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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키너 Jul 16. 2018

삼계탕과 영양탕의 뒤바뀐 운명

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습한 장마가 물러나고, 맑은 하늘과 따가운 햇살이 가득한 여름입니다. 일기예보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되고 열대야가 치닫는 밤이 이어집니다.

마트에 삼계탕용 영계가 잔뜩 쌓여 있는 걸 보니 초복이 돌아왔구나 실감합니다. 그리고, 절기에 맞춰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자극하기도 합니다.(하지만 복날은 '24절기'에 속하지 않습니다.)

'내일은 삼계탕 먹을까?' 하며 집사람이 영계 두 마리를 카트에 집어넣습니다.


지난겨울에 사서 얼려 놓은 인삼도 있고,  대추, 밤도 냉동고에 있습니다.

닭을 물에 씻어 항문과 목을 잘라내고, 닭 목부분 안쪽부터 밤, 인삼, 찹쌀(한 숟가락 이상 넣으면  나중에 항문으로 삐져나와 심히 보기 좋지 않습니다.)과 포개 놓은 다리 사이로 대추를 끼워 넣으면 삼계탕 준비 완성입니다.

물은 조금만 넣고 냄비에 두 마리를 가지런하게 담아 가스불을 켭니다.

선풍기 바람에 실린 삼계탕 냄새가 집안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빨래해놓은 수건이 쨍쨍한 햇살에 바싹 마릅니다. 삼복 더위라  많이 덥기는 하지만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일요일 오후가 됩니다.


어미 개와 강아지, 이임(1527~1566) 1500년 당시 개 목줄의 고리와 방울이 현대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음식이자 복날의 음식인 삼계탕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닭은 물에 넣고 끓여먹는 백숙이 존재하였지만 삼계탕은 찾아볼 수 없고, 복날의 음식은 구탕(狗湯), 즉 보신탕이었습니다. 기르는 개는 '견(犬)'자가 있고 먹는 개와 고기로서의 한자인 '구(狗)'자가 따로 있을 정도이단백질 공급원으로서 그 시대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강아지 이름을 '백구'나 '황구'를 사용하는 것은 나중에 개가 죽고 나면 먹겠다는 뜻이니 붙이지 말아주시길.)

아시아에서  '구육(狗肉)'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일본, 베트남까지 대부분의 동아시아에서는 일반적으로 소비되었는데, 중국 광동성에서는 '향육(香肉)'이라 불리며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개고기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며, 그다음이 베트남으로 개고기를 먹으면 행운을 가져온다고 하여 돼지고기와 닭고기만큼 소비량이 높습니다.

일본도 다르지 않아 ‘일본인들은 소고기는 먹지 않고 개고기를 먹고, 특히 붉은색 개를 약용으로 쓴다’는 개화기 일본에 건너온 선교사의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동아시아에서의 식용 개고기의 역사는 깊습니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더위를 이기기 위해 계곡이나 그늘진 곳을 찾아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는데 이를 ‘복달림’, ‘복놀이’라 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한 여름의 휴가였겠지요.

'복날' 역시 동아시아 한중일 3개국이 같이 공유하는 여름철에 특정 음식을 먹는 날이 있습니다.

일본은 7월 말 한번, 혹은 두 번의 장어를 먹는 '도요노우시노히'라고 불리는 복날이 있습니다.

중국은 우리와 똑같이 삼복이 있어 초복에는 만두를 먹고, 중복에는 면을 먹고, 말복에는 지단을 먹는 풍습이 있다고는 하나 요즘은 중국도 자본주의화가 되어 보양식을 챙겨 먹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인기가 높은 여배우가 장쯔이와 영화감독 장예모도 스스로 삼계탕 마니아라고 하고, 우리나라의 토속촌등 유명한 삼계탕 집에 중국 단체 관광버스가 진을 치고 있는 걸 보면 중국에서 삼계탕의 인기도 대단한 듯합니다. 일본의 유명 작가인 무라카미 류도 그의 작품 '달콤한 악마가 내 안에 들어왔다'에서 삼계탕을 한국 최고의 음식이라고 하는 걸 보면 일본인들에게도 삼계탕은 가장 맛있는 한국음식으로 기억되는 듯합니다.(무라카미 류는 어머니가 한국인임을 밝히는 걸 보니 한국적 입맛을 가진 듯합니다.)


종로에 위치한 토속촌 삼계탕(1984년 개업), 토속촌에서 정계원로들과 오찬을 하는 故 노무현 대통령(2003년)

우리나라 삼계탕의 역사는 100년도 안된다고 전해지는데, 백숙의 기원은 오래되었으나 닭에 인삼을 넣어 먹은 삼계탕은 조선시대까지의 문헌에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계삼탕(鷄蔘湯)'이 처음으로 조선 총독부 기관지인 '조선'에 나오는데, 부자들이 매일 먹는 음식으로 표현됩니다. 계삼탕은 해방을 맞고, 한국동란을 지나 1960년이 되어야 '고려 삼계탕'이란 이름으로 명동에 출현합니다. 1960년대에 양계가 활성화되고, 인삼의 재배도 활성화되어 삼계탕이라는 산업 기반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 복날의 음식은 보신탕이었습니다.

1980년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자 80년대 초반부터 보신탕은 영양탕, 사철탕 등 순화된 이름으로 바뀌며 도심의 도로변에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외국인들의 거센 반발과 개고기 유통의 비위생적인 부분 등이 강조되면서 외식업에서 보신탕 산업은 쇠퇴하기 시작하고, 삼계탕 산업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특히 1984년에 종로 서촌에서 개업한 토속촌은 노무현 대통령의 맛집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며, 삼계탕의 위치를 대한민국 여름 보양식 대표 음식으로 올립니다. 보신탕을 안 먹는 사람들을 위해 사이드 메뉴로 있던 복날의 삼계탕이 역전을 하는 시기였습니다.

2000년대를 넘어가며 '보신탕'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애견인구 1000만' 시대에 보신탕을 먹는다는 행위는 많은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지금은 명맥만 남아있는 양고기와 염소고기 영양탕 집들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요즘 한식당 대부분은 여름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판매합니다. 편의점과 대형마트에도 한 자리씩 차지하며 대한민국 대표음식의 지위를 확인합니다.


본초강목(本草綱目) 명(明)나라 학자 이시진(1518∼1593)이 엮은 약학서에서의 인삼
농사와 의학의 신인 신농씨(神農氏),  중국의 한의원에는 99% 이 분의 사진이 걸려 있다.

또한, 우리나라 삼계탕의 역사는 '인삼'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삼 이전의 산삼은 고대로부터 캐왔으나 인간이 작물화한 농작물로서의 인삼의 재배는 조선 중종 때 풍기지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문헌으로 전해 집니다. 구설로는 고려시대부터 재배되어 왔다고 하나,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중종실록의 인삼의 재배를 최초로 합니다.

안삼속에 분류되는 Panax의 어원은 '만병통치약'이라는 기원을 가질 정도로 서양에서도 인삼은 신기한 치유의 효능이 있는 약으로 알려졌으며, 중국에서 의학과 농업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설화 속의 인물 신농씨(神農氏)는 인삼을 '신의 약재'라고 칭하기도 합니다.(선농단에서 제사를 받는 설화 속의 인물입니다.) 동서양 모두 인삼을 '신비한 효능을 가진 약'으로 인정하며 고대부터 쓰였습니다.

 50년 동안 60g 정도밖에 자라지 못하는 산삼에 비해, 인공적으로 재배된 인삼은 6년 동안 평균 80g 정도 자랍니다. 인삼의 생육이 훨씬빠릅니다. 아직 산삼이 효과가 인삼보다 월등하다는 연구는 보고된바 없다고 하니, 약효의 차이에서 산삼이 '월등하다'와 '별 차이가 없다' 등 의견이 분분하기도 합니다.   



일본으로 가는 조선 통신사 행렬


고려 인삼은 우리나라 고려시대부터 최고의 수출품과 귀한 약재로 예로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내려오고 있습니다.

인삼은 조선시대 일본으로 수출할 경우 은으로 대금을 지급받았습니다. 한참 인삼 가격이 좋을 경우에는 인삼 무게만큼 금을 받았다고 하니 고려 인삼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 중국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도 고려 인삼은 인기가 좋아 황제가 정력제로 애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고려시대부터 정부에서 관리하듯 현재에는 KT&G(담배 인삼공사)에서 관리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업용 인삼은 35개국 이상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인삼시장은 세계적으로 2013년 기준 20억 달러(2조 2천억 원)를 돌파했는데, 전 세계 매출의 절반이 우리나라 생산품입니다. 그리고 인삼 소비국가 1등은 역시 세계 소비의 큰손인 중국입니다.

인삼 재배는 한국뿐만 아니고, 한국과 위도가 같은 지역의 중국과 캐나다, 미국의 일부 지방에서 에서도 인삼을 재배합니다. 인삼은 약초 성분의 주요 항산화 활성 성분인 진세노사이드(ginsenosides)라는 독특한 식물성 사포닌을 함유하고 있는데 미국산 인삼은 13가지 종류의 진세노사이드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고려 인삼은 미국 삼보다 3배나 많은 36 종류의 진세노사이드(ginsenosides)를 가지고 있는 걸 보면 한국 고려 인삼의 효능은 세계 제일의 품질로 유명세를 떨친 이유가 있음을 증명합니다.





반주로 지난번에 사다 놓은 인삼주도 준비합니다.

잘 익은 석박지가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지난주에 담근 맛김치와 낙지젓을 반찬으로 준비합니다.

삼계탕을 한 그릇씩 나누고, 향파를 조금씩 올려 봅니다. 인삼주 한잔 따르니 만찬 부럽지 않습니다.

가슴살 아래 찹쌀을 한 숟가락 퍼내어, 먹어 봅니다.  삼 냄새 쌉싸름하고 뜨끈한 진한 닭 육수 맛이 마음속 깊숙이 스며듭니다.


'이래서 복날은 냉면보다는 삼계탕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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