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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리아 Jun 15. 2022

4화 나 직면하기

나만 바라봐

사람들은 자기소개할 때 자신의 특별한 부분을 어필하고자 노력한다. 물론 소개하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소개할 대상은 ‘나’ 하나인데 듣는 상대에 따라서 ‘나’를 나타내는 표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 번쯤은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보고 싶다. 

사실 어려서는 친구들에게 맞추고, 자라면서는 형제에게, 부모에게 맞추고, 결혼해서는 남편과 아이들, 양쪽 집안에 맞추면서 나의 진짜 모습은 점점 내면 깊은 구석진 곳에 가라앉고 있는 느낌이 든다. 직장에서는 경력과 함께 위치가 달라지면서 정말 ‘나’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진정한 자아’는 마음의 바다 깊숙이 침묵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내가 가지고 태어난 기본 성격과 ‘내면 아이’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있었는데, 마음 어두운 구석진 곳에 어린 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선뜻하겠다고 나서지 못하는 아이.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주변을 먼저 살피는 사람. 

왜 그럴까? 왜 나만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된 배경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3녀 1남의 많은 형제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고, 60명 이상의 다인수 학급의 학창 시절을 12년을 보냈다. 그 안의 조용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톡 튀는 행동이 불가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 보면,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있음에도 12년의 학창 시절 동안 ‘나’를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상당한 제약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정치적인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내가 뭔가 활동을 하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전라도 분이라 그런지 대화하던 중에도, “쉿, 그런 얘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냐.”라고 중지시키셨다. 그래서 우리 집 자체적으로 [정치적 표현]이 박탈당한 상태였던 것 같다. 대학 시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었고, 사회・문화적으로 전성기에 들어가나 싶을 때 IMF를 맞이하면서 그 여파로 주위에도 경제 위기에 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그즈음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기회를 내려놓았던 경험이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언니가 휴학을 하고 있었는데 복학을 결정하면서 부모님에게 이중의 부담을 드린다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언니는 국립대이고 나는 사립대여서 학비 차이가 3배 가까이 되었고, 어린 마음에 유학을 가겠다고 강경하게 나가지 못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렇게 살필 일인가 싶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그런 결정을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자라온 환경, 사회적인 배경, 경제적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만약 주변을 살피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스스로 개척하는 삶, 멋있지만 상당히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나는 그런 사람인 듯 싶다. 주변과 함께 외롭지 않게 어우러지는 사람.

그런데 이런 나에게 이상한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주위를 여전히 살피기는 하는데, 정말 진중하게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면서 숨어있던 재능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재능이 있었는데 묻어두기가 너무 아까워서 일단 실행에 옮기고 있다.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다. 

우선,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랐지만, ‘그림 그려서 돈이나 벌겠니?’라는 부모님 말씀에 예체능 쪽으로는 바로 포기한 것 같다. 그런데, 우연히 3개월 전에 연수원 친구로부터 휴대용 스케치북과 워터 붓을 선물 받았다. 그래서 내친김에 고체 물감을 사서 한 개, 두 개 스케치하다 보니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시간 나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을 그려서 뭘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냥 좋아서 하루를 보내고 스트레스받을 때 마음을 진정시킬 겸 그리고 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테니스. 

역시 우리 부모님은 걱정이 태산이시다. 나이가 있는데 테니스 같은 운동 하면 ‘어깨 나간다, 그만둬라.’라고 하시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 이미 레슨을 받고 있고, 막상 해보니 네트를 사이에 두고 신사답게 공을 주고받는 경기 룰이 마음에 들기도 해서이다. 물론 3달 정도 되면서 운동의 강도가 격해지기는 했지만 배우는 재미가 있고 나의 몸 상태를 알아가는 좋은 운동인 것 같다. 

사실 요즘 새롭게 시작한 것이 그림과 테니스뿐만이 아니다. 필라테스, 보컬, 자전거, 글쓰기 등 너무 많아서 주위에서 ‘적당히 해.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와?’라는 말을 종종 듣고 있다. 음, 뭐 적당히 들으면 괜찮지만 새겨들으면 별로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얘기들을 들으면 주위의 말에 신경을 쓰면서 기분이 상했을 텐데 이제는 내가 해보면서 시간을 관리하고 일주일의 루틴을 생각하면서 하고  있는 것 중에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스스로 생각하면서 정리하는 등,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져서인지 주변 반응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나는 새로운 것에 두려움 없이 일단 도전해 보는 사람이다.

지금껏 이런 본성이 감추어져 있어서 힘들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고,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 그리고 봄에는 꽃놀이를 하고 싶고, 여름에는 땀을 흘리며 산과 바다에서 자연을 즐기고 싶다. 가을에는 울긋불긋 물드는 나무들을 보면서 아침 일찍 향긋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싶고, 겨울에는 미끄러질까 걱정하지 않고 눈 쌓인 길을 단단한 두 다리로 산책하고 싶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지 않고 지금 나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이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주위와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연민은 약점이 아니다. 그건 재능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품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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