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일기
어금니 쪽 치통으로 오랜만에 치과를 방문하니, 사랑니에 충치가 있어 발치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대학 때 사랑니 발치할 때 하도 고생을 한터라, 한번 더 발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쭈뼛'서는 기분입니다. 요즘 치과 의술도 많이 발달해서 무통치료와 무통 발치를 이야기합니다만, 어릴 때나 지금이나 왠지 치과를 가는 길은 콧노래가 나오는 길목은 아니듯 합니다.
토요일 아침에 발치 시간 예약을 하고, 금요일 저녁은 잘 먹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저녁 메뉴로 무엇을 고를지 심사숙고가 깊어지니 '결정 장애' 현상까지 겹칩니다. 군 시절 휴가 마지막 날이나 내시경 하기 전날, 수술 날짜가 잡히거나 병원에 가기 전에는 잘 먹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힙니다. 사형수의 마지막 한 끼도 아닌데, 퇴근하는 차 안에서 내내 무엇을 먹을지 고민합니다. 외식과 집밥 사이,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지나 전복을 거쳐 '장어'에 도달합니다.
'그래! 오늘은 장어가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냉동고에 정말 급하고 귀한 때 쓴다며 집사람이 챙겨놓은 양념장어 두 마리를 해동합니다.
맑은 된장국을 끓이고, 데리야끼 소스를 장어에 조금 더 발라서 오븐에서 굽고, 압력 밥솥에 바로 한 뜨끈한 밥에 올리니 맛있는 장어 덮밥이 완성됩니다. 매실주로 반주를 대신하니 사랑니 발치 전 '만찬'으로 훌륭한 한 끼가 완성됩니다.
장어는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스태미나 식품이지만,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소비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도 장어는 스태미나 식품계의 지존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베트남에서도 장어 요리인 '르언'이 인기가 많습니다. 서양에서의 장어요리는 귄터 그라스의 소설을 영화한 독일 영화 '양철북'에서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되며, 영국에서는 '장어 젤리'가 혐오성 식품 순위에서 빠지지 않고 건재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일본의 영향으로 장어 데리야키가 인기 있는 메뉴로 장어는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메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장어 사랑은 유별나서 세계 장어 소비량의 80%를 차지하는데, 우리나라와 달리 매년마다 한 번뿐인 일본의 복날 '도요노우시노히(土用の丑の日)'에는 장어 덮밥을 먹습니다. 일본의 장어 사랑을 거슬러 가보면, 도쿄가 새로 생긴 에도 시대에 도쿄만 간척사업을 하면서 장어가 대량으로 잡히자 장어를 요리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오늘날과 같은 장어 덮밥이 생겨 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연간 장어 소비량이 5천 톤인데 비해 일본은 30배가 넘는 16만 톤으로 인구비를 따진다 해도 우리나라보다는 15배 이상 소비한다고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삼복에 삼계탕과 프라이드치킨을 먹듯, 일본에서는 여름 내내 장어요리로 여름을 버티니 장어 소비량이 어마어마한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이렇다 보니 자국의 생산 장어만으로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어 중국과 대만,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최근에는 이도 모자라 미국에서도 장어를 OEM(위탁생산)방식으로 공급받습니다.
동 아시아 전 지역에서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식품 업계의 큰손 중국에서도 장어가 인기가 높아 장어 가격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국제 식품업계에서는 중국인들의 입맛에 따라 식품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데, 일 예로 해외여행과 유학을 다녀온 중국인들이 아보카도를 찾기 시작하면서 2016년을 기준으로 아보카도 수입량이 4년 전에 비하여 160배가 늘어난 5000톤을 수입하여 국제 시장에서 아보카도 가격이 급등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책 제목도 '죽기 전에 먹어야 할 요리'... 이런 제목이 아니라 '중국에서 인기 있어지기 전에 먹어야 할 요리'등으로 제목도 바뀌어야 할 정도로 중국인들의 소비는 대단합니다.
장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강에서 서식하는 민물장어(뱀장어)와 바다에서 서식하는 갯장어와 아나고로 불리는 붕장어, 그리고 소주 안주로 유명한 꼼장어(먹장어)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부드럽고 쫀득 거리는 민물장어인 뱀장어가 가장 인기가 높은데, 우리나라에서도 장어구이로 유명한 풍천장어 등도 민물장어를 이야기하고, 일본의 장어 덮밥도 민물 장어를 이야기합니다.
민물장어는 바다에서 자라서 강으로 회귀하는 연어와는 달리, 바다에서 태어나 강에서 5~10년 정도 자라 다시 바다로 회귀하는 본능을 가진 생선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자라는 민물장어들은 태평양이 고향으로 일본 근해나 대만 근해가 아닌 남태평양의 마리아나 해구 근처 태평양 심해에 산란을 하는 특성으로 양식으로 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오른쪽은 바다에서의 장어가 알을 낳고 치어가 되는 과정이고, 왼쪽은 민물에서의 장어의 성장과정입니다. 태어날 때는 바다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하는 것은 민물에서 생활하는 회귀 현상을 합니다. 또한, 태평양 심해에서 '알이 부화되어 치어가 되는 과정'이 양식화되지 않아 '완전양식'이 되지 않는 어종입니다.
평생 동안 딱 한번 산란하는 과정을 거치는 장어의 특성상, 장어의 치어는 귀해 가격이 매우 높기도 하거니와 포획도 상당합니다.
장어는 2014년에 세계 자연보전 연맹(IUCN)이 지정하는 3등급의 멸종위기종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가까운 장래에 야생에서 멸종할 위험성이 높은 종(種)'으로 판정되었습니다.
장어 양식 업자들은 Glass Eel(실뱀장어)이라고 불리는 태평양에서 돌아온 장어의 치어들을 양식용으로 사들입니다. 하지만 자연산 치어 확보의 어려움으로 수요를 충당하기 힘들어 이 치어 가격이 치솟습니다.
치어 자체 가격이 워낙 비싸지니 성체 가격은 더 비싸지게 됩니다. 한때 1파운드(450g) 당 140만 원까지 장어 치어의 가격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2g도 안 되는 장어 치어의 가격이 마리당 7천 원 정도였으니 장어값이 금값이 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수많은 전통 있는 일본의 장어 덮밥 집들이 문을 닫기도 하였습니다.
'장어 덮밥은 장어의 멸종과 함께 사라질까?'
앞으로 장어를 못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지만, 최근 우리나라에도 좋은 뉴스가 들립니다.
우리나라 해양수산부 국립과학원에서 장어 '완전 양식' 성공을 발표합니다. 세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장어 치어들을 수입하여 '양만장'이라고 불리는 인공 양식장에서 10개월 정도 키워서 판매하는데, 이렇게 자연산 치어들을 잡아서 키우는 방식을 '불완전 양식'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번에 성공한 완전 양식이란 수정란을 부화시켜 그 어미로부터 다시 알을 낳아 다시 수정란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우리나라도 2016년에 완전양식이 가능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해 장어 치어인 실뱀장어 수입물량이 20톤 정도로 가격으로 따지면 4000천억 원 정도이니 대단한 시장입니다.
장어 치어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4조 원이 넘는다고 하니 산업적 측면이 큰 것 같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장착한 신형스마트폰도 좋고, 멋진 디자인의 자동차 산업도 좋지만 이런 먹거리 시장의 기술도 발전하여 1년에 한 번 먹는 장어구이를 분기당 한 번씩은 먹고 싶은 마음입니다.^^
장어덮밥 만찬을 먹고 디저트는 파인애플 캔으로 마무리합니다.
어린 시절 제가 아플 때면, 어머니가 깡통 복숭아나 파인애플을 주셨었는데 요즘도 몸이 으슬으슬하거나, 감기가 걸린다거나, 병원에 다녀오고 나면 여전히 옛날 과일 통조림이 생각납니다.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은 추억의 맛으로 기억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