던 수 많은 날동안 어떤 사람도 내 등을 보고 속력을 조금 올렸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자세를 좀 더 바르게 하고 싶어진다.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을 인정하고 무리하지 않을 정도로 따라가 보는 것. 나보다 못 달리는 사람을 위해 자세를 바르게 하려는 것. 달리기의 세계는 중간에 있는 사람들로 그렇게 돌아간다. 




<거의 매일 10km, 5000km를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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