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5월은 역시 계절의 여왕입니다.
비가 개인 미세먼지 없는 화창한 날씨 그리고 기온도 적당히 좋은 주말 토요일.
지난 3일 동안 지루하게 비가 오는 봄장마 기간이었지만, 이맘때쯤 비가 오길 기다리는 농부님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기쁜 마음으로 봄비를 즐길 수 있더군요. 요맘때 오는 비는 참 고맙고, 선물 같습니다.
봄 남방 소매 접어 올려 입고 나들이 가기 좋은 날씨,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계절, 오늘은 꼭 나가야 하는 좋은 날씨입니다. 운동화가 낡아 오랜만에 새 신발 사는 즐거움과 늦은 점심을 먹을 마음으로 명동으로 향합니다.
늦은 점심으로 메뉴를 고르는데, 명동에는 명동 칼국수를 필두로 하동관, 함흥면옥, 중국대사관 옆 중식당들과 요즘 좋아하는 심슨탕(부대찌개 집)까지... 이외에도 명동은 생각보다 맛집이 많은 곳입니다. 여러 맛집을 고민하다가, 집사람이 갑자기 쌀국수가 먹고 싶다 하여 베트남 쌀국수 먹으러 갑니다.
여자들 먹거리 기호에 이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가정화목의 지름길입니다...;;;^^'
'베트남'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인구 1억, 성장하는 인도차이나의 국가,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 생산기지로 이주하는 곳... 여행지로 급부상중인 다낭, 베트남 전쟁, 아오자이, 쌀국수, 월남쌈,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축구까지 베트남은 인도 차이나 반도의 여러 나라 중 우리와 가장 친근함으로 다가오는 나라입니다. 그 친근함에는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비엣 남(Viet Nam)'을 공부하다 보면 우리나라와 많이 닮아있습니다. 베트남은 동남아 국가 하면 떠오르는 불교국가가 아닌, 뿌리 깊은 유교 문화권의 국가로 어른을 공경하고 교육과 학구열이 남다른 한자 문화권의 국가였습니다.(미국에서 학구열하면 빠지지 않는 나라가 우리나라와 베트남이죠.)
중국의 침략을 시시때때로 받아 중국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고, 긴 국토 생김새 덕분에 통일이 되는데 시간이 필요로 했으며, 열강의 시대에는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1940년대 프랑스의 아시아 지배권이 약해지자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받아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는 잠시 일본의 영향 아래 있기도 했습니다. 2차 대전 후에도 남북의 이념전쟁이 된 월남전까지, 고대부터 지금까지 독립과 자주를 위한 끓임 없는 투쟁을 이어나가는 나라입니다. 왠지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는 듯할 정도로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국 음식, 중국음식과 함께 아시아 3대 요리에 속할 정도로 유명한 베트남 음식은 일단 '쌀국수(Pho)'와 '월남쌈(Goi Cuon)', '월남쌈 튀김인 쨔조'와 요즘 인기 있는'분쨔'와 '반미 샌드위치'까지 우리나라에도 인기 있는 메뉴들이 많이 있습니다.
메콩강 하류의 고온다습한 기후로 연중 삼모작을 할 수 있는 '쌀의 천국' 베트남에서 쌀과 관련된 여러 음식과 쌀국수가 나온 것은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릅니다.
동쪽의 넓은 바다와 동남아시아의 축복이라는 메콩강 하류를 끼고 있는 탓에 민물 생선을 포함한 해산물도 많아 '느억 맘'이라고 불리는 액젓으로 요리의 맛을 내어 줍니다. 우리 입맛에도 동남아시아 다른 국가보다도 월남 음식이 우리와 잘 맞는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영향으로 바게트 빵에 쌀가루를 넣어 반미(Bhan Mi_밀가루 Mi 빵 Bhan)라는 베트남 빵을 '반미 샌드위치'라는 유명 샌드위치로 만들어 세계에 수출하기도 합니다.
호찌민시의 주인공인 베트남에서는 '호 아저씨'라고 불리는 호찌민이 프랑스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요리의 왕'이라 불리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에게 사사를 받았을 정도로 프랑스와 베트남 음식은 역사적으로도 관계도 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베트남 음식이 세계화되는 데에는 불행한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이 되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러하듯, 일본 패전 후 베트남도 프랑스령에서 독립을 하는 듯하였으나 2차 대전 승전국인 프랑스는 다시 베트남 지배권을 주장합니다. 이에 호찌민을 비롯한 베트남 민족주의자들이 독립 전쟁을 벌이고, 1954년 프랑스와의 8년간의 전쟁 끝에 북쪽 베트남의 호찌민이 승리합니다. 이것을 제1차 인도 차이나 전쟁이라고 합니다.
1955년 공산주의의 확대가 두려운 미국은 북부 베트남의 호찌민과 전쟁을 벌입니다. 우리가 아는 베트남전입니다. 1975년 7월, 끈질긴 저항 끝에 '세계의 경찰인 미국'이 물러나고, 북베트남이 승리하며 공산국가 베트남 인민공화국을 탄생시킵니다. 이것이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입니다.
전쟁의 승리는 역설적이게도 베트남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미군은 다우 케미컬과 몬산토의 지원을 받아 열대 우림을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제초제 '에이전트 오렌지'를 개발합니다. 1961년부터 1971년까지 미군은 열대 우림 속에 적이 숨지 못하도록 하려고 고엽제를 사용합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약 7천5백만 리터의 에이전트 오렌지가 살포되었는데 특히 메콩강 삼각주 지역의 밀림을 파괴하기 위해 살포된 고엽제로 베트남 농촌지역이 황폐해지고, 사람과 생물 모두가 질병과 선천적 기형으로 고통받게 됩니다.
이후 쌀농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망가진 경작지 때문에 베트남인들은 1980년대까지 기아로 허덕였다고 합니다. 2011년 베트남의 일부 지역에는 여전히 국제 허용 기준보다 100배 이상 많은 다이옥신이 검출되고 있다고 하니 생물학적 무기는 인류에게는 핵무기 못지않은 재앙입니다.
베트남전을 통해 수많은 베트남인들이 그 유명한 '보트피플'이라는 명사를 탄생시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남베트남에 남아있던 상류계층과 반공주의자, 미국에 협조하던 남베트남인들은 해외로 망명하기 시작합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100만 명의 사람들이 베트남을 떠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베트남에서 호주까지 2000km가 넘는 항로를 떠돌아 기적처럼 호주에 당도한 보트피플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부산 난민보호소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피난을 떠난 100만 명에 달하는 베트남인들이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에 망명을 신청하고 이국땅에 정착합니다. 남의 나라에 초기 이민자들에게 허락되는 일은 보통 허드렛일과 음식장사가 기본인 듯합니다. 많은 베트남인들이 베트남 음식점을 오픈하기 시작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의 베트남인 거주지역 리틀 사이공에서 쌀국수가 유행하기 시작하게 되고 점차 미국인들에게도 베트남 음식은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프랜차이즈의 나라인 미국에서 아시아인들이 좋아하는 쌀국수를 브랜드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 월남 쌀국수를 처음 소개한 포호아(Pho Hoa)를 글로벌 브랜드로 론칭하고, 세계 최대 월남국수 브랜드로 성공합니다.
베트남전이 없었다면 아마 베트남 음식은 캄보디아나 미얀마 음식과 같이 아시아 주변국 음식중의 하나로 인식 했을지도 모릅니다.
각국 음식문화의 세계화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보트피플과 망명의 역사가 만들어낸 베트남 음식의 세계화 과정, 이탈리안 음식의 세계화 역시 이탈리아 이민의 역사이고, 중국 음식 역시 중국인들의 슬픈 이민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쌀국수와 월남쌈 튀김인 짜조를 함께 먹으니 참 맛있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베트남 여행을 가서 맛있는 본토의 쌀국수와 베트남 요리들을 경험해 보고 올까도 생각해 봅니다.
인구 1억의 아시아의 잠룡,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만들어낸 도시 호찌민, 휴양의 도시 다낭,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까지 매력적인 나라 베트남 여행을 그려봅니다.
서점에 들러 베트남 여행 서적 한 권을 구입합니다. 아마 오늘 저녁에는 베트남 항공권과 호텔들을 뒤질지도 모릅니다.
'명동은 참 좋은 곳이네!' 라며, 아마 베트남 여행할 때 신을지도 모를 운동화를 사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