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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키너 Mar 25. 2018

감자탕과 맬서스의 인구론

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퇴근 전, 집사람에게 '오늘 메뉴가 뭐야?' 하고 물으니 '당신이 좋아하는 메뉴!'라고만 답을 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들깨 향이 살짝 현관 앞 문밖까지 새어 나옵니다. '오호! 오늘은 감자탕인가 보다!' 생각합니다.

역시 집사람 일등 메뉴인 감자탕이 저녁 메뉴로 나옵니다. 퇴근 후 저녁으로 가장 좋아라 하는 메뉴입니다. 이천 관고시장에서 구입한 향이 풍부한 국산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들깨 향이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역시 감자탕은 중국산 들깻가루보다는 다소 비싸더라도 국산 농작물이 들어가야 맛과 향이 제대로입니다.

김치와 풋고추면 반찬은 충분하고, 반주로 청주까지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얼마 전, 여행 경험이 많은 캐나다인 친구와 밥을 먹으며 타국에 갔을 때 느끼는 감정이 주제가 되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각 나라의 기온과 날씨, 풍경도 있지만 그 나라만의 냄새가 있다고 하더군요.  물어보니, 우리나라에도 처음 들어올 때 한국만의 냄새가 있다고 합니다. 세계 각국의 음식은 다양한 맛과 시각적 이미지도 제공하지만, 경험을 해보려고 접근해야만 얻을 수 있는 정보이고, 음식의 냄새는 공기에 스며들어 그 나라만의 미각적 취향을 누구든 경험하게 하는 듯합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의 시작은 음식의 향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자탕 끓일 때 나는 돼지고기의 달콤함과 들깨의 고소한 향은 '한국인적 식욕'을 끓어 올립니다. 순댓국이나 감자탕 등 소박한 한 끼들에서 스며 나오는 향과 푸짐함은 한국의 소울 푸드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감자탕의 유래는 1899년 경인철도건설 현장부터 유래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으나, 우리나라에 돼지가 본격적으로 사육되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부터 1975년 양돈협회가 설립되고 돼지고기 부산물인 돼지 등뼈가 본격적으로 유통되는 시기에  발전했다고 보는 게 제 시각입니다. 하드웨어의 발전이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이끄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국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아마 순댓국과 함께 감자탕이 가장 많이 언급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울푸드라 함은 진귀하고 값비싼 재료보다는 가축 부산물을 이용하여 만든 그 나라에서 가장 구하기 쉽고, 가격도 저렴하면서 영양가도 풍부한 음식이라고 하겠지요. '맛있고, 양 많고, 가격도 싸고' 고향의 맛과 정서와도 같은 음식,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순댓국과 감자탕이라고 생각됩니다.

세계 각국의 소울푸드라 일컫는 음식들 대부분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역사가 깊지는 않습니다. 일본 작가 우에하라 요시히로는 '차별받은 식탁'에서 소울 푸드는 사회에서 소외된 집단의 음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1970년대, 응암동과 청량리에 감자탕 골목이 들어서고 감자탕은 서울 청량리역으로 상경하는 청년들과 강북의 서민들에게 소울 푸드로 각광받기 시작합니다. 제가 대학생활을 하던 1980년대 후반 서울 올림픽이 외식시장의 발전을 이끌어 피자와 햄버거,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들이 들어왔지만, 학교 앞 감자탕집과 순댓국 집 앞의 소주 한잔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Vincent Van Gogh, The Potato Eaters, 1885

 남미가 원산지인 감자는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고, 식량의 의미보다는 관상용 감자 꽃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중세의 가톨릭 신앙 문화는 식재료까지 하늘과 가까울수록 고귀한 취급이 되어 하늘을 나르는 새들이 가장 고귀한 식재료 취급을 받습니다. 중세 이후 왕족과 귀족들의 식탁에 항상 조류가 오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과일 또한 땅에서 하늘과 가까운 식재료라서 신에 가까운 식재료 취급을 받았고, 땅속에서 자라는 순무, 양파, 마늘 등은 신과 가장 먼 작물로 서민들과 가난한 자들의 식탁에 오릅니다. 유럽의 식탁에서  마늘이 이탈리아 남부와 지중해 남부의 이슬람 문화가 지배했던 유럽의 소외받은 지역에서만 소비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감자 역시 땅속에서 자라는 감자 자체의 구황작의 역할보다는 땅 위에서 피어나는 감자꽃이 신의 선물로 분류되었습니다. 감자는 이런 시대적 배경으로 탄수화물 공급원으로의 역할을 하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그 후  감자는 유럽에서 곡식을 대체할 작물로 급부상하기 시작합니다.


감자가 유럽에 소개될 당시 세계에서는 두 가지의 메인 곡식이 있었습니다.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쌀과 유럽과 이슬람 지역의 밀을 주식으로 하는 두 축이 존재하였습니다. 두 곡식 모두 좋은 땅과 수량,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귀족적인 곡식들이었습니다. 수확 후에도 탈곡과 도정, 제분이라는 노동 집약형 고난도 기술이 도입되어야만 곡식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자는 땅이 척박하고, 농지가 아닌 곳에서도 잘 자라고, 일조량과 물이 부족해도 잘 자라며, 이른 봄에 심어서 초여름에 거둘 수 있을 정도로 재배 기간도 짧습니다.

수확 후  찌거나 굽기만 하면 인간에게 최고의 탄수화물 공급원의 역할을 해 줍니다. 거기에다가 보드카와 소주 등 술까지 만들 수 있는 장점도 포함됩니다.



Irish Immigration to America

 유럽에 감자가 보급된 후 북유럽과 아일랜드 등 그 당시의 유럽의 변방 국가 들에선 감자가 주식으로 활용되기 시작하고, 감자의 보급과 함께 1680~1690년 감자의 풍년으로 유럽의 인구도 가파르게 증가합니다. 새로운 식량원의 도입이 인구의 증가와 기술과 학문의 발전을 이끌고 바야흐로 유럽은  산업혁명의 시기로 들어섭니다. 이 즈음 우리가 잘 아는 '맬서스의 인구론'도 출현합니다. 과잉인구는 빈곤과 악덕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맬서스의 이론에 근거해 시행된 산아제한 정책은 빈민구제 법을 중단시키게 되고, 1840년대 감자 마름병으로 인한 유명한 아일랜드 대기근에도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방임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며, 수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미국 이민 행렬이 이어져 북미지역의 역사가 발전하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감자의 출현과 맬서스의 인구론 같은 새로운 학문은 나비효과처럼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따르면 감자는 1824년이 조선 순조 때 우리나라에 들여왔다고 전해 집니다. 감자를 보통 구황작물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救구할 구, 荒흉년 황'으로 흉년을 구하는 작물입니다. 소설 김동인의 감자가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걸 보면 도입 후 백 년 동안 감자가 우리나라에도 급속도로 보급된 듯합니다. 쌀을 세금으로 하던 조선시대의 특성상 감자는 세금을 피하는 좋은 구실이었고, 풍부한 탄수화물은 구황작물의 역할을 해주어 특히 강원도 지역에서는 최고의 인기 작물로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합니다. 구한말 일제의 수탈과 한국전쟁 등으로 힘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감자는 구황작물로, 전쟁 중 논농사를 짓지 못한 쌀의 대체품으로 민중들의 허기를 달랩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감자는 점질 감자라고 하여 분질 감자종보다 수분이 많고, 잘 부서지지 않아 쪄먹거나 삶아먹기 좋은 감자 품종입니다. 감자탕에도 들어가고 감잣국을 끓여 먹기도 좋습니다. 대표적으로 요즘 광고로 유명한 수미감자가 있습니다. 반면 분질 감자는 수분이 적고 전분이 많아서 조리하였을 때 보슬보슬하고, 잘 부서지는 특성이 있어 감자튀김이나 구이등에 적합합니다.  '식물과 대화하며 사랑하는 원예육종가'로 유명한 루서 버뱅크(Luther Burbank)가 개발한 러셋 버뱅크 감자가 대표적입니다.

 


수미 감자가 들어간 감자탕과 함께 하는 저녁의 반주가 하루의 피로를 풀어 줍니다. 대학 시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하던 그 시절의 추억도 짙게 떠오릅니다.


다음주에는 친구에게 전화 걸어 뜨끈한 감자탕에 소주 한잔 청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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