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조리학과 교수라는 직업은 가끔 주변인들에게 약간의 기대와 환상을 품게 만드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주변 사람들과 고깃집을 가서 고기를 구울 때라던가, 여행 중에 식당을 고를 때라던가,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할 때 등을 말합니다. 이런 때 조금 과장된 이야기지만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서 '얼마나 잘 굽고, 고르고, 맛있는지 지켜볼 거야!'라고 기대하는 표정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그런 경험 없으신가요?'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 직업병 같은 부담감과 강박증이 찾아오곤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할 작은 사명(?)을 느끼게 되는데, 고기 하나도 정성껏 구워 주변 사람들과 맛있게 먹고, 신중을 기하여 가성비 좋은 맛집을 고르며, 집으로 지인들을 초대할 때는 좋은 와인과 함께 멋진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신경 쓰는 것 등입니다.
이렇게 나름 한 사람의 몫을 할 때 꼭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있습니다. '요리가 직업인 분들은 어떤 음식이 제일 맛있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남이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습니다!"
사실 제가 좋아라 하는 시간은 친구와 동네 분위기 좋은 참치집에서 '실장님'들이 서브해주시는 참치회를 먹으며, 일상을 이야기하는 순간입니다. 젊은 시절 숯불에 도란도란 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참 좋아했지만, 중년이 된 지금은 참치횟집을 더 좋아합니다.
참치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소비되는 대중적인 생선이지만, 일본의 참치 사랑을 따라갈 수는 없을 듯합니다. 일본인들의 참치 소비량과 애정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참치는 고대 때부터 소비되어 왔다고 보이지만 대중화 된 참치회의 역사는 불과 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참치는 '고양이도 건너뛰는(猫跨ぎ) 생선'이라 하여, 소비되지 않는 생선이었습니다. 쉽게 상하는 고약한 생선으로 취급당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선이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심해 어종인 참치는 잡자마자 방혈(放血)을 하고 내장을 제거하여 얼음을 채우지 않으면 (지방이 풍부한 생선이기에) 상하기 쉬워 싱싱한 상태로 유통되기 쉽지 않았습니다.
'참치회의 역사는 냉장의 역사입니다'
음식의 역사에서 불의 발견만큼, 냉장 시대의 도래는 음식의 역사에 새로운 가능성과 창조를 부여합니다.
1748년 영국의 월리엄 컬런 교수가 에틸에테르를 반 진공상태에서 기화시켜 얼음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발전은 거듭되고, 미국의 제네럴 일렉트릭 사가 1911년 최초의 상용화된 가정용 냉장고를 만들어냅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의 홍어회나 가자미식혜처럼 발효된 익히지 않은 생선을 먹는 '나레 즈시(なれずし)'가 생선회의 의미였습니다. 냉장고가 각 가정에 보급되자 발효된 생선이 아닌 '선어'가 생선회의 의미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광어, 우럭 등 흰 살 생선이 '생선회'로 유통되기 시작하게 되면서 '고양이도 건너뛴 생선이었던 참치'도 이 대열에 참여합니다.
그제야 참치는 드디어 먹을 만한 횟감 생선으로 밥상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생선의 지방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상 참치의 배꼽살과 뱃살의 인기는 점점 더해져 갔습니다.
일본 근해에서 잡히는 블루핀 튜나(참다랑어, 일본어로 혼 마구로)는 수확량이 많지 않아 어민들의 로또라 불리며 대중화되기에는 공급이 부족한 생선이었습니다. 1960년대 말까지 비싼 냉장 참치를 일반인이 회로 먹는 일은 일본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참치는 일약 일본의 '국민 생선'으로 등극하게 되는데, 일본항공의 이익을 위한 고심으로 발명된 참치용 냉장컨테이너 덕분이었습니다.
이 발명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 일본은 소니(SONY)를 비롯한 전자회사들의 대미 수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수출길은 태평양을 건너는 해상수송도 있었지만, 급송 항공화물도 늘기 시작하는데 여기 항공화물이 늘어난 일본항공(JAL)에 고민이 생겨 납니다. 미국 왕복 항로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는 늘 비어있어 경제성이 떨어지는 문제였습니다. 이에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돌아오는 항공화물에 일본에서 고가에 팔리는 미국산 냉장 참치(냉동 참치가 아닌)를 실어오고자 하는 방법이 대두되었는데, 냉장 참치를 실어오는 냉장유통 기술이 난관이었습니다.
일본항공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군분투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실험을 거쳐 일본항공 화물담당 직원의 아이디어로 제작된 냉장 컨테이너가 등장합니다. 이렇게 냉장 컨테이너에 보관된 대서양의 냉장 참치는 비행기를 타고 하루 만에 일본으로 항공 운반이 되어 일본에 유통되기 시작했으며 일본은 냉장 참치에 열광하기 시작합니다.
샤샤 아이젠버그(Sasha Issenberg )의 책 '스시 이코노미(Sushi Economy)'는 참치 유통의 생생한 현장을 보여줍니다.
참치횟집에 가면 실장님들이 '부위별로 잘 설명해 주는데, 잘 외워지질 않는다'는 분들을 위해 참치를 부위별로 알아보겠습니다. 그전에 일단 참치의 종류를 먼저 알아볼까요? 참치라고 다 같은 참치는 아니랍니다.
참치는 일반적으로 '다랑어와 새치'를 합친 이름으로 불립니다.
첫 번째, 일본에서 혼마구로라고 불리는 가장 비싼 참치인 '참다랑어(Bluefin Tuna)'는 참치 종류 중 가장 크고 비싼 생선으로 일본에서 냉장 유통될 경우 수억 원을 호가할 정도로 비싼 가격을 자랑합니다.
두 번째는 눈이 커서 '눈 다랑어(Big eye Tuna)'라고 불리는 참치의 종류입니다. 일반적인 참치집에서 유통되는 우리가 많이 먹는 참치의 종류입니다.
세 번째는 황다랑어(Yellowfin Tuna)로 위의 소개한 참다랑어와 눈다랑어에 품질과 맛에서 조금 뒤처져서 주로 무한리필 참치회, 뷔페 등에서 저렴한 횟감 부위로 취급합니다.
네 번째로는 날개다랑어(Albaco, Longfin Tuna)로 기다란 날개가 특징이며, 북미 대륙에서는 횟감으로도 쓰이나 한국에서는 소비량이 많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다랑어(Skipjack Tuna)로 다랑어 중 크기가 작고, 가격이 저렴하여 참치 캔 대부분이 가다랑어로 만들어집니다. 일본에서는 육수에 쓰이는 훈연한 말린 가다랑어 '가쓰오부시'로 쓰이고, 우리가 먹는 '참치 타다끼'도 가다랑어로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가 참치횟집에서 먹는 '하얀 살'은 다랑어가 아닌 새치로서 황새치(Striped-Marlin)와 청새치(Blue-Marlin)로 구분됩니다. 황새치와 청새치도 뱃살이 인기가 있어 '메카 도로'로 불리며 유통도 많이 되고, 가장 맛이 좋은 부위로 칩니다.
위의 그림은 참치를 부위별로 설명한 그림입니다. 참치회 부위는 소, 돼지의 부위별 분류와 비슷할 정도로 매우 복잡합니다.
참치 초보인 분들을 위한 부위별 분류를 나눠보면, 크게 위쪽의 등살(아카미)과 아래쪽 뱃살(도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두육미'란 말이 있듯, 머리 쪽으로 갈수록 대부분이 비싼 부위이고, 꼬리 쪽으로 갈수록 가격이 싼 부위입니다. 참치 머리에 있는 살은 아주 조금만 나오는 특수부위라 하여 가격이 '사악'해집니다.
다음으로 등살(아카미)보다 뱃살(도로) 부분이 가격이 비싼 부위입니다. 뱃살은 지방이 고루 분포된 마블링이 좋은 부위로, 참치의 내장을 제거하고 나면 수율(Yield)이 월등히 떨어져 등살에 비해 생산량이 적습니다.
뱃살을 위 그림에서 살펴보면 아가미 아래쪽부터 '가마-도로', '오-도로', '주-도로' 불립니다. 가격은 아가미 쪽이 가장 비싸고, 꼬리로 내려올수록 떨어집니다.
등 쪽 빨간색 부분은 '아카미'라 불리는데, 머리와 꼬리 중간 부위를 가장 맛있는 아카미로 칩니다.
일반적으로 참치 부위는 지방 분포도에 따라 가격이 매겨집니다. 참치횟집에 가면 기본, 스페셜, 특선으로 메뉴가 나눠지는데 가격이 올라 갈수록 빨간 아카미보다는 지방이 잘 분포된 도로 부위와 특수 부위를 많이 서브받게 됩니다. 참치 먹은 날, 빨간색보다 분홍색 핑크 컬러가 기억이 많이 나면 비싼 부위일 가능성이 높답니다.
주말, 절친과 함께 동네에 '한 참치'집을 방문합니다.
서로 가정과 회사일로 바빠 자주는 못 보지만, 초중고등학교 동창인 죽마고우가 같은 지역구로 이사를 와서 가끔 이렇게 만나 같이 소주 한잔 나누는 시간이 참 소중합니다. 모든 중년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 이야기와 '사춘기에 접어든 친구의 딸' 이야기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등의 중년 남자들의 수다로 채워갑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청춘이 지나가는 아쉬움도 있지만, 인심이 넉넉해지고(인심이란 돈이 많고 적음은 아니더군요...) 조금씩 삶의 여유를 찾아가는 시간인 듯합니다.
동네에 친구와 함께 부담 없이 한잔 마실수 있는 단골 참치집 있다는 건 '행운' 같습니다. 인심 좋은 실장님이 내주시는 참치회와 함께한 금요일 저녁, 친구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