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로부터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영웅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제우스의 명을 받아 인간을 창조하기도 합니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을 창조하며, 그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는 동물들에게 날개와 발톱 등 살아가기에 필요한 능력들을 하나씩 선물해 주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리저리 막 나누어 주다 보니 나중에 인간에게는 줄 선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가엽게 여긴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영역인 불을 인간에게 훔쳐다 주고, 막상 본인은 제우스의 신조인 독수리로부터 영원히 재생하는 간을 뜯어 먹히는 벌을 받습니다.
신화에서 처럼 불은 인간에게 만물의 영장의 권력을 가져다주는 신성한 것이 됩니다. 지구 상에 오직 인간만이 불을 다스리고, 불로부터 철을 생산하고, 불로 요리를 해 먹는 것이지요.
그 오래된 불의 기원에 비해 대중화된 삼겹살 구이의 역사는 매우 짧습니다.
아주 옛날부터 먹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삼겹살의 역사는 불과 1980년대 초반부터 입니다.
삼겹살이 우리나라의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우리 주거 환경과 식생활에 시대적 격변을 경험합니다. 예로, 온돌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의 부엌은 고기를 구워 먹기에는 부적합한 주방구조입니다. 가마솥 문화는 구이 문화보다는 고기를 삶아 먹거나, 국을 끓여 여러 식구들이 나누어 먹는 문화에 적합합니다. 유럽의 벽난로 문화가 빵을 구워 먹고, 로스팅 문화를 발전해 오듯이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소고기를 선호하고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한데, 특히 한의학에서는 돼지고기가 좋지 않은 고기라 인식됩니다. 제가 어릴 적 한약을 지어먹을 때 한약을 복용하는 동안에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을 정도니 말입니다.
고려시대 불교의 영향으로 일본과 비슷하게 우리나라도 육식을 금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 불교문화가 축소되고, 유교문화가 번성함으로써 육식을 금하는 문화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돼지고기는 소고기를 선호하던 우리 조상님들의 식성 때문에 인기 있는 메뉴가 되지 못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풀을 먹고 반추를 하여 소화시키는 소와 달리, 돼지는 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 4kg의 곡물사료를 필요로 하니, 사람 입으로 들어갈 곡물을 찾기에도 버겁던 시대에 돼지는 키우기에 인기 없는 가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토종 돼지인 '지례돈'은 몸집이 작고 살도 많지 않아 성장 후 도축을 해도 수율이 좋지 않아
먹을거리를 위한 가축으로 기르기에는 부적합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고, 멧돼지 또한 다 일군 밭을 망쳐놓고 어두운 산길에서 백성들을 공격하는 등, 인간에게는 고약한 동물로 인식될 뿐이었습니다.
조선시대 태종실록의 기록에 보면 “명나라 황제가 조선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조선 사신에게 쇠고기와 양고기를 공급하라고 했다.”는 기록이 조선시대 돼지고기의 인기를 바로미터 해줍니다.
하지만 중세로부터 게르만족과 지중해 연안 유럽은 돼지고기가 인기 있었는데, 특히 이베리아 반도 지역의 스페인은 돼지를 방목하여 키웠고, 특히 지중해의 기후 속에 인간이 먹지 않는 도토리와 방목지 땅속 작물들을 먹고 자란 '이베리코 돼지'는 인기 있는 먹거리였습니다. 앞, 뒷다리는 하몽을 만들고 안심과 등심은 햄을 제조하고, 삼겹살은 훈연하여 베이컨을 만들고 내장과 남은고기로는 소시지를 만들어 민중의 배고픔을 달래 주었습니다.
근대에 액상과당으로 불리는 High Fructose CornSyrup(HFCS)의 생산과 동물 사료를 위한 옥수수의 재배는 돼지를 세계의 식탁에 등장시킵니다. 옥수수는 실상 인간의 식재료이기보다 앞서, 콜라와 음료수의 단맛을 내는 액상과당과 가축 사료의 주원료로서 소비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를 타고 달려도 끝이 없는 미국 중남부의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은 전 세계인의 풍요로운 식탁에 오르는 소와 돼지의 사료원으로 '포크(Pork)'는 식품산업의 중심에 오릅니다. 이후 돼지고기는 돈육으로 뿐만 아니라 다양한 햄과 소시지, 베이컨 등 돼지고기 가공품은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식품군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 역시 옥수수 사료가 수입되고, 양돈협회가 생길 정도로 육류 유통시장에서 돼지고기의 유통이 활발해지고 일반 가정에까지 보급되는 식재료가 됩니다.
외화벌이와 수출이라면 부녀자들의 머리까지 잘라 가발을 만들어 팔던 그 시절, 돈가스를 좋아하는 일본에 돼지 등심과 안심을 수출하고, 소갈비의 대체재로 양념된 돼지갈빗집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앞다리와 뒷다리는 돼지불고기와 김치찌게용로 팔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육류 부산물이 풍부해지자, 감자탕과 순댓국집도 생기기 시작합니다.
70년대 후반 도시화가 시작되기 시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서울은 점점 과밀화된 도시로 발전합니다.
아파트와 빌라도 없던 그 시절 서울에 상경하여 일반 주택에서 처음에는 셋방살이를 하는, 방하나에 한 가정을 이루는 핵가족 시대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셋방살이를 하더라도 꼭 하나쯤은 있어야 했던 라이스 박스(쌀통)와 석유곤로는 그 시절의 풍경을 엿보게 해줍니다. 작은 방에 석유곤로를 놓고 삼겹살을 구워 먹기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어서, 마당 한편이나 작은 부엌에서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밥상에 먹는 것이 더 어울리는 힘들고 고단했던 그 시절 정겨운 풍경이었습니다.
1980년대 삼겹살은 일약 우리나라의 식탁에 중심에 서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은 도시문화 즉, 아파트와 빌라로 대변되는 도시생활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주방기구 하드웨어의 혁명인 가스레인지와 전기밥솥이 우리 생활로 들어오고, 휴대용 가스버너인 한국 후지카의 부루스타와 우리나라 토종 브랜드인 라니 선 버너 등 가 등장합니다. 가정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 시작하는 '로스구이' 유행이 번지기 시작하면서 오리고기도 유행했지만 삼겹살이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가정에서부터 캠핑까지 휴대용 가스레인지는 삼겹살을 전 국민의 가장 인기 있는 메뉴로 등극하게 하는 주방 하드웨어의 혁명을 이끌게 됩니다.
외식업의 측면에서도 가스렌이지가 없던 시절, 연탄불이나 숯불에 삼겹살을 직화로 식당에서 구워 먹기는 쉽지 않은 메뉴였습니다. 장사가 잘 안 되는 식당에서도 부루스타와 불판만 들여놓으면 삼겹살을 팔 수 있게 되니 많은 식당들에서도 주메뉴 이외에 삼겹살 구이도 팔아 틈새시장을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외식업계에 휴대용 가스버너가 보급되고 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먹는 직장인들의 회식문화의 단골 메뉴가 되면서 삼겹살은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메뉴가 됩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삼겹살이 치맥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문화의 아이콘으로 올라섭니다.
저녁상으로 준비한 삼겹살 구이와 로메인레터스 샐러드와 오이무침, 묵은지를 보고 있으니 참 축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지난번 화로구이집에서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마신 요즘 젊은이들이 즐긴다는 '하이볼' 칵테일이 기억 납니다. 요즘처럼 과음하는 문화가 아닌 가볍게 한잔 하고 싶을 때, 퇴근 후 저녁밥상과 함께 마시는 하이볼 한잔이 참 좋습니다. 삼겹살에 소주도 좋지만 '얼음 가득 넣은 유리잔에 레몬 한쪽, 소주 한잔과 토닉 워터를 가득 부어주면 완성'되는 하이볼을 삼겹살과 함께 추천드립니다. 왠지 맥주 한잔에 삼겹살을 먹기에는 치킨이 더 생각나는 요즘이라 '소주로 만든 하이볼'을 더 자주 마실 듯합니다.
PS : 잘 익은 아보카도를 삼겹살과 함께 쌈에 싸서 먹는 것도 삼겹살을 색다르게 즐기는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맛은 보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