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여름으로 달려가는 계절, 곧 장마가 오기 전에 동네를 어슬렁 거리고 싶어, 집 앞 카페거리로 책 한 권과 노트북을 들고나갑니다. 자주 들르는 카페 입구에 '팥빙수' 메뉴가 보입니다. 빙수를 다시 시작했다고 하니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보듯 반갑습니다.
'어이! 친구 돌아왔군! 잘 다녀왔나?'라는 느낌으로 말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음식은 참 낭만적인데, 그중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가 여름날 밤의 팥빙수입니다. 연애시절, 집사람과 둘이 나눠 먹었던 팥빙수는 묘한 유대감과 정감을 불러 일으키곤 했습니다. 먹거리를 나누는 진짜 식구처럼 느껴졌습니다.
결혼한 지 20년이 지나도 여름밤에 한강을 걸으며 먹는 아이스크림 콘과 함께 팥빙수는 가장 아끼는 디저트 메뉴입니다.
특히, 7월 말부터 8월 15일까지 보름간의 '특급 더위'를 피하기 위해 동네에 카페를 지정하여 빙수를 먹으며 노트북 놀이를 하고, 에어컨이 있는 친구 집에 괜히 '친한 척(?)' 맥주를 들고 가서 에어컨을 틀고, 몸을 식히며 맥주를 마시고 오기도 합니다.
팥빙수와 에어컨은 참 좋습니다, 여름밤에는!
우리나라 빙수의 소개는 고종 1876년으로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김기수의 기행서인 ‘일동 기유(日東記游)’에 처음 소개되는데, 일본 정부와 식사자리에서 빙수를 먹은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생긴 모습이 얼음 산 같으며 찬란하게 빛나고, 맛은 달아서 먹을만 하지만 한번 입에 들어가면 폐부까지 서늘해지니 이 또한 괴이하다'는 기록이 전해 집니다.
그 이전까지 내려오는 얼음의 관한 기록은 동빙고와 서빙고, 왕실의 내빙고에서 얼음을 꺼내어 여름철에 얼음을 띄어 먹는 형식인 화채와 과일을 올려놓고 차게 먹는 '빙반(얼음 쟁반)'으로의 기록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說)'을 인용하면 '얼음 쟁반에 신선한 연근과 참외, 과일 등을 담아 먹으며 여름에 더위와 갈증을 달랜다'라고 합니다.
이웃 중국의 빙수의 역사를 보면 원나라 역사서인 '송사(宋史)'에는 겨울 철부터 얼음을 보관하는 빙고에서 여름철에 얼음을 꺼내 얼음을 갈아서, 밀사빙(蜜沙氷)이라는 모래처럼 고운 얼음 위에 팥을 얹어 먹는 것을 묘사한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일본의 빙수의 역사는 11세기 일본의 세이 쇼나곤이라는 궁녀가 쓴 '마쿠라노소시(枕草子_한자로는 '베개 책'정도로 해석됩니다.)라는 일본 수필 문학의 고전에서 빙수가 언급되는데, 차가운 금속 그릇에 얼음을 칼로 깎아 넣고 칡즙을 넣어 먹는 기록이 나옵니다.
개항과 함께 일본은 1869년 요코하마에서 미국으로부터 얼음 제조기술(냉동기술)을 이전받아, 얼음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고, 1887년에는 무라카미 공업사가 얼음을 기계로 갈 수 있는 빙삭기를 발명하여 특허를 얻을 정도로 빙수는 일본 상류층에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1900년대 여름철 얼음의 보급과 함께 빙수의 대중화를 위한 기술적인 요소인 빙삭기의 보급으로 빙수는 대중화되기 시작합니다.
각국에서 빙수의 역사는 자기가 먼저라고 이야기 하지만, 빙수 기계인 빙삭기를 만든 그 시절부터가 빙수의 시작이라고 생각됩니다. 빙수는 발전을 거듭하여 아시아 각국에 빙수의 형식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가키 코오리(かき氷)라고 불리는 일본의 빙수는 인기 있는 음식으로, 여름철이 되면 빙기를 걸고 빙수를 판매하는 식당들이 많습니다. 솜사탕, 타코야키, 야키소바와 함께 대표적인 일본의 축제와 페스티벌 음식으로 '빙수의 날'(7월 25일)이 있을 정도로 빙수는 일본의 인기 메뉴입니다.
아시아 각국에는 여러 가지 빙수 메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팥빙수부터 일본의 가키 코오리와 중국의 빠오빙(刨冰)과 대만의 쵸빙(剉冰), 하와이의 shaved ice까지 다양한 빙수가 존재합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빙수의 존재감은 대단한데 베트남과 태국에는 쩨(che)라고 불리는 빙수와 비슷한 디저트가 있고, 필리핀에는 하로 하로(Halo Halo)라고 하는 빙수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맛있는 빙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빙삭기에서 깎여져 나온 얼음이 빙수의 품질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최근에 기술의 발전은 눈꽃 빙수기라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냅니다.
빙수의 영어 이름인 Shaved ice, 말 그대로 면도된 얼음, 아주 얇게 썰려진 얼음의 입자가 있는 빙수는 품질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Crushed ice가 아닌 Shaved ice가 훨씬 빙수를 먹을 때 얼음이 입안에서 녹는 느낌이 깔깔하지 않은 빙질을 제공합니다. 요즘 냉장고에서 얼린 각 얼음을 빙수기에 넣고 갈면 깔깔한 크러쉬드 아이스가 나오지만, 옛날 빙삭기에서 대형 얼음을 면도하듯 얇은 종이장처럼 깎아내는 편이 훨씬 부드러운 느낌을 제공 합니다.
위의 그림처럼 대형 얼음을 얇게 대패로 밀듯이 쉐이빙 할 경우, 눈과 같은 훨씬 고운 입자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른쪽은 각 얼음을 빙삭기에서 갈아내면 우박과 진눈깨비와 같은 얼음 결정으로 빙수 그릇 최하층은 뭉치기가 쉬워 얼음처럼 단단한 빙수 하단부를 형성하지만, 면도 형식으로 눈과 같은 결정을 가진 빙수의 하단은 끝까지 부드러운 빙수를 먹을 수 있게 합니다.
이 원리를 이용한 빙삭기 2세대 모델이 등장하는데 '눈꽃 빙수기'라는 이름의 빙수기로 대당 가격이 몇백만 원을 상회합니다. 얼음을 얼리는 원형 회전축(드럼방식)을 만들고 살엄음이 어는 상태에서 대패와 같은 칼날로 깎아내는 기계입니다. 200년 전 빙삭기의 발명 이후, 빙수 맛을 진일보시키는 새로운 하드웨어의 등장입니다.
이 새로운 눈꽃 빙수기는 빙수 맛의 혁명을 가져오고 빙수의 얼음이 눈꽃처럼 부드러워집니다.
초창기 밀탑빙수에서 맛본 '눈꽃 빙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여름이 되면 대기 시간이 1시간이 되어도 눈꽃 빙수를 맛보기 위해 줄을 서고 기다렸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빙수 체인들은 눈꽃 빙수기로 얼음을 만들어 눈꽃 빙수를 전국 어디에서도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빙수 프랜차이즈들이 생기고는 있지만 한적한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와 함께 먹는 빙수가 매력 있어 동네에 맛있는 빙수를 찾으러 다닙니다.
빙수는 위에 올라가는 토핑보다 빙질이 생명인지라, 빙수 먹으러 갈 때 눈꽃빙수기계를 먼저 따지게 됩니다.
'새로운 음식과 맛의 개발은 혁신적인 과학기술과 함께 오나 봅니다.'
설빙과 수많은 빙수 프랜차이즈들이 생기고 참으로 다양한 빙수 메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후배가 개발한 '돔 페리뇽 샴페인'을 얼려서, '벨루가 캐비어'를 토핑으로 얹은 백만 원대 '로열 빙수'라는 메뉴가 특급 호텔 여름철 특선 메뉴로 나오고 있다 하니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제 입맛에는 깡통 단팥이 아닌, 너무 달지 않은 수제 팥과 찹쌀 100%로 만들어 얼음 위에서도 굳지 않는 쫄깃한 인절미가 놓인 우리 동네 빙수가 제일 맛있습니다.
동네에 마음에 드는 식당과 카페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PS :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바다의 뚜껑'을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카페에서 빙수를 먹으며 읽거나, 동명소설의 영화 감상을 여름밤 시원하게 보내는 한 가지 방법으로 추천드립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예능 '효리네 민박'을 합친 듯한 작품으로, 리틀 포레스트 '해양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주 재미있지는 않지만, 느낌은 시원한 영화로 일본 영화 특유의 '소재'를 '주제'로 풀어내는 묘한 잔재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