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한동안 안 먹으면 생각나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삼겹살이나 치킨은 물론이고 탕수육과 짜장면, 명절에 꼭 먹어야 하는 떡국이나 만두, 복날에 빠지면 안 되는 삼계탕, 매운맛이 생각날 때 먹는 육개장, 비 오면 먹어야 하는 파전과 막걸리 등 말입니다.
그리고 피자와 파스타, 두툼한 스테이크, 맥도널드 앞을 지날 때마다 버거의 유혹에 빠지도 하는데, 저의 리스트에는 '감바스 알 아히요(Gambas al Ajillo)' 라는 요리가 있습니다.
스페인식 새우요리로 인기 높은 감바스 알 아히요는 새우 마늘이라는 뜻으로 새우와 마늘을 다량의 올리브 오일로 튀기 듯이 요리합니다. '새우와 마늘 향이 가득 배인 흥건한 올리브 오일'에 바게트를 찍어 먹는 재미가 가득한 스페인 '타파스'중 하나입니다.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스페인은 유럽의 농산물 국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평야가 많을 듯 하지만 국토 대부분이 산악지대로, 스페인 남부와 북부 해안가 만이 평야지대인 관계로 대부분의 농산물과 와인이 이 지역들에서 생산됩니다.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 산맥을 기점으로 스페인(이베리아 반도)과 프랑스(갈리아 지방)로 구분됩니다.
스페인 내부의 수많은 산맥 탓에 통일전 중소 국가들로 나뉘었던 지역들이 교류가 원활하지 못했으며, 공식 언어인 스페인어와 카탈루나어, 바스크어등 언어도 달라 이질적인 느낌을 갖는 탓인지 현재에 이르기까지 바스크 지역과 카탈루냐 지역(바르셀로나가 있는 지역)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경기는 스페인 국내 클럽 간의 경기이지만, 국제 경기를 보는 듯한 후끈한 응원과 열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스페인은 유럽의 복잡한 역사로 인하여 나라의 주인이 자주 바뀌는데, 로마의 지배를 거쳐, 게르만족의 대이동 때에는 고트족이(Goth)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하며, 이후 이슬람 문화권인 북아프리카 무어족에 점령당하기도 합니다. '알함브라 궁전'(이슬람 사라센 양식의 궁전)이 그라나다 지역의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일 정도로 아랍의 문화에 익숙한 나라입니다. 국토의 대부분을 십자군 전쟁 이전까지 유럽의 패권이 바뀔 때마다 그 역사의 주인공인 타민족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베리아 반도의 음악, 열정 가득한 스페인의 '플라멩코(Flamenco)'와 포르투갈의 '파두(Fado)'를 듣다 보면 뭔지 모를 우리의 정서인 '한(恨)'을 느끼기도 합니다.
스페인은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 음식 문화에서 빠지지 않는 나라입니다. 아랍으로부터 유입된 쌀로 부터는 스페인의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인 '파에야', 맥주와 찰떡궁합인 '타파스', 세계 최고 수준의 맛있는 돼지로 만든 '이베리코 하몽', 여름날의 시원한 와인 '샹그리아', 디저트 '츄로스'까지... 요즘 우리나라에도 새로 생기는 핫 플레이스에는 빠지지 않고 스페인 식당이나 츄로스 매장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여러 이민족의 점령지였던 스페인은 그만큼 다양한 문화가 섞인 식문화의 용광로 같은 나라입니다.
생산량이 많은 고품질의 스페인 '와인'도 유명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잘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는데 수출할 겨를도 없이 스페인 본토에서 대부분 소비되어 물량이 없을 정도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스페인 내 자국 소비량이 많다 하니 이를 보면 스페인 사람들의 와인사랑을 짐작케 하는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항해의 시대에 남미로부터 토마토와 감자, 코코아와 설탕을 유럽에 소개하여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새로운 음식문화의 발전을 꾀하기도 합니다.
스페인의 유명한 정오의 휴식시간인 시에스타, 간식인 타파스와 핀쵸는 스페인 사람들의 일상과 삶을 보여주는 단적인 문화입니다. 시에스타는 스페인과 같이 농경이 일상인 더운 나라에서 낮시간 휴식을 취하는 공통적 전통으로 유럽 곳곳에서 같은 문화를 접하게 됩니다.
스페인의 영향으로 남미에서도 시에스타는 존재하게 되는데, 아시아에서는 대만과 베트남, 필리핀까지 시에스타의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7~8월 혹서기에는 일사병을 예방하고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군인들이 시에스타와 비슷한 '오침'을 즐기기도 합니다.
시에스타가 존재하여 오후가 늦게 시작하고 밤늦게 저녁식사를 하는 탓에 스페인에서는 이른 저녁의 타파스 문화가 발전합니다. 타파스는 퇴근 후, 저녁 식사 전 전채로 먹는 음식이지만 현대 이르러서는 여러 가지 타파스와 샹그리아로 저녁을 먹습니다. 이제는 스페인 저녁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타파스의 어원은 Tapar(덮다)라는 동사로, 고온 건조한 스페인 남부의 더운 날씨에서 맥주나 와인을 마실 때 파리나 벌레가 술잔에 꼬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 빵조각으로 술잔을 덮는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빵보다는 술이 중요했나 봅니다^^) 타파스와 비슷한 형식의 핀쵸(Pincho)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에서 빵 위에 토핑 재료들이 분리되는 걸 방지하기 위하여 꼬치(Pincho)를 꽂는데서 전해집니다.
이렇게 말하면 타파스는 스페인 남부 요리로, 핀쵸는 스페인 북부의 요리처럼 보이지만 현재에는 스페인 전역에서 타파와 핀쵸는 같은 뜻으로 혼용됩니다.
스페인 여행에 바르셀로나에서 지인들과 매일 저녁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타바스바에서 웃고 떠들며 여러 가지 타파스와 샹그리아로 저녁을 먹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치킨집을 찾듯이 타파스 바는 스페인 어디서든 찾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흔하기도 하고 소비가 많다는 뜻인 듯합니다.
매일 저녁 뷔페 먹는 기분이랄까... 여러 가지 타파스중 하나씩 먹고 싶은걸 골라 담을 때는 뷔페와 회전 초밥집 중간 정도라는 느낌입니다.
웬만한 식사 가격이 비싼 서유럽에서 가격도 1~2유로 정도로 착해서 마음껏 먹어도 15유로 이상 나오지 않는 착한 식당입니다.(밥값보다 샹그리아와 맥주등 술값이 더 나올 때도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가장 핫한 관광지인 람블라스 거리의 호텔 근처의 타파스 바라서 현지인들보다 여행객들이 많았겠지만, 스페인 사람들의 일상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할 때 여러 곳을 많이 다니는 것보다, 한 도시에 적어도 일주일은 머무르고 그 도시에서 여유를 느끼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여행이란 충전을 하러 가는 것이란 생각 때문인지 일정에 빡빡하게 쫓기거나, 패키지여행처럼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피하려고 합니다. 이국적인 도시에서 밤늦게까지 즐기고, 느즈막에 일어나 현지에서 아점을 먹고, 너무 멀지 않은 곳을 다니고, 좋은 장소나 식당은 한번 더 방문할 수 있는 여유를 찾는 여행을 더 즐깁니다. 스페인은 그런 곳 중의 하나라서 기회가 된다면 몇 개월은 살아보고 싶은 곳입니다.
금요일 저녁, 요즘 인기가 높은 스페인 음식인 '감바스 알 아히요'가 급 식욕을 자극하여 냉동실에 새우를 녹이고, 마늘과 양파를 준비하여 감바스 알 하이요를 만들고, 타파스중 하나인 오징어를 튀깁니다. 동네 빵집에서 사 온 바게트와 아보카도 토마토 샐러드, '샹그리아' 한잔이면 금요일 저녁으로는 아름다운 식탁입니다. 바게트에 마늘 새우 향의 올리브 오일을 찍어 먹습니다.
양껏 먹고 나니 한 동안은 생각이 안 날듯 한데, 이제부터는 샤프란 듬뿍 들어간 '해산물 파에야'가 먹고 싶을 것 같습니다.
PS : 죽기 전에 먹어야 할 음식 1001가지라는 책에 나오는 '뚜론 데 히요나(turron de jijona)'을 소개합니다. 아몬드가루와 꿀로 만든 스페인 디저트입니다. 스페인 사람들도 해외에 나갈때 선물로 준비할 정도로 유명한 디저트 입니다.
왜 죽기 전에 먹어야 하는지 먹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