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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키너 Apr 08. 2018

치맥과 진화론의 상관관계

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퇴근길, 동네 어귀에 새로운 치킨집이 생겨 '언제 한번 들러야지!' 생각합니다.

저녁은 치킨에 맥주를 한잔 하고 싶어 져 집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저녁으로 프라이드치킨 어떨까?'하고 물어보니 자기도 맥주를 한잔 하고 싶답니다. 치맥으로 저녁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마리 들고 집으로 향합니다.


프라이드치킨과 맥주 두 캔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옛날 아버지가 월급을 타시던 날이면  기름이 배인 노란 봉투에 튀김닭을 들고 오시던 추억이 떠올라서입니다. 어릴 적 동네 중국집에서 탕수육 반죽을 묻혀서 튀긴 튀김닭은 저의 '첫 프라이드치킨의 추억'입니다. 아버지의 월급날은 친구 아버님이 하시는 중국집에서 튀겨주는 닭 한 마리를 늘 사 가지고 오셨습니다. 은행 급여 이체를 하던 시절이 아닌, 말 그대로 만 원짜리가 가득 들어 있던(제 기억에는 그렇습니다) 월급봉투와 함께 아버지의 월급날은 식구들이 튀김 닭을 먹는 날이었습니다.  봉투 안에 들어있는 따뜻한 튀김닭으로 저녁을 한 기억은 제 유년시절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가족에 대한 추억입니다. 튀김닭 냄새가 넓지 않은 안방을 가득 채우고, 어머니는 제게 용돈을 주시고, 저녁상으로 아버지가 소주를 한잔 하시며 웃으시는 모습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공간으로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early of Kentuckey fried chicken

프라이드치킨의 역사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미국 남부 흑인의 역사와 함께 합니다. 초기 미국 남부 백인 농장주들이 안 먹는 부위인 닭목과 닭날개를 노예 생활을 하던  흑인들이 튀겨먹기 시작합니다. 패니 플랙의 동명소설로 유명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라는 미국 남부의 유명한 메뉴는 땅에 떨어진 설익은 토마토까지 튀겨먹던 흑인 노예들의 고된 역사를 가늠케 합니다.

1800년대의 미국은 돼지고기가 소고기의 인기보다 우위에 있던 시절이 돼지고기 지방(라드)은 풍부한 시절이었습니다. 북아프리카의 대표적인 튀기는 조리법과  양돈 부산물인 풍부한 돼지 지방, 더운 미 남부지역 기후라는 세 가지 조건은 미국 남부의 대표적인 음식을 만들어 냅니다.  냉장시설이 없던 1800년대 미국 남부의 더운 날씨에도 오랜 보관이 가능했던 프라이드치킨은 미국 남부가 선호하는 메뉴로 전환됩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이 먹는 음식으로 인식돼 미국 전역에서 천시를 받았지만, 프랜차이즈 산업의 유행과 함께 KFC 할아버지 '할랜드 샌더스'가 '캔터키 프라이드치킨'을 창업하면서 '프라이드치킨'은 남부의 대표 음식의 지위까지 오릅니다.

지금은 KFC가 속한  얌브랜드(Yam! Brands, Inc.)는 맥도널드 다음으로 프랜차이즈 외식업계의 큰손입니다.



1960년대 명동 영양센터와 우리나라의 프라이드 최초 치킨 프랜차이즈인  림스치킨


 우리나의 프라이드치킨의 역사는 한국전쟁 때 미군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1960년대 미군부대에서부터 양식요리를 배워오셨던 호텔 1세대 선배님들이 말씀하시는 우리나라 요리 현대사를 술자리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미군부대에서 스크램블을 처음 배우던 이야기부터 프라이드치킨을 탕수육인 줄 알고 튀기던 이야기까지 안주보다 더 맛있는 과장님들의 입담이 기억이 납니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의 가축수는 전시의 물자 보급원으로 빠르게 소모되고,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었지만, 이후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사업의 시작으로 낙농 양계 분야도 정부의 지원 아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특히, 닭은 소나 돼지에 비해  생육도 빠르고 달걀 생산도 가능한 이점으로 국민들의 단백질 보급원으로 급성장합니다. 1960년대부터 가정에서는 닭백숙이 자주 식탁에 등장하고, 전기구이 통닭 등의 유행과 함께 외식업의 가장 중요한 식재료로 발전합니다. 이어 1970년대 초반 오뚜기와 해표 같은 식품회사들의 쇼트닝(튀김용 경화유)과 식용유 출시로 드디어 튀김닭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양계업의 발전, 튀김 기술의 생산과 미공법 480조(Public Law 480, 해외원조를 가능하게 한 미국 헌법)로 인한 저렴한 가격으로 원조받은 풍부한 밀가루'


이러한 여러 배경들은 대한민국의 프라이드치킨의 시작에 바탕이 됩니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재래시장에서도 닭튀김이 팔리기 시작하다가  1977년 림스 치킨이 신세계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에 우리나라 최초의 프라이드치킨 프랜차이즈를 개업합니다. 이후 양념치킨을 처음 도입한 페리카나치킨 멕시카나 치킨 등이 1980년대 초반 프라이드치킨 산업의 유행을 선도합니다. 이후로는 전국 어느 동네에서도 프랜차이즈 치킨집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1984년 맥도널드보다 먼저 KFC가 종로에 첫 매장을 오픈하면서 프라이드치킨의 전성시대를 예고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맥주와 치킨은 아직 환상의 궁합이 아니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맥주는 비싼 주류였기 때문입니다. 치킨과 소주의 소비가 좀 더 대중적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발췌


치맥의 등장은 2002년 한국 월드컵과 함께 합니다. 월드컵 4강 진출은 대한민국을 축제의 장소로 만들어 버렸고, 축제에는 술과 음식이 필요한 법 '치맥'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문화의 상징으로 컬트의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2000년대 1인당 국민소득도 1만 5천 불을 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맥주는 대중주로의 지위를 획득합니다.

이때부터 '치맥'이라는 신조어가 각종 포털 사전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이후 치맥은 하절기 직장인들의 퇴근 후 음주문화로 발전하며 한국의 치맥 문화를 형성해 나갑니다.



2016년도 한해 한국인의 1인당 평균 닭고기 소비량은 14kg로 1인당 10마리 이상을 소비합니다. 2000년대 초반 국민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이 7kg 인 것을 보면 두배 이상 상승한 수치입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정도이니 년 평균 5억 마리 이상의 닭이 소비됩니다. 2016년에 전 세계에서 닭이 600억 마리가 도축된 걸 보면 각국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닭이 사육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인구가 많아질수록 닭과 가축의 사육은 늘어납니다. 지구 상에 살아가는 생물 중  현존 인류는 70억 명,  소 15억 마리, 돼지 10억 마리, 닭 160억 마리로 가장 많은 개체수는 닭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말인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다.'라는 말처럼 닭은 지구 상 가장 많이 살아남은 종이지만, 살아남는 것보다 어떻게 의미있게 살아남는가가 더 중요한 듯합니다.


치맥과 함께하는 저녁에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걱정이지만, 맥주 한 모금 마시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소비당하는 가금류가 아닌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처럼 살고 싶습니다.

곧 6월이 되면 치맥의 축제장이 될 2018 러시아 월드컵도 시작됩니다. 좋아하는 이들과 모여 치맥을 하는 시간이 기다려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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