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구정 때 완도가 고향인 선배로부터 파래가 섞인 돌김 한톳(한톳은 100장입니다)을 선물 받습니다.
고향이 충남 광천이라 부드러운 '광천김' 마니아이긴 하지만 가끔 남해에서 생산되는 이런 거친 느낌의 돌김도 좋아합니다. 돌김은 바삭하게 구워 떡국 고명에도 좋고, 김부각으로 바삭하게 튀겨 먹기도 좋고, 여름에 김이 눅눅해지는 시기에는 들기름 살짝 뿌려 무쳐 먹기도 좋습니다.
파래가 20% 이상 섞인 파래 돌김이라 하니 부드러워 보여 구운 김으로 먹어보자 합니다.
참기름으로 오일 샤워하고, 맛소금 곱게 먹고 있는 굽기를 기다립니다.
굽기 전 검은색 김이, 굽고 나면 초록이 풍성한 먹기 좋은 색으로 변합니다. 고소하게 구워진 김향과 참기름 냄새가 집안에 가득 찹니다. 환기를 해야 하지만 이대로 김 굽는 향을 음미하고 싶습니다.
들기름 바른 김을 선호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역시 구운 김은 참기름이 제맛입니다. 사실 저는 돌김보다는 서해안에서 생산되는 재래김을 선호합니다. 파래가 섞인 방사무늬 김의 부드러움은 돌김이 따라갈 수 없는 구운 김의 최고봉의 식감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광천김을 최고로 치고, 아직도 구운 김의 대명사로 '광천김'을 치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의 김의 역사는 문헌에는 고려시대부터로 알려지고, 김의 양식이 보급되고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400년 전부터 입니다.
김 양식은 지주식(바다에 지주를 박아서 대나무 발을 매달아 김을 양식하는 방법)과 부유식(바다에 대발과 그물을 띄워 양식하는 방법)의 방법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공기와의 접촉이 많은 지주식을 최고로 치지만 요즘은 대량생산에 유리한 부유식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늦가을에 대발과 그물에 김포자를 이식하여 겨울철과 이른 봄까지 양식하고 채취합니다.
김의 양대 산맥인 서해안의 광천김과 남해안의 완도 김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김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광천김이 예부터 맛이 좋아 임금님 진상품이 되어 명성이 자자해지고 김의 대명사가 됩니다. 서해안에서 나는 지주식 김들이 품질도 좋고 맛도 좋지만 부유식 김의 생산량에 못 미칩니다.
우리나라 김양식의 대부분은 남해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요즈음은 해남지역에서 해풍돌 1, 2호라는 생산성이 월등한 김 품종이 개발되어 중국과 일본에도 우리나라 김을 많이 수출하고 있습니다. 완도 김이 남해안 김의 대명사이긴 하지만, 해남지역에서 우리나라 김 생산량의 대부분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맛있는 김이지만 아직 외국인들에는 어색한 음식인 듯합니다. 영국의 웨일스 해안 지방에 김을 따서 오트밀에 넣어 먹거나, 김 빵도 만들어 먹는다고는 전해지지만 위도상으로 북유럽에 속하는 가난한 해안가 마을의 '초근목피' 수준의 소비였을 뿐입니다. 김을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과 베트남 정도입니다. 지금은 김밥을 전 세계인들이 먹는 세상이지만, 세계 제2차 대전 직후, 전범 재판에 증거자료로 나온 김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에서 필리핀과 남태평양에서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힌 미군들에게 배식이 된 김은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영양 많고 맛있는 김이었지만, 미군들에게는 먹을 수 없는 그냥 '검은 종이'였습니다. 일본군이 포로수용소에서 미군들에게 한 잔혹행위의 증거자료로 제출할 정도이니 서양인들에게 해조류를 먹는 행위가 얼마나 이상했는지를 설명해주는 장면입니다.
잘 구워진 김과 고등어구이, 시원한 묵은지 이른바 우리 집 밥도둑 삼총사 총출동합니다.
아침 밥상으로 '이만하면 진수성찬이다!' 하며 달려듭니다.
갓 구운 김에 묵은지 한쪽, 고등어구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조합을 너무 사랑합니다.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세계 음식 재료_1001'가지에서 나오는 김에 대한 해석입니다.
김은 특별한 풍미가 없고, 다만 희미한 바다의 맛이 느껴진다. 바삭바삭하고 짭짤하며, 간장에 곁들여 먹으면 완벽하다. 놀랍게도 치즈와 함께 먹어도 의외로 멋진 궁합을 보여준다.
지극히 서양인의 시각에서 본 '오리엔탈리즘'적 사고이지만 마지막 부분 김과 치즈와의 궁합 부분은 저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음식과 술의 마리아주 만화인 '와카코와 술'에도 언급됩니다.
가끔 새로운 안주가 생각날 때 '구운 김과 치즈'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