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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신 Mar 05. 2021

진짜 몰디브를 만나는 시간 4

사람들의 집, 여행자의 집

                                                                                                                                       Photo by Juheeshin 


몰디브 사람의 집, 외지인의 집


 저녁노을을 보며 천천히 섬을 한 바퀴 돌다가 동네 식당에서 헐한 저녁을 먹었다. 산책을 하던 어느 골목, 집 앞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걸음을 멈추니, 수줍게 빗자루를 만드는 중이라 설명해 주었다.

앉아있는 뒤편 벽에 그려진 문과 벽이 너무 아름다워 참 곱다 칭찬하니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하며 언니가 그린 것이라고 살짝 알려준다. 집의 뒤편이어서 가정집인 줄만 알았는데 한 모퉁이를 돌아서니 몰디브 전통 지붕과 처마를 가진 아름다운 게스트하우스였다. 문 안쪽에 모래마당이 있는 것도, 마당을 중심으로 방들이 빙 들러있는 것도 전통집 모양새 그대로였다. 개장한 지 일 년 되었다는 방 4개짜리 정갈한 게스트하우스, 씨에스타를 꾸려가고 있는 것은 두 자매였다. 영어는 물론이거니와 조용한 친절이 몸에 배어있었다. 안쪽 마당에는 스노클이며 낚시 도구들이 가지 런지 정리되어 있었다. 해안에 자리한 몇 개의 다이빙 숍들과 연결이 되어 있는 모양인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다양했다.





골목골목 옛집을 부수고 2-3층의 새 건물을 올리는 것을 보던 중.. 오래된 집을 잘 정돈해 게스트하우스를 꾸려가는 한 가족을 만난 터라, 반갑고 고마웠다. 살던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바꾸는 것이 할만한 일인지 어려움은 없는지 묻자, 찬찬히 설명해 준다.

  

“집을 고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려면 우선 돈이 있어야 하는데 은행에서 대출을 얻을 수 있어요. 어려움이 있다면 그 대출을 얻기 위해 연줄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저희는 많이 고치지 않고 전통가옥 양식을 살리고, 조금만 더 편안하게 정돈하나 정도예요. 일 년 정도 되었지만 천천히 자리 잡아가고 있어요. 정성껏 돌보고, 사람들을 맞이하니까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 같아요."


정갈한 마당과 방, 지붕과 처마까지 아름다운 두 자매와 꼭 닮아있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마당을 쓰는 빗자루 하나 쉬이 사서 쓰지 않고 나뭇잎을 엮어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정성으로 집을 가꾸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것일 듯했다. 이미 숙소가 정해진 탓에 옮길 수도 없는 마음을 전하고, 다음에 온다면, 이 집에 꼭 하루를 머물고 싶노라고 손가락을 걸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80개의 게스트 하우스 중 그렇게 현지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꾸려가는 게스트하우스는 10% 남짓에 불과하다 했다. 이미 몰디브 관광객의 3분의 1을 차지한 중국 관광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중국 관광자본이 들어와 집을 사고, 건물을 세우는 일들이 허다했다.


몰디브 관광객 100만 중 30만 명을 중국인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몰디브 곳곳엔 중국인 관광객이 단체로 몰려다니는 모습을 흔히 마주치곤 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중국인 관광객들은 중국인 여행사 버스를 타고, 중국인 가이드를 따라, 중국인이 투자하고 공동으로 운영하는 숙소에 묶는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  만약 이제 피어나기 시작하는 로컬 투어리즘 영역까지 그렇게 외부의 자본이 들어와 다시 이윤을 가져간다면 몰디브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지...

다만 다행한 것은 몰디브 정부가 외국인이 땅이나 집을 소유할 수 없도록 법을 정비해 둔 것이다. 땅을 사거나 건물을 지을 때 몰디브 사람과 반드시 공동명의로 해야 할 뿐 아니라 지분의 50%를 넘을 수 없고, 수입의 50% 이상을 가지고 갈 수도 없다고 한다. 소중한 것을 지켜가기 위해 몰디브가 놓아가는 걸음이 사람들의 희망에 잇닿기를 기도하며 마푸지의 마지막 저녁길을 걷는다.


 

다시 빌링길리 


마푸지를 떠나 말레로, 말레에서 다시 빌링길리로 돌아오는 여정은 이제 집에 가듯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실내에만 있어야 하는 줄 알았던 배의 천정에 올라가 몰디브 사람들처럼 유유히 바다를 즐기기도 하고, 지나가는 돌고래를 만나기도 한다. 


Home away from Home 

처음 여행을 시작했던 자리로 다시 돌아온 빌링길리 섬. 마지막 인사를 나누듯 이미 익숙해진 마을 길들을 을 골목골목을 촘촘히 다시 걸었다. 첫날부터 눈에 밟혔으나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정치적 그라피티를 찬찬히 살피며 마음으로 담아두었다. 다다가 살펴보니 2015년 체포되어 수감 중인 전 대통령, 모하메드 나시르의 얼굴이었다. 심지어 어떤 벽엔 그를 지지하는 문장까지 선명했다. 몰디브가 지나온 독재의 시간을 기억하는 터라 쉬이 묻지 못한 채  지나왔다.

숙소에서 마지막 항구로 가는 길,

로비에서 만나 우연히 함께 걷게 된 한 청년에게 섬을 떠나기 전 마지막 물음처럼 

그 그림의 의미를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지금 감옥에 있어요. 하지만 그의 정책들이 사람들의 삶에 너무 큰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잊지 못하는 거죠. 노인연금도, 무상교육도, 게스트하우스 법도, 섬들을 오가는 대중교통체계도 다 나시르 정권에서 이루어진 변화거든요. 좋은 정치가 없다면 좋은 여행도 불가능한 거죠" 

문득 지난해 나시르 대통령이 잡혀가던 장면이 선명히 떠올랐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체포되는 모습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두려움과 폭력으로 가득한 순간이었다. 2008년 30년간의 독재를 끝내며 그가 몰디브의 첫 민선 대통령이 된 것은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대통령이 바뀌는 일이 아니라 독재의 종식이었고, 1당 독재에서 다수당 제도로, 최초의 국민투표로 나간 엄청난 역사적 사회적 전환이었던 탓이다.  그러나 그는 군경 세력에 의해 2012년 다시 퇴임을 했고, 2014년 반테러법 위반으로 13년 형을 구형받았다. 그가 다시 끌어내려지고 체포된 후 몰디브의 새 대통령은 오랜 독재자 마움의 이복동생, 야민(Yameen abdul gayoom). 몰디브에 다시 어두움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벽에 나시르를 지지한다고 선명히 자신의 뜻을 밝히는 벽 앞에서 또 다른 나시르로 성장하고 있는 한 청년을 마주한다. 자전거를 끌고 함께 부두까지 걷는 길, 어떤 무거움을 눈치챈 그는  한마디를 보태어 준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독재를 끝내고 나시를 뽑은 것도 결국 몰디브 사람들의 힘이었으니까요. 지금은 견디고 있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면 몰디브 사람들은 가만히 잊지만은 않을 거예요."

15년간 20번을 수감당하고 혹독한 고문을 두 차례나 견뎌냈다는 민주화 운동가 출신 최초의 민선 대통령 나시르. 그가 다시 수감된 절망의 시간을 몰디브 사람들이 함께 견디고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몰디브의 가장 크고 깊은 희망 일른지도 모르겠다. 몰디브 감옥에는 1700명의 양심수들이 독재에 맞서다 수감되어 왔고, 나시르 대통령도 그중 한 사람이었을 뿐인 것이다. 


나시르라는 뗏목을 통해  몰디브 사람들이 건너온 어떤 강물의 깊이를 그를 통해 가늠해 본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문득 그의 직업을 묻자 그는 멋적어하며 답한다.

"보건소 의사예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다시 눈을 감는 일..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한마디를 더 보태며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너무 심각해지지 말고, 몰디브를 잘 즐기세요^^ 

이렇게 리조트 대신 섬을 찾아오는 여행자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도 

우리에겐 새로운 세상을 여행하는 일이니까요. "



마지막 인사  


몰디브를 떠나는 마지막 날, 다시 정부청사 건물로 자무 씨를 찾아갔다.

무슨 일로 다시 왔는지 묻는 그에게 답했다.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다음에 다시 좋은 벗들과 함께 몰디브에 오고 싶다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길 그는 미안한 얼굴로 자신이 처지를 설명해 준다. "베를린에서 만났을 때는 관광부 책임자였는데 갑자기 공항담당 부서로 옮겨져 많이 도울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아니어도 몰디브 곳곳에서 소중한 변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올 때마다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될 거예요. 다음엔 꼭 산호초를 심는 여행을 함께해요."


그가 소개해 준 몰디브 한 엔지오의 프로젝트인 산호초를 심는 여행을 기약하며

공항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몰디브 공항에 앉아 오랜만에 와이파이가 연결되어 페이스 북을 켜자

몰디브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친구 신청 목록에 떠오른다.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확인하다가 싱긋 웃음이 나온다.

일주일 남짓한 여행에서 정부 관료부터 게스트하우스 주인,

마푸지 섬의 특수학급 교사인 알루까지 다양한 친구를 만날 수 있었던 몰디브 여행,

다시 여행을 온다면 친구를 만나러 오는 여행이 되리라.     


바다만큼이나 아름답고 환하게 여행자들을 맞이해 주는

몰디브 사람들과의 만남이 고래상어보다 만타 가오리보다,

더 깊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 몰디브 여행.


돌아온 삶의 자리,

그곳의 사진을 여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켠에 

몰디브 사람들의 맑고 고요한 웃음소리가 물결처럼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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