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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키너 Mar 18. 2018

햄버거, 자본주의 맛 맥도널드  

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스트리밍 서비스 차트에 버스커버스커의 봄캐럴  '벚꽃 엔딩'이 다시 등장하는 화사한 봄날입니다.

학교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3월이 되어야 신년 같은 느낌입니다. 3월의 학교는 모든 것이 다시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개강과 함께 새내기들의 입학식이 시작되면서 학교는 바쁜 날들이 계속됩니다.  신입생 OT와 MT, 재학생들의 휴학과 군입대, 복학생들과의 조우 등 신학기에는 학생들도 정신없지만 교직원들도 많이 바쁩니다.


늦은 퇴근, 집사람도 개강 즈음이 바쁜 직업이라 저녁은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습니다.


햄버거의 '문화'를 처음 맛 본 순간을 기억합니다.

1980년대 청소년 시절, 교회 예배를 마치고 처음 맛본 바닐라 셰이크는 천국의 맛이었고  쇠고기 패티와 치즈가 들어간 큼지막한 버거와 콜라는 달콤한 자본주의의 맛이었음을 기억합니다. 맛도 맛이었지만, 젊음과 20대의 에너지가 넘치는 매장 안의 분위기도 무척이나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 현대자동차의 소나타를 타고 맥도널드에서 가족이 외식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중산층의 대표적인 풍경이었습니다.

맥도널드는 1988년 서울 올림픽과 함께  1호 매장이 들어왔지만 우리나라의 햄버거의 역사는 한국전쟁과 함께 미 문화가 유입되면서 한국에 같이 상륙합니다. 코카콜라와 크리스마스, 풍요로움으로 상징되는 미국식 서구문화는 대한민국의 모든 문화적 패러다임을 변화시킵니다.      


The assembly line at the original McDonald's in San Bernardino, California

 햄버거의 역사는 맥도널드의 역사입니다. 맥도널드는 햄버거의 대명사이기도 하고 외식 프랜차이즈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맥도널드 이전의 햄버거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식(美食)의 변방 미국에서 간 고기를 구워 빵에 쌓아먹는 수많은 샌드위치의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생산과정을 최소 단위로 분해하여 각 동작의 형태, 순서, 소요시간 등을 표준화하는 테일러리즘의 ‘시간 동작연구’의 개념이 출현합니다. 또한, 조립라인 연속공정 기술을 이용한 표준화된 제품의 대량 생산체제인 포디즘의 '분업화'도 출현합니다.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이 외식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1948년에 딕 맥도널드와  모리스  맥도널드 형제는 햄버거의 대량 생산을 위해 빠른 서비스 시스템과 공장식 햄버거 제조 방법, 셀프서비스 방식 등을 고안해 내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에서 햄버거 매장을 오픈합니다.


맥도널드 형제는 햄버거를 '요리'하는 주방이 아닌 '조립'하는 주방으로 변형시킵니다.


이것이 맥도널드의 시작입니다.

영화 모던타임즈가 맥도널드 성공 이후에 만들어졌다면 맥도널드 주방에서 연기하는 찰리 채플린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초창기 맥도널드의 황금 아치

 1950년대 중반 밀크셰이크 기계 외판원이었던 레이 크록이 맥도널드를 방문하고 이 시스템의 프랜차이즈화를 제안합니다.     

일명 'turn-key system' (일괄수주계약 : 맥도널드 매장을 표준화하여 교육된 매니저가 Key가 되어 열쇠만 돌리면 매장을 가동할 수 있는 상태로 인도하는, 자동차의 개념으로 설계하고 판매하는 시스템)를 도입하고 지점을 미국 전역에 확산시켜 맥도널드의 파운더(설립자)가 됩니다.  


레이 크록은 맥도널드를  '햄버거를 파는 매장'이 아닌 '맥도널드 지점을 파는 부동산업'의 주식회사로 탈바꿈시킵니다.


이후, 레이 크록은 자동차를 팔듯이 맥도널드 매장을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햄버거를 팔아서 남기는 이익보다 프랜차이즈로 성장하는 부동산과 기업의 가치가 높아지고, 동시에 맥도널드 본사의 주식 가치까지 동반 상승하게 됩니다.

맥도널드가 창업한 그해, 1956년 미국의 '연방지원 고속도로 법'이 제정되고, 6600km의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고속도로 근교 상업지구와 주택 건설붐이 일어납니다.

레이 크록은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며 미국의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마다 맥도널드 매장을 오픈하였습니다.

새로운 인터체인지가 생기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고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도 신도시에는 새로운 교회가 들어섭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면서 만남의 장소도 요구되었습니다. 신도시가 세워지면 교회와 맥도널드는 자연스럽게 한 세트로 세팅이 되었습니다.

매장 근처의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와,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는 모임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그 시절 맥도널드의 황금 아치는 ‘천국의 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맥도널드는 새로운 프랜차이즈들을 만들어내는 레이 크록 '유겐트'(독일 나치 소년단: 독점과 독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브랜드들을 탄생시킵니다. 현재 우리가 아는 KFC, 피자헛, 크리스피 크림 도넛 등 모든 외식 프랜차이즈들은 맥도널드식 기법을 모방합니다. 식문화의 변방이자 외식문화의 후발주자였던 미국을 단번에 세계 최고의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출국으로 변모시킵니다.


조지 리처의 ‘맥도널드 그리고 맥도널드화’에서 언급되는 맥도널드식 프랜차이즈화의 4대 요소인 효율성과 계산 가능성, 예측가능성 그리고 통제는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도 수입이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맥도널드식 프랜차이즈는 외식시장의 표본으로 BBQ를 비롯하여 파리 바게트까지... 레이 크록은 우리나라의 모든 외식 프랜차이즈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1961년 미국에서 맥도널드 햄버거 대학을 만들어 매니저를 생산하듯, 한국에도 BBQ 치킨대학이 설립되어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초기 매장 운영과 생산시스템 등을 교육받습니다.

맥도널드의 설립자 레이 크록(1902 - 1984)

 정크 푸드의 대명사로 지탄받는 식품 햄버거를  세상에 출현시킨 맥도널드는 세계 비만의 적이 됩니다. 당연히 맥도널드 창립자인 레이 크록은 찬사보다는 비평을 더 많이 받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그가 만든 새로운 디지털 생태계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고 죽었지만, 레이 크록은 그가 만든 맥도널드가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르고 죽은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계 비호감 기업 순위에서 항상 최상위권 그룹을 차지하는 ‘맥도널드’를 만든 레이 크록 회장.

업적에 비하여 인기가 참 없는 그이지만 따뜻하고 맛있는 버거를 전 세계 어디에서도 ‘늘 똑같은 맛’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준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자체로 그가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세상에 많은 햄버거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맥도널드, 버거킹, 롯데리아, 모스버거, 작년 강남에 상륙하여 아직도 줄을 선다는 셰이크셱, 우리나라 토종 브랜드 맘스터치까지 우리가 익히 들어봄직한 브랜드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빅맥지수까지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외식메뉴입니다.

사실 감자튀김과 콜라와 밀크셰이크 등을  제외한 쇠고기 패티, 곡물빵, 신선한 채소로 순수하게 만든 수제 햄버거는 최고의 영양과 밸런스를 가진 식품입니다. 건강하고 맛있는 수제 햄버거 집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건강한 햄버거를 만드는 수제버거집 하나 생기길 바라봅니다.

 


햄버거를 먹고 난 후, 따뜻한 커피와 혀가 델듯한 뜨거운 애플파이도 잊을 수 없는 향수이기도 합니다.

저는 맥도널드를 참 좋아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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