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일요일 아침입니다.
늦잠 자고 느긋하게 일어나 천천히 아침상을 준비하는 일상은 일주일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입니다.
아침메뉴는 한우 불고기와 명란젓으로 생일상만큼 풍성하게 차려봅니다. 종교도 없고, 아이도 없는 우리 부부에게 이 시간은 오롯이 둘만의 시간이 됩니다.
일요일 아침 장수 프로그램인 MBC '서프라이즈'를 보면서 느긋하게 밥 먹는 일요일 아침 식탁은 우리 집의 '소확행'의 순간입니다.
불고기는 누구나 좋아하는 집밥의 인기 메뉴가 아닐까 합니다. 돼지불고기, 닭불고기, 염소 불고기까지 다양한 가축의 고기와 간장과 고추장, 소금으로 간을 하는 방법등 다양한 레시피의 불고기가 존재합니다.
'불고기를 석쇠(언양식 불고기)에 조리하는가?' 혹은 '전골팬(서울식 불고기)에 조리하는가?'에 대한 굽는 팬과 기구의 차이와 국물의 양의 정도, 당도에 대한 기호도가 약간씩 다를 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불고기를 좋아합니다. 조리방식이 어떻든 간에 국물의 양에 관계없이 좋아하는 밥도둑 메뉴 중 하나입니다.
음식에 대한 첫 경험을 기억하기 좋아하는 제가 맛본 최초의 불고기는 '불고기 육회'(?)였습니다.
홍성 우시장에 장날이 서면 아버지가 불고기용 쇠고기를 사 오시고, 어머니가 불고기 양념을 하는데, 곁에서 지켜보던 외삼촌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육회로도 맛있겠다!"
아버지도 한마디 거드십니다.
"바로 잡아왔지, 고기가 좋아!"
소주 한 병이 나오고, 바로 불고기가 아닌 불고기 양념 육회 파티가 시작됩니다.
어릴 적 옆에 있던 저도 불고기 육회를 맛봅니다. 불고기라는 메뉴가 유년시절 기억에 처음 기억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녁에 먹은 달짝지근한 불고기에 밥을 비벼먹는 맛도 좋았었지만, 해 질 녘 오후 아버지와 외삼촌이 함께한 그 시간이 더 기억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소고기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귀한 고기로 명절과 생일날에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아 불고기는 귀한 음식 중의 하나였습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불교의 영향으로 고기를 선호하지 않았지만, 고구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맥적'이라는 불고기의 원류도 찾을 수 있다고 최남선 선생이 '고사통(故事通)'에서 이야기합니다.
철기문화 주방기구의 고급 기술인 석쇠가 등장하기 이전이라, 맥적은 유목민들의 음식문화를 대변하는 꼬치구이 형식의 요리였고, 오늘날의 불고기와는 차이가 많았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문화에서 유래된 러시아 음식인 '샤슬릭'과 더 닮아 있다고 보면 됩니다. 아직도 이처럼 꼬치구이 형태의 산적이 명절의 우리상에도 오르기도 합니다.
'맥적'은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를 거쳐 근 1000년의 시간을 잠들어 있다가 조선시대에 '설야멱'이라는 이름으로 환생합니다. '설야멱'은 다시 '너비아니'라는 왕실음식으로 변천하여 오늘날의 불고기로 이어 지게 됩니다. 조선 후기까지의 기록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고기를 구울 때는 '산적(散炙)'형태로 대나무 꼬챙이에 재료들을 끼워 넣어 구이 형태로 구워졌습니다.
요즘에는 육가공 기계로 쇠고기를 얼마든지 얇게 썰 수 있지만, 조선시대애는 칼로 쇠고기를 최대한 얇게 썰어 칼등으로 다지는 너비아니 형태의 불고기가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요즘처럼 얇게 썰린 불고기는 조선시대에는 기술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소고기 덩어리를 일반 식도로 균등하게 5mm이하로 슬라이스하는 일은 힘든 작업입니다.
소고기 덩어리를 살짝 얼려서 썰면 되지만, 겨울철이 아닌 계절에는 요즘과 같은 얇은 불고기감을 찾을수 없었습니다.
김홍도의 풍속화에 나오는 '설후야연(雪後野宴)'은 얇게 썬 고기를 구워 먹는일은 당시 고기를 즐길 수 있는 최고급 조리기술이며, 양반가에서만 할 수 있는 최고의 호사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1970년대 축산업의 산업화와 대관령에 대규모 목장의 등장과 함께 한우는 고급육의 대중적 지위를 획득하고, 불고기는 명절과 축일에 먹는 귀한 음식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메인 메뉴로 등극합니다.
대한민국은 후진국 육류 유통에서 벗어나 냉장 화물차가 등장하고, 냉장냉동상태로 유통하는 시대가 도래합니다. 육가공 기계의 발전과 수입은 '너비아니' 풍의 두툼하게 양념이 된 불고기 스타일과 소고기를 썰어서 다져 만든 산적 스타일의 불고기를 종이장처럼 얇은 서울식 불고기로 유행을 바꿉니다. 서울 불고기 식당으로 유명한 한일관은 개점 초기 두툼한 너비아니 스타일을 판매하였으나 나중에 얇은 쇠고기 무침에 국물이 많은 스타일로 바뀌게 됩니다. 새로운 육가공 기계의 도입이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냅니다.
또한, '칭기즈칸'으로 불리는 일본 홋카이도 지역의 무쇠 불판이 대체된 양은 불고기 전골팬은 불고기 식당의 문화를 바꿉니다. 미트 슬라이서 보급과 함께 얇고 부드러운 불고기감의 보급, 새로운 불고기 전골판의 만남이 서울불고기를 대한민국의 불고기 대표 지위에 올립니다.
돼지불고기 또한 각 정육점마다 '미트 슬라이서(Meat Slicer)'가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얇게 썰린 저렴한 가격의 돼지 앞다리살과 뒷다리살은 우리나라 서민들의 식탁과 도시락 반찬을 책임지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 수입 소고기가 들어오고 일반 가정과 외식메뉴에도 불고기는 일상화되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미슐랭 가이드에도 오르는 고급 식당이 되었지만, 역전회관과 우래옥도 이때부터 대형화되고 미디어에 회자되면서 서울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국구 유명식당으로 거듭납니다. 맛있는 기사식당에 꼭 들어가는 불고기 비빔밥도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인기 있는 메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00년대 2인분 이상만 판매가 가능하던 불고기에 1인 메뉴인 뚝배기 불고기가 등장하면서, 이제는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메뉴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불고기버거, 불고기 피자, 불고기 김밥까지 불고기는 일상화를 지나쳐 넘쳐나는 메뉴가 되었습니다. TVN 예능프로그램에서 트러플 오일을 뿌린 세계화된 입맛의 ‘윤식당’ 불고기를 팔기도 합니다.
불고기는 비빔밥과 함께 한식 세계화의 첨병이며,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 메뉴로도 대표됩니다. 이런 간판 메뉴인 불고기는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수출되는 우리의 '문화'품목이기도 합니다.
일본을 이해하고자 할 때 이야기되는 '이이도 코토리(良いとこ取り, 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음식을 이야기할 때 초밥과 사시미 같은 일본 고유의 음식도 있지만, 사실 일본인들이 초밥보다 더 많이 먹는다는 돈카츠와 카레 등이 이이도 코토리의 대표 음식입니다.
야키니쿠(やきにく, 燒肉_불고기)와 멘타이코(明太子, 명란젓)라는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유명한 음식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전래된 '이이도 코토리'입니다.
이미 일본인들도 이 두 가지 음식은 한국에서 전해진 음식임을 인정합니다.
'야키니쿠'라는 유명한 일본 영화는 한국에서 전래된 불고기라는 음식을 가지고 어릴 적 헤어진 재일교포 형제가 요리대결을 펼치는 형식의 영화입니다. 멘타이코 역시 오사카 지역의 우리 교민들이 제조하여 일본에 소개하고 널리 퍼진 한국음식으로 인정합니다. 국물이 있는 서울식 불고기와 비슷한 '스키야키'라는 형식의 음식도 있고, 우리나라의 불고기는 일본의 음식 문화와도 많은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아침 준비를 하면서 전 직장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전화를 많이 받습니다. 캐나다인 전 직장동료의 아기 돌 모임 참석 독려 전화들입니다. 다들 바쁘게 살지만, 보자고 하니 꼭 가겠다고 합니다.
직장 후배는 요리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의 셰프로 섭외되었다고 하며, 제자는 유명한 주스 프랜차이즈 사장이 되어 사업으로 바쁘고, 저와 같이 요리를 하던 한 후배는 아산에서 식당을 하며 매출이 좋다고 자랑도 합니다. 바쁘게들 사는 것 같아서, 그리고 경제학의 기본인 '재화와 용역을 창출하는 일'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흐뭇합니다.
따끈한 쌀밥에 버섯 불고기, 명란젓이 함께 하는 아침상을 먹으며 오늘 저녁에 반가운 얼굴들을 볼 생각을 하니 초등학생 소풍 가는 느낌으로 기분이 들뜹니다. 바쁘고 힘든 세상이지만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오늘 같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