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파스타 좋아하시나요?
이번 주 수요 미식회 파스타 편을 본 집사람이 파스타가 당긴다며 '스파게티 까르보나라'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집안 가훈이 '여자 말을 잘 듣자!'라서, 퇴근길 마트에 들러 생크림 한팩을 사서 집으로 향합니다.
워낙 면요리를 좋아하고 하루 한 끼는 면요리가 생각나는 식성이라, 파스타는 우리 집 인기 메뉴 중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입니다. 토마토소스를 한 냄비 끓이고 소분하여 냉동고에 넣고 먹을 때도 있고, 소고기 민찌 듬뿍 넣은 볼로네제 소스를 만들어 라자냐도 만들기도 하며, 큐민이라는 향신료를 살짝 넣어 멕시칸 나쵸로 활용되어 맥주 안주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한번 만들어 놓기가 힘들지만, 소스가 완성되면 여러 가지로 활용되는 우리 집 밑반찬과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은 집사람이 선호하는 스파게티 까르보나라를 만들어 봅니다. '까르보나라'는 이태리어로 석탄이라는 뜻으로 석탄가루가 날리는 곳에서 광부들이 먹는 파스타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큰 냄비에 소금 조금 넣고 파스타 끓일 물을 올리고, 냉동고에서 베이컨을 꺼내어 뜨거운 물에 살짝 녹여 프라이팬에서 볶습니다. 냉장고 야채칸에 느타리버섯과 양파를 잘라서 프라이팬 넣고 베이컨 기름으로 볶아 줍니다.
화이트 와인을 조금 부어주고, 생크림을 듬뿍 부어 줍니다. 짭짤하게 소금 간도 하는 것도 잊지 않고, 파슬리는 없으니 부추를 썰어서 파슬리 대신합니다. 마지막에 넣어 섞어줄 달걀노른자도 준비하고 스파게티 10분만 삶아서 준비해 둔 소스에 면과 노른자 투입하여 섞어주면 됩니다. 식성에 따라 파르마산 치즈를 듬뿍 올리고, 후추를 뿌리면 완성되는 간단한 spaghetti alla carbonara(광부풍의 스파게티) 레시피입니다.
스파게티 면 삶는 시간 10분이면 재료 준비했던 설거지까지 완성되는 간단하고 맛있는 요리입니다.
유럽에서부터 미국,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인기가 있는 파스타의 역사는 '듀럼밀'이라는 밀 품종에서 기인합니다. 유럽에서 재배되는 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Bread Wheat(빵 밀)과 Durum Wheat(듀럼밀)입니다.
듀럼(Durum)은 라틴어로 딱딱하다는 뜻으로 글루텐(밀 단백질) 함량이 빵 밀에 비해 월등히 높아 빵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고 호화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이런 듀럼밀을 제분을 하면 세몰리나라는 밀가루가 생산되고, 이 세몰리나로 만든 면을 파스타라고 합니다.
스파게티 면은 우리나라 국수보다 훨씬 오래 삶아야 할 정도로 딱딱한 느낌인데 이것이 듀럼 밀로 만든 세몰리나 밀가루의 특성입니다. 빵 밀과 듀럼밀은 우리나라의 맵쌀과 찹쌀을 분류하듯이 나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맵쌀은 밥을 짓고, 찹쌀은 떡을 하듯이 말입니다.
빵 밀은 강수량이 많고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지만, 듀럼밀은 강수량이 적고 고온 건조한 지역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아랍문화에서 많이 먹는 쿠스쿠스(아랍에서는 쿠스쿠스를 쌀처럼 먹습니다)를 만들기에도 아주 적합합니다.
14세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출간되고, 이 시기에 아시아로부터 국수가 유럽에 소개되었다고 전해 집니다.
영어권 최초의 요리책이라고 불리는 'The Forme of Cury' (The Method of Cooking을 뜻한다. cury는 중세 프랑스어 cuire :to cook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에서 파스타가 언급되는걸 보면 유럽에서는 꽤 빨리 파스타가 전파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말린 파스타는 빵보다 저장성에서 월등한 보존성을 가지고 있어 1세기 동안 항해하는 모든 배들이 말린 파스타를 싣고 항해를 나섭니다.(*Justin Demetri, History of pasta, 2014) 이후, 17세기에 압출 프레스 형식의 파스타 제조기계가 나오면서 다양한 모양과 질감의 파스타를 대량생산 수 있는 기반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파스타는 포크의 역사와 함께 발전하게 됩니다.
포크는 아랍문화권에서는 10세기부터 귀족들이 사용하였으나, 이슬람 문화에서 사용되는 포크의 뾰족함은 유럽인들에게는 '신성 모독'적이라 여겨져 금지되어 있던 문화였습니다. 고기를 썰어서 손으로 집어 먹고, 빵 역시 손으로 집어 먹는 유럽인들의 식탁에서는 칼과 스푼이면 충분했던 것입니다. 포크의 역사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유래하지만, 요리 기구로 사용될 뿐 유럽의 식탁에서 사용되는 기구는 아니었습니다.
위의 그림은 15세기 프랑스 귀족들의 식사를 묘사한 '베리 공작의 매우 부유한 시간'이라는 그림입니다. 15세기까지의 유럽 식탁에는 포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16세기 프랑스 왕 앙리 2 세 (Henry II)와 결혼한 메디치가의 캐서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는 이탈리아의 귀족 문화인 2 열식 '포크'를 프랑스 왕실에 소개합니다. 손님이 자신의 포크와 스푼을 '카데나'라는 상자에 넣어 챙겨 오는 식문화를 유럽에 소개한 것입니다. 캐서린 드 메디치의 아들 앙리 3세가 칙령을 발표하여 프랑스에서 포크를 사용하도록 하지만 유럽에서 포크는 인기를 얻지 못합니다. 끈적거리는 설탕과자를 먹는 정도로 발전하고 맙니다.
다음은 폴 프리드먼의 '미각에 역사'에 나오는 포크에 관한 언급입니다.
'포크는 16세기 궁정 디너에서도 매우 귀한 도구였다. 포크를 직접 봤다는 최초의 기록은 14세기 이탈리아에서 나오지만, 16-17세기에 와서야 엘리트 계층의 식탁에서 일상적인 도구가 되었다. 17세기 후반까지도 논평가들에 의하면, 영국인들은 손가락 외에 포크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유럽 내 최고 수준의 상류층 에티켓을 정립했다고 간주되는 베르사이유 궁정에서도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유럽 귀족 식단에서 파스타 요리가 증가함에 따라 포크는 점차 귀족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Culture of the Fork, Rebora Giovanni, 2013)
포크는 이제 귀족들에게 실버웨어(은식기)로 식탁예절에 꼭 필요한 식기로 자리매김합니다. 하지만 귀족들이 아닌 유럽의 일반인들에게 은으로 만든 포크는 값비싼 사치품과 같아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귀족들만의 전유물에 불과했습니다. 1913년 은보다 훨씬 싼 스테인레스강이 영국의 금속 공학자 해리 브레알리(Harry Brearley)에 의해 탄생합니다. 이후 독일의 철강 산업의 부흥과 함께 지금과 같은 각도의 네 개의 창이 있는 현대적인 스테인레스 포크가 유럽인의 식탁에도 등장합니다. 미국은 유럽의 대중화 이후, 미국 남북 전쟁 이후에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산업 혁명 태동기까지의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삶은 아마 당시 아시아보다도 나을 것이 없었던 듯합니다.
스테인리스 포크의 보급과 함께 미국에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다량 유입되면서 파스타는 미국 음식으로 대중화되고, 새로운 미국 음식 문화의 한 축이 됩니다. 미국의 파스타 문화는 곧 세계화되고, 세계는 파스타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1914년에는 이탈리아산(産) 오리지널 건조 파스타가 미국에 7만 톤이 수출되게 이르러,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 산업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합니다. 2013년 기준으로 파스타를 340만 톤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파스타 강국'으로 부상하며 이탈리아의 건조 파스타 산업으로도 발전합니다.
우리나라의 파스타의 역사는 1967년 '라 칸티나'라는 한국 최초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명동에 개업을 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사실 이 레스토랑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는 외국인들을 위한 식당이었습니다. 이후 1980년대 초 힐튼호텔의 '일 폰테'와 신라호텔 '라 폰타나'등이 호텔업계에 이태리 전문식당이 들어서고, 호텔 프랜차이즈의 외국인 주방장들이 채용되기 시작하면서 이태리와 구미 현지의 이태리 음식이 소개되기 시작합니다.
1985년 피자헛이 문을 열고, 198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미도파 백화점이 들여온 '코코스'와 제일제당(CJ그룹)이 들여온 '스카일 락' 등 패밀리 레스토랑의 출현과 함께 파스타는 대중화됩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양식당이라면 전국 각지에 이태리 식당만이 존재할 정도로 파스타는 일반화되고, 흔한 음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요즘은 남자들도 파스타 몇 가지는 요리할 줄 알아야 하는 필수 교양으로, 친구들이 맛있는 파스타 만드는 비법을 묻곤 합니다. 가끔 친구들에게 파스타 만들기를 전수하다가... 조언으로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