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일기
오랜만에 집사람과 외식을 나갑니다.
집에서 늘 먹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삼겹살 등 집밥 메뉴는 제외하고, 지난번에 중국음식 먹고 체한듯하여 이 또한 리스트에서 빠지고... 그러다 새로운 간판이 보입니다.
'Chicago Pizza 시카고 피자'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처럼 이렇게 외칩니다. "오호! 이거 좋다!"
피자 역시 자주 시켜 먹는 음식 중 하나라 외식메뉴에서는 선호하지는 않지만, 깊고 도톰한 도우와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소스가 가득한 시카고 피자가게로 향합니다.
"오늘은 시카고 피자 먹어볼까?"
동네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오는 건 환영할만한 일이라 환한 표정으로 피자가게에 들어가
크림 생맥주 한잔과 함께 시카고 오리지널 피자 한판을 주문합니다.
음식 중에서 외식을 하거나 집에서 배달 해 먹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짜장면과 짬뽕이고, 두 번째는 프라이드치킨이며, 마지막으로는 피자라고 생각합니다.
짜장면과 짬뽕은 중국집 맛을 따라갈 수 없고, 프라이드치킨은 튀김기름 처리가 힘들고 수많은 자영업자분들을 생각하다 보면 배달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피자는 집에서 도우 만들기도 번거롭고 자연치즈를 많이 써야 하는 가성비를 따져보아도 체인점 배달로 먹거나 이렇게 외식 메뉴로 먹는것이 낫다고 여겨집니다.
피자의 원형은 고대 로마인이 오븐에 구운 넓은 빵을 일컫는 포카시아의 일종입니다. 문헌에도 997년부터 '피자'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현대의 피자의 개념은 아닌 듯합니다.
피자 도우 위에 토마토소스가 토핑 된 현대적인 피자의 역사는 콜럼버스가 토마토를 유럽에 소개하고 유럽인들이 토마토가 관상용 식물이 아닌 농작물로 작물화된 시기인 18세기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표현되는 '선악과'가 토마토라고 생각한 유럽인들은 최소 150년간을 식용 작물이 아닌 관상용 정도로만 재배합니다.
이태리 나폴리에서 피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주방이 아닌 길거리에서 만들어져 팔리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아는 피자의 시작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피자는 점점 일반 대중들에게도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빵에 올라가는 토핑도 토마토, 올리브, 해산물 등으로 발전하기 시작하고 피자를 파는 거리의 노점상도 발전하여 건물에 점포를 얻어 Pizzeria(피제리아)로 발전합니다.
1830년 Antica Pizzeria Port'Alba는 나폴리 최초의 피자 가게로 나폴리 피자의 오래된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843년에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저자인 알렉산드르 뒤마가 피자 토핑의 다양성에 관해 언급을 하는 등 피자는 유럽에서 이태리 나폴리 지방 음식으로 유명세를 탑니다.
1889년 이탈리아의 여왕 마르게리타가 나폴리를 방문할 때 그녀의 이탈리아 통일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나폴리의 피자 장인 라파엘 에스포지토가 이탈리아 국기색인 레드, 화이트, 그린(토마토, 모짜렐라 치즈, 바질)로 장식된 피자 인 "피자 마르게리타 (Pizza Margherita)"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사건으로 피자는 파스타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의 위치에 오릅니다.
이탈리아 남부 변방의 음식이었던 피자는 이탈리아의 미국 이민자들과 2차 대전, 이탈리아가 배출한 미녀 배우 소피아 로렌과 함께 세계화되며 유명세를 떨치게 됩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수많은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의 농민들이 대거 미국 이민자로 유입되고, 미국 안에서 이탈리안 커뮤니티가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이탈리아 남부의 음식인 피자와 파스타는 커뮤니티의 중심 음식으로 미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합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연합국 군인들이 이탈리아에 주둔하면서 이탈리아의 피자와 파스타에 입맛을 길들이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이 되고 많은 미국인들이 이탈리아의 피자와 파스타를 찾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1950년대 중반,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탈리안 여배우 소피아 로렌'이 피자와 파스타와 함께 미국에 상륙합니다. 당시 미국에서 소피아 로렌의 인기는 상당하였는데, 그녀가 미디어에서 먹는 파스타와 피자는 미국인들을 현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세계 5대 영화제로 불리는 아카데미부터 깐느까지 모든 영화제를 석권한 연기력과 매혹적인 미모를 가진 그녀는 이탈리아 음식의 매력을 미국에 전파합니다.
"All you see I owe to pasta!(당신이 보는 모든 것은 파스타로부터 탄생했어요!)"라고 이야기합니다.
마치 '별에서 온 그대'에 나온 전지현 씨가 치맥을 즐기는 장면이 중국에 치맥을 유행시킨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 소피아 로렌은 현재까지 이탈리안 요리책을 집필하는 등 이탈리아 요리 홍보 대사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의 나라인 미국에서 이탈리아에서 온 피자를 프랜차이즈화 하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잘 아는 '피자헛'과 '도미노 피자'로 말입니다.
특히 도미노 피자는 외식메뉴에서 매장이 필요치 않은 Pizza Delivery system(피자 배달 시스템)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 1960년 최초의 도미노 피자는 폭스바겐 비틀 차량으로 완성된 피자를 배달하는 형식으로 시작합니다.
도미노 피자의 로고에 세 개의 점은 이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 3개의 지점을 뜻하던 로고 안의 점은 지점이 늘어날 때마다 하나씩 점을 늘리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처럼 소박한 포부에서 시작한 지점 수는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나 로고의 점으로 점포의 수를 표현하고자 했던 아이디어는 취소되고, 지금도 점 세 개인 도미노 피자 로고는 남아 있습니다. 참고로 현재 도미노 피자의 총 매장 수는 1만 6천 개로 빨간 박스 안에 점이 만 육천 개가 있다고 생각하면 참 재미있습니다.
'핫 박스'와 '30분 보증제'로 대표되는 도미노 피자는 새로운 피자 딜리버리 시스템으로 승승장구합니다. 핫 박스를 도입함으로써 식지 않는 따끈한 피자를 배달하고, 피자 상자가 처져서 피자치즈가 상자 윗면에 늘어 붙는 걸 방지하는 피자 가운데에 삼각대를 설치하는 아이디어...또 30분 이내에 배달이 완료되지 않을 경우 피자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지금 생각해도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을 피자에 이식합니다.
배달 전화부터 POS system(Point of sales System, 판매시점 정보관리) 도입하여 초단위로 주문과 생산시간을 줄인 결과입니다. 기술은 발전하여 요즘 미국 전역에서 도미노 피자 주문전화를 걸면 클라우드 방식으로 미시간주에 있는 도미노 피자로 집결되어 주문을 받고 다시 디지털 신호화되어 미국 전역의 도미노 피자 지점으로 연결됩니다.
우리가 집에서 먹는 '따뜻한 피자'에는 외식업의 발전과 디지털 산업의 기술도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에 반하여 피자 헛은 전통적으로 매장에서 편하게 피자를 즐길 수 있는 피자계의 맥도널드를 표방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pizza(피자) hut(오두막)에서 피자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미국식 피제리아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맥도널드의 황금 아치와 피자헛의 빨간 지붕은 미국 외식 프랜차이즈의 상징으로 세계 외식 프랜차이즈 시장을 점령 하기 시작합니다.
2000년대 세계 최대 프랜차이즈 업체인 얌(Yam!) 브랜드로 편입되어 매출 증대를 위하여 피자헛 익스프레스(딜리버리 시스템 피자헛)와 pasta hut(파스타 헛)등 브랜드를 론칭 하지만 피자헛은 '빨간 지붕' 아래에서 피자를 즐기는 향수 어린 장소입니다.
시카고 데일리 뉴스의 1956 년 기사에 따르면 시카고의 유명한 피자가게인 피제리아 우노(Uno)의 피자 요리사 루디 말나티 (Rudy Malnati)가 조리법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Deep dish pizza로 알려진 시카고 피자는 빵 껍질이 매우 깊어서 평평한 피자라기 보다는 파이와 닮은 매우 두꺼운 피자를 이야기하고, 다량의 치즈와 두툼한 질감의 토마토 소스를 우리가 아는 피자 토핑과는 반대로 쌓아 치즈와 토마토소스가 듬뿍 들어 있는 피자를 경험하게 합니다.
1980년에 프랜차이즈화 되면서 시카고 피자는 미국 전역과 전세계로 퍼져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합니다.
미국에서 피자는 우리가 먹는 일반적인 피자인 뉴욕식 피자와 요즘 유행하는 시카고 피자(Deep Dish Pizza)로 양분됩니다. 위에 표에서 보듯이 시카고 피자는 미국 중부에서는 나름 인기가 많은 피자입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시카고 피자 프랜차이즈들이 생겨나고, 이마트에도 시카고 피자 메뉴가 영입 됩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처형이 시카고 피자 향수병에 걸려 있었는데, 다음번에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우리 동네의 시카고 피자 한번 먹으러 가려합니다.
하지만, '본토 음식 맛의 반은 그 나라 공기 맛이 반이다!'라고 하는 명언을 생각하면 처형 입맛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을 듯합니다.
음식은 문화라고 하듯 식사하는 공간의 분위기와 음악, 서비스 방식, 인종, 언어, 브랜드 등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어야 본토의 음식 맛을 느낄 수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음식장사는 힘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